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내맘의 글방 172

꽃에 실려 온 옛 생각에 젖었다.

새해 들어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요즈음, 나는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들에 파묻혀 지내는 듯싶다. 연말정산이 그러하고 지난해 결산을 요구하는 관공서에 제출하는 업무들이 있어서다. 그러느라 매서운 추위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개미 쳇바퀴 돌리는 일상에서 늘 똑같은 동선을 반복하다 보면 나 자신이 어떤 매뉴얼 따라 움직이는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업무든 살림이든 내 몸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보이지 않는 한 틀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살아가다 문득문득 이 틀 안에서 나를 꺼내어 주며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뜻밖의 존재들이다. 며칠 전 아침이 그러했다. 아침 바쁜 시간을 쪼개어 청소기를 밀며 이 방, 저 방, 거실, 주방, 욕실을 오가는데 거실 한쪽에서 자라고 있는 행운..

내맘의 글방 2024.01.26

호된 경험

2주 전 목요일 점심시간, 우리는 잘 차려진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 테이블에 4명씩 먹을 수 있도록 차려진 식탁 위에는 4종류의 싱싱한 생선회가 올려 있었고 그 옆 가스레인지 위에는 회를 뜬 나머지로 끓일 매운탕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두들 배가 고팠을 것이다. 횟집이어서 나로서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나 혼자 어긋날 수 없어 동석을 했고 늦게 끓여지는 매운탕만 먹을 작정을 했기에 스스럼없었다. 모두 재잘거리며 싱싱한 회를 잘 먹었다 내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거짓말 같지만 지금까지 나는 생선회를 먹은 적이 없다. 원래부터 살아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의사는 나에게 절대로 날 것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 왔기에 단단히 세뇌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너무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노..

내맘의 글방 2023.10.20

우리는 계절의 페이지 터너가 될 수 있을까.

어제는 토요일인지라 오전에 청소하고 반찬 몇 가지를 했다. 들깻잎 순을 삶아 나물무침을 하고, 고구마순을 삶아 호박과 꽃게 한 마리를 넣고 된장 지짐을 해 놓고, 미역 냉채를 하기 위해 미역을 담가 놓고, 양배추를 채 썰어 놓고, 오이깍두기를 담았다. 에어컨을 켜고 했지만도 땀을 흘렸다. 이런 나를 보더니 남편이 점심을 삼계탕으로 먹자 하여 18,000월 하는 삼계탕을 먹고 나는 배롱나무꽃이 보고 싶어 옥구향교로 향했다. 남편에게 함께 가자 청했지만 덥다고 싫단다. 옥구향교에 도착하여 꽃이 한창이겠지 생각했는데 꽃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은 주차할 공간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온 것 같은데 꽃을 볼 수 없었다. 배롱나무를 자세히 바라보니 세상에! 꽃대궁의 꽃봉오리가 다 떨어져 버린 것이다. 꽃이 ..

내맘의 글방 2023.08.13

울다가 웃었던 날

5월은 기념일이 참 많은 달이다. 그중, 해마다 나에게 의미 있는 날로 다가오는 날은 스승의 날이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 통장을 내가 관리하고 있기에 어제 오랜만에 통장 정리를 하다가 마음이 덜컥 내려앉은 내역을 보았다. 아버지 제자분이 지난 12일에 또 십만 원을 입금하신 것이다. 이제 그만하셔도 된다고 우리 의사를 충분히 밝혔음에도 그분은 한 해를 거르지 않고 이렇게 보내시는 것이다. 그 분과 아버지와의 인연은 아버지께서 교감 승진 후 처음 발령받으신 곳에서부터다 그 당시는 승진 초임 근무지는 도시와는 아주 먼 오지 근무지가 대부분이었기에 생활의 어려움도 많았던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생후 6개월부터 6살까지 지냈던 곳이기도 하다. 아버지께서는 초임지 근무를 하시면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동네 ..

내맘의 글방 2023.05.17

빛으로 들려오는 봄의 소리

새벽안개가 자욱하다. 일교차가 심한 요즈음 같은 봄날의 안개는 무언가 신비로움을 품고 있는 듯싶으니 그냥 정겹다. 훅! 긴 숨을 들이마시고 뒷산에 들어서니 숲 속을 가득 채운 안개는 나를 와락 껴안으며 허그 인사를 한다. 나는 주춤 잠시 어색했지만 그들만이 취할 수 있는 인사법이기에 나는 이내 편안함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오늘 숲은 포근한 이불이 펼쳐진 아늑한 방안 이었다. 우리 어릴 적 형제들이 커다란 이불 하나를 덮고 나란히 누워 재잘거리던 풍경이 떠오른다. 지금처럼 화려함도 가벼움도 없었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도 따듯함으로 우리를 감싸 주었던 솜이불. 지금 숲을 가득 채운 안개는 아마도 숲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이불이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이제 막 꼼지락거리며 내미는 새순의 연약함을 품어주고, 갖..

내맘의 글방 2023.04.04

로제트(rosette)가 되어 겨울을 살아간다

설날이 낀 연휴는 4일 동안 이어졌다. 명절이라는 듬직한 시간 안에서 쉬어가는 우리 사람들인데 세월의 수레바퀴는 잠시도 쉬지 않고서 1월 하순까지 걸어 나갔다. 벌써?라는 놀라움이었지만 묵묵히 나아가는 세월에게 태연한 척하며 일요일 한낮에 산을 올랐다. 여러 쉬는 날 중 한 번도 뒷산을 오르지 않는다면 그냥 산에 미안한 마음이기도 하여 매서운 바람을 뚫고 나갔다. 겨울 숲이 품은 세찬 바람은 더욱 날을 세운 듯, 잠깐 걸었을 뿐인 내 양 볼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얼얼하면서 시린 감촉은 느슨한 내 몸을 꽉 조여 주며 팽팽함을 안겨준다.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맛이다. 나뭇잎 하나 걸치지 않은 겨울 숲은 썰렁하면서도 언뜻 잔잔한 안온함을 품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잃어버린 그리움 가득한 곳을..

내맘의 글방 2023.01.26

겨울 산의 빨강은...

눈이 내려도 너무 많은 눈이 내렸다. 연 이틀 동안 차량에 쌓인 눈을 쓸어내리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다. 땀이 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눈 그친 하늘이 참 맑다. 맑은 하늘 아래 멀리 보이는 에움길이 촉촉이 젖어 있다. 급하게 염화칼슘으로 제설작업을 한 까닭이리라. 완전 무장을 하고 산 초입까지 가 보았지만 쌓인 눈의 두께 때문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에움길을 따라 잠시 걸었다. 하얀 눈을 제 몸에 얹고 있는 나무들이 추워 보인다. 애처로운 모습으로 떠나는 것들이 더없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요즈음의 나무들이 그런 모습이 아닐까. 행여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걷는데 하얀 눈 속의 빨간 열매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푸른 잎의 사철나무에게 눈덩이를 맡기고 자신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 노박덩..

내맘의 글방 2022.12.29

인생에서 귀한 것은 마음을 알아주는 일

초저녁 시간대에 산책 삼아 내가 늘 다니는 코스의 한 곳은 ‘뽕나무 집’이라는 간판의 음식점이 있었던 곳이다. 그곳은 음식점 이름처럼 뽕나무 여러 그루가 우거져 있었고 근방에는 탱자나무 울타리도 있었기에 철 따라 운치 있는 아담한 풍경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난 뽕나무보다는 울타리 식으로 둘려져 있던 탱자나무에 더욱 마음이 쏠리곤 했다. 아주 울창하고 길게 이어져 있었던 탱자나무였는데 지금은 많이 베어지고 한 곳에 조금 자리하고 있다. 그나마 환삼덩굴이 탱자나무를 뒤덮듯 엉켜 있으니 행여 아예 사라질까 아쉬운 마음이 자꾸 더해진다. 봄날 탱자나무가 꽃을 피울 즈음이 되면 일부러 꽃을 보러 가곤 했다. 유독 하얀빛을 발하는 꽃들은 줄기의 가시를 비켜나려는 듯 꽃잎을 성글게 피우니 참으로 애잔한 모습이다..

내맘의 글방 202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