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지나는 길목 한 곳에 작은 꽃집이 있다.
그곳을 지날 때면 오늘은 문 앞에 무슨 꽃이 나와 있을까 하며 바라보곤 하는데
가을의 길목에 들어선 언젠가부터 노란 국화분이
샛노란 빛을 발하며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곁에 앉아서 국화가 내뿜는 알싸한 향기를 느껴보고 싶었지만
주차할 자리가 마땅치 않으니 번번이 그냥 지나치곤 했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가을 단풍 소식들이 들려온다.
마음 놓고 나설 수 없는 내 마음이 초라해지고 있으니
그냥 국화꽃이라도 한 다발 사고 싶었다.
꽃집에서 먼 곳에 주차를 하고 꽃집에 들어섰다. 마음이 환해진다.
밖의 국화화분을 보고 들어 왔는데
다발 묶음의 소국들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아. 이 쌉싸름한 향기라니~
망설이지 않고 두 묶음의 소국 꽃을 사들고 나왔다.
빨리 집에 가서 나의 항아리 화병에 꽃아 두고 싶다.
한 때 꽃꽂이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꽃을 사 나르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어느 날, 수반과 침봉을 구입하려고 소품 가게에 들어가니
수반보다 앙증맞은 항아리 하나가 눈에 들어 온 것이다.
뚜껑까지 갖추고 있는 모양새가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그 날은 수반 대신 작은 항아리를 사들고 왔다.
항아리 수반을 갖고 부터는
어쭙잖은 실력으로 꽃꽂이 한다며 어설픈 가위질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발 째 사온 꽃을 항아리 높이에 맞춰 줄기를 잘라내고는
그냥 그대로 덥석 담아도
운치를 뿜어내는 항아리의 넉넉한 품새가 그냥 그렇게 좋았다.
이사를 다니면서도 꼭 챙긴 작은 항아리는 30년 넘게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이제는 어쩌다 한 번씩 오늘처럼 불현듯 꽃을 품어주는 항아리 수반~~
내가 이 항아리를 유독 좋아하는 까닭은
항아리라는 개별성보다는 특별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둥근 몸통에 손잡이가 있다
작은 몸피이기에 굳이 손잡이가 필요 없음에도
손잡이격식을 갖추고 있는 그 앙증맞음이 절로 미소를 번지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뚜껑이 단순한 뚜껑이 아닌 것이다
지름이 14cm의 작은 뚜껑의 날개부분은 고작 4cm의 넓이인데
그곳에 13알의 포도가 달린 포도송이를 새겼고
덩굴로 이어지는 4개의 포도송이가 새겨져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모습들을 볼 때마다 이 항아리를 빚은 도공의 집중력이 상상 되곤 하는 것이다.
이 작은 공간에 이 무늬를 넣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어쩌면 도공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새기는 마음으로 항아리를 치장 했을까.
포도송이의 무늬와 몸통의 손잡이는
완벽한 화음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말하면 억지일까.
요즈음 세상에 일상에서 항아리를 필요로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무겁지 않고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그릇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겨움을 품고 있는 예스러운 것들을 바라보며
우리 마음은 늘 아날로그적 삶을 희구하지만,
세상은 알게 모르게 디지털의 빠름에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하니, 내가 누군가를 위한 무얼 하면서
간절한 집중력을 발휘하는 시간들은 점점 소멸되고 있을 터.
이렇게 보통의 특별함을 만나고 나면
쫓기듯 살아가는 나의 삶에 아름다운 색깔을 칠해 주는 듯싶은 것이다.
항아리 수반에 꽃을 꽂고
이렇게도 놓아보고 저렇게도 놓아보며 가을밤을 보내노라니
문갑 위 장식품들이 가을을 연주하겠노라며 자리 정열을 하고 나선다.
나는 조명등을 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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