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구례에서 노고단 방향으로 가기 위해 좌회전을 하려는 찰나
우측 서시천변의 커다란 빨간 우산이 시선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아니!! 코스모스다!! 함성을 질렀지만
자동차는 이미 방향을 잡아 노고단을 향해 달리고 있다.
우리는 계획을 변경했다.
원래는 노고단에서 내려와
정령치와 달궁, 뱀사골을 드라이브하면서 돌아오기로 했는데
우리는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면서
천변의 코스모스밭에서 놀다 가기로 한 것이다.
지난여름 섬진강의 범람으로 구례가 물에 잠겨 버렸었다.
마을 주민들도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라며 놀라워했고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물길을 둑으로 막아 놓은 곳을
물들이 옛길을 찾아오고 있는 것처럼 거침 없이 제방을 넘어 들어와 버렸단다.
그렇게 서시천이 물에 잠겨 버리면서
코스모스도 밭도 물에 잠겨 버렸고…
그래서 꽃을 피울 수 없을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물이 빠지자 코스모스는 이렇게 살아나서 꽃을 가득 피우고 있었다.
오후 4시가 넘어 코스모스밭에 도착하니 해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
천변 가에는 침수되었을 때의 부유물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물은 어느새 맑음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어쩜~~ 하천 주변에 고마리들이 풍성하게 무리를 이루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정말 반가웠다.
고마리는 맑은 물에서만 자라면서
자신이 살아가는 주변의 물을 정화 시키는 식물임에
사람들이 “고마우리 고마우리” 했다는 데서 유래한 '고마리' 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오늘 이렇게 서시천에서 만나고 보니
저 예쁜 고마리들이 물을 정화 시키고
코스모스를 깨끗하게 씻어 주었을 거란 생각에
진정 고마리의 힘이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처럼 느껴지며 고맙기까지 한 것이다.
고마리와 코스모스는 진흙탕물에 잠겨 지내는 동안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까마는
서로서로 위로하면서 이겨 내고 있었을 모습에 마음이 찡해온다
맑아진 물은 사진을 찍는 내 모습도 받아 줄 만큼 깨끗했다.
줄곧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나에게
용기를 내라고, 이제 곧
없는 듯 지루하게 살아갔던 소소했지만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땅 위의 코스모스도, 물에 걸터앉은 고마리도
천변 건너 논에서 누렇게 익은 벼들도
우리도 이렇게 견디며 살아왔노라며
구김살 하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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