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438

까끔살이 생활여행

하나, 둘, 셋, 넷, 다섯, …… 열다섯. 현관문을 열고서부터 방 끝까지의 내 걸음 수는 딱 열다섯 걸음이다. 이 좁은 공간에 신발장, 화장실, 싱크대, 작은 옷장 그리고 반원형 베란다에 세탁기와 보일러가 설치되어있는 곳, 내가 지금 까끔살이를 하는 아파트형 원룸이다. 오밀조밀한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남편은 자꾸만 어디론가 여행을 온 기분이라고 한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 날은 지난 16일, 이사를 마치고 나자마자 강한 바람과 함께 때 아닌 눈보라가 몰아쳤기에 많이 어설픈 마음이었는데 이삿짐을 옮기는 동안 따뜻해진 방 온도가 어찌나 좋은지 금세 안온한 마음이 들면서 이사하는 날까지의 피곤이 풀어지면서 잠이 쏟아지는 것이다. 옛날 뜨뜻한 구들장 방에서 잠들 듯 그렇게 자고 나니 이 공간이 아늑함으로 정..

단상(短想) 2021.02.22

아, 그리운 아버지

우리 아이들 어렸을 적부터 모아둔 소지품들을 정리하다가 큰 아들 소지품에서 깜짝 놀라운 편지를 발견했다. 세상에!! 울 친정아버지의 편지가 있는 게 아닌가? 18년 전 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글씨체를 보는 순간 그만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고 말았다. 편지를 울 아들에게 보낸 시기는 아버지 정년퇴직하신 후 3년 째 되는 해였고 울 아들은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시기로 짐작된다. 예나 지금이나 일을 해야만 했던 나로서는 아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지 못하고 생활을 해 나갔었다. 그 당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서인지 큰 아들의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기에 아마도 그 고민을 아버지께 잠깐 이야기했던가? 하는 기억만 있을 뿐 정확한 기억이 없는데 이 편지를 보고 나니 울 아버지는 내 말을 예사로 듣지 않고 언제 그..

단상(短想) 2021.01.27

빈산의 빨강은 소망

12월, 달력상으로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첫 눈이라도 기대해 볼만큼 하늘이 잔뜩 내려 앉은 날, 에움길을 돌아서니 나뭇잎을 모두 떨어내고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들이 추워 보인다. 애처로운 모습으로 떠나는 것들이 더없이 아름다울 때가 있으니 요즈음의 나무들이 그런 모습이 아닐까. 그 중, 가장 마음을 끄는 것은 감나무이다. 잎을 다 떨고 빈 가지로 서 있는 감나무 꼭대기에 달린 감 몇 알이 유난히 선명해 보인다. 늦가을이 되면 온 산과 들에는 열매들로 가득하다. 번식을 위한 씨앗의 역할로 맺은 열매들이라 할 수 있지만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드는 요즈음의 감나무에는 꼭대기에 달랑 몇 개의 감이 달려 있음으로 그 존재감이 더욱 뚜렷해지기도 한다. 너무 높아 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남겨진 것들에 까..

단상(短想) 2020.12.02

가을 소나타

아침저녁으로 지나는 길목 한 곳에 작은 꽃집이 있다. 그곳을 지날 때면 오늘은 문 앞에 무슨 꽃이 나와 있을까 하며 바라보곤 하는데 가을의 길목에 들어선 언젠가부터 노란 국화분이 샛노란 빛을 발하며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곁에 앉아서 국화가 내뿜는 알싸한 향기를 느껴보고 싶었지만 주차할 자리가 마땅치 않으니 번번이 그냥 지나치곤 했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가을 단풍 소식들이 들려온다. 마음 놓고 나설 수 없는 내 마음이 초라해지고 있으니 그냥 국화꽃이라도 한 다발 사고 싶었다. 꽃집에서 먼 곳에 주차를 하고 꽃집에 들어섰다. 마음이 환해진다. 밖의 국화화분을 보고 들어 왔는데 다발 묶음의 소국들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아. 이 쌉싸름한 향기라니~ 망설이지 않고 두 묶음의 소국 꽃을 사들고 나왔다..

단상(短想) 2020.11.11

가을의 위로

가을날 오후 햇살은 자꾸만 깊숙이 기울어지며 제 키를 키운다. 늘 걷는 오솔길이지만 늘 새로움을 안겨주는 길섶이 마냥 정겹다 가을을 움켜쥐고 가을을 살아가는 초목들을 바라보며 내가 좋아하는 에움길을 돌아서면 노박덩굴이 이 계절을 잊지 않고 노상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왜 이름이 노박일까 노박은 노상의 방언이란다. 노상은 ‘언제나 변함없이’ 라는 뜻이고… 하니 매년 그 자리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살아가고 있다. 지금 노박덩굴은 마음이 조금 급한가 보다 껍질을 셋으로 나누어 열고서 덜 익은 제 속내를 부끄럼 없이 내 보이며 가을햇살을 움켜쥐고 있는데 가을은 괜찮다며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며 위로를 보내고 있다. 지난 계절 동안 수고하여 맺은 결실을 단단히 익히려는 다부짐을 여실히 드러낸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단상(短想) 2020.10.27

스며드는 가을햇살 속에서

일요일 한낮에 방안으로 가득 스며든 가을 햇살은 아늑함을 전해준다. 종종거리는 내 발자국 뒤에 남겨지는 정갈함 속에 창문을 타고 들어온 햇살이 안방을 차지하고 논다. 그랬구나. 평일에는 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온종일 주인 없는 방안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소꿉놀이를 하기도 하고 출근길 부산하게 서두르는 내 모습을 기억해내고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겠구나. 모처럼 그들 곁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니 어느새 내 몸 위에서 마음껏 유희를 펼치는 햇살의 부드러움에 한없는 아늑함이 느껴진다., 언젠가 재래시장에서 가제 천을 사와 행주를 만들었다. 어설픈 솜씨로 둘레를 박음질하고 귀퉁이 한쪽에 살짝 꽃을 흉내 낸 바느질 수준의 수(繡)를 놓았다. 그 행주를 삶을 때 마다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그 냄새를..

단상(短想) 2020.10.16

우리도 이렇게 견디며 살아왔다고...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구례에서 노고단 방향으로 가기 위해 좌회전을 하려는 찰나 우측 서시천변의 커다란 빨간 우산이 시선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아니!! 코스모스다!! 함성을 질렀지만 자동차는 이미 방향을 잡아 노고단을 향해 달리고 있다. 우리는 계획을 변경했다. 원래는 노고단에서 내려와 정령치와 달궁, 뱀사골을 드라이브하면서 돌아오기로 했는데 우리는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면서 천변의 코스모스밭에서 놀다 가기로 한 것이다. 지난여름 섬진강의 범람으로 구례가 물에 잠겨 버렸었다. 마을 주민들도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라며 놀라워했고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물길을 둑으로 막아 놓은 곳을 물들이 옛길을 찾아오고 있는 것처럼 거침 없이 제방을 넘어 들어와 버렸단다. 그렇게 서시천이 물에 ..

단상(短想) 2020.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