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한낮에 방안으로 가득 스며든 가을 햇살은 아늑함을 전해준다.
종종거리는 내 발자국 뒤에 남겨지는 정갈함 속에
창문을 타고 들어온 햇살이 안방을 차지하고 논다. 그랬구나.
평일에는 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온종일 주인 없는 방안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소꿉놀이를 하기도 하고
출근길 부산하게 서두르는 내 모습을 기억해내고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겠구나.
모처럼 그들 곁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니
어느새 내 몸 위에서 마음껏 유희를 펼치는 햇살의 부드러움에 한없는 아늑함이 느껴진다.,
언젠가 재래시장에서 가제 천을 사와 행주를 만들었다.
어설픈 솜씨로 둘레를 박음질하고
귀퉁이 한쪽에 살짝 꽃을 흉내 낸 바느질 수준의 수(繡)를 놓았다.
그 행주를 삶을 때 마다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그 냄새를 맡아보곤 한다.
다 삶아진 행주가 맑은 가을햇살에 말리면서 투명한 흰빛을 발 할 때면
난 그 맑은 색이 너무 좋아 이리저리 만져보고 뒤적이기를 좋아한다.
가제행주에서는 우리아이 젖살 내음이 풍겨 오기도 한다.
푹 삶아 뽀송하게 말린 아기 기저귀를 곱게 개어
혼자 누워서 주먹 쥔 손을 바라보며 옹알이하는 녀석의 두발을
한손으로 모아들어 올리고 앙증맞은 예쁜 엉덩이 밑에 척 놓아줄 때
가제기저귀의 뽀송한 감촉은 나를 얼마나 기분 좋게 하였던가.
푹 삶아 가을햇살에 말린 투명한 가제행주에서 옛 생각하며 행복함을 느낀다.
늘 바쁜 일상에 쫓기듯 살아가는 생활이지만
오늘처럼 틈새로 들어오는
아주 단순한 것에서 찾아지는 행복한 마음은 나를 살찌우는 보약이다.
이 가을에
멋진 풍경을 만나러 가지 못함에 애석해하며 따분한 일상을 말하는 것은
주위를 바라보지 않아서이다.
집에서도, 방 안에서도 나를 고요케 해주는 한가로움이 있다.
그 한가로움에서 얻는 행복이 있기에
주위가 아무리 소란스럽다 할지언정 내 마음은 들뜨지 않는다.
기쁘고 그리운 것들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와서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무력함을 잘 다스려준다.
‘사람은 권태 속에서 가장 열심히 산다.’ 고 한 소설가는 말했듯
무력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중에 무한한 노력을 기울이면 창조적인 발명을 한다고 하니
이 가을을 맞이하여
나는 나를 위한 작은 행복의 조건들을 내 주위에서 찾아 만드는 발명가가 되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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