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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短想)

토끼 눈으로 만난 옛 화가

물소리~~^ 2024. 3. 9. 07:37

 

 

 

내 오른쪽 눈이 토끼 눈이 된 것은

힘겹게 피어난 매화꽃이 내 눈길을 끌어 간 3일 전이었다.
그날 아침
세수를 마치고 얼굴에 이것저것 바르려고 화장대 앞에 앉았는데
오른쪽 눈 끝이 무언가에 당기는 듯 아팠다.
 
무어지? 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아무렇지 않기에 서둘러 출근했다.
사무실에 도착하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앞의 여직원이
눈이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왜? 하니 거울을 한번 보시라고…
나는 깜짝 놀랐다. 눈 흰자위가 붉게 충혈된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눈에 이상을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놀라운 마음이다.
 
얼른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렌즈를 통해 내 눈을 바라보더니
과로하거나 혈압이 높은 경우에 나타날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눈의 충혈 흔적은 일주일 이상 갈 거라면서
처방해 준 안약 두 개를 받아 오면서부터 자꾸 눈에 신경이 곤두선다.
 
무엇보다도 내 눈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줄 것 같으니
신경 쓰이는 것이 여간 아니다.

 

 


 
요즈음 조금 과로한 듯싶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거뜬히 해냈던 일들이 무겁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확연히 달라진 신체의 항변이 아닌가 생각해 보노라니
옛 조선 시대를 살다 간 한 사람이 생각나는 것이다.
 
오래전에 벽광나치오라는 책을 읽었다.
‘벽광나치오’ 는 200여 년 전
조선 후기 여항문학의 주를 이루던 인물들을 국문학 교수가 발굴 조명한 책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한 가지 일에 고질병(癖 벽)이 든 사람이며,
그 일에 빠진 미치광이(狂 광)였고, 다른 일에는 게으름뱅이(懶 나)가 되었고,
그것밖에 모르는 천치(痴 치)였으며
자신만을 아는 오만함(傲 오)으로 가득한 자들이었다.
 
그 시대의 양반들은 아니었지만, 지닌 재주만큼은 양반을 능가할 만큼
자신들의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살았던 인물들을 불러내어
바로 우리 곁에 숨 쉬는 인물로 되살려낸 참신함에 흠뻑 빠져들며 읽었었다.
그 책에 등장한 사람 중 가장 감명 깊게 다가온 사람은 화가 최북이었다.
토끼 눈이 되어 문득 이 사람이 떠오르는 이유는 화가의 눈 이야기 때문이다.
 
최북(崔北)은 조선 영, 정조 시대를 살았던 화가다.
그는 메추라기 그림에 으뜸인 화가다. 별명이 ‘최 메추라기’였다.
하지만 그의 삶은 지난(至難)했다.. 그의 호는 칠칠이다.
이름자 北을 좌우로 파자하여 七七이라 하였다.
그 시절에도 칠칠맞다는 말이 있었던가.
이에 훗날 학자들은 최북은 스스로 미천한 신분으로 못난 놈 임을
반항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니
그 당시 그의 기이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일 거라는 짐작이다.
 
거기에 그는 한 눈이 멀었다.
한 지체 높은 양반이 그림을 부탁했지만 원치 않는 일이라 거절하였고
그에 협박당하자 스스로 제 눈을 송곳으로 찔렀다 한다.
조선의 고흐였다.
해진 옷을 입고 걸식을 일삼으니, 사람들은 그를 ‘거지 화가’라 비난했지만
남의 비위에 맞추려고 자신의 신념을 버리는 행동을 하지 못한 것이다.
진정 광기가 어린 행동이었다.
 
당대에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실명케 한 고집불통의 대단한 화가에
토끼 눈이 된 내 모습만을 빗대어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보면
화가는 나에게 어떤 몸짓으로 응징했을까를 생각하니 조금 무섭기도 하다.
그럼 나도 말해야겠다.
나에게는 광기 어린 열정은 없지만
무언가 맡은 일에는 멍청스럽게 임하는 끼는 있는 것 같음을 눈이 대신 말해주는 것이라고~~
 


그는 앉은 자리에 풀도 나지 않는다는 경주 최 씨이며
무주 출신이라는 근거에(확실하지 않다는 설도 있음)

무주에 최북 미술관이 건립되어 전시회를 하기도 한다는데
여태 마음만 앞서고 직접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충혈된 내 눈이 제 모습으로 돌아오면
경주 최 씨인 남편에게 함께 가보자고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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