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어느 봄 날의 상차림

물소리~~^ 2024. 4. 15. 16:44
▲ 아침 6시 55분 무렵의 앞산

 
 

이른 아침 일어나서 바로 베란다로 나섰다.
어제 베란다 청소와 화초들에 물을 주고 난 후의 개운함이
그대로 전해오니 내 마음도 개운하다.
새벽부터 베란다를 오가며 창밖을 바라보니
비가 내린다는 예보와 달리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창문을 여니 차분하며 부드러운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친다.
 
아! 우리 동네 앞산의 풍경이 참으로 어여쁘다
이제 막 새싹을 내밀고 있는 나무들의 연둣빛 부드러운 감촉을 느껴보고 싶다.
각기 다른 특유의 색으로 둥글게 둥글게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이 봄을 맞이해 여린 맛의 각종 나물로 차려놓은 정갈한 밥상이 연상된다.
어설픈 주부로서의 어제저녁 상차림이 참 초라하게 느껴졌지만
나도 나름대로 맛있게 차려 먹었다고 속엣말을 건네 본다.
 
하지만 저렇게 제 몸을 둥글게 가꾸며 봄을 맞이하는 모습은
서로 이웃한 다른 나무들의 영역을 배려하는 까닭이란다
그러면서 더 많은 햇살을 받기 위해 쑥쑥 자라는 경쟁을 한다니
배려하면서 경쟁하는 마음자리의 어여쁨을 보여주고 있는 앞산이다
 

▲ 아침 7시 20분 경의 앞산

 
 
거실로 들어와 다시 창밖을 바라보니
아, 산 풍경이 그대로 우리 베란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차경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밖의 경치를 그대로 끌어 들여와 마음 놀이를 즐기곤 했다지 않은가
나 오늘 삯도 주지 않고 공짜로 경치를 빌려 와
내 집에 들여 놓았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 나는 앞산 풍경을 우리 베란다로 차경하여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정원으로 꾸몄다.

 
 

▲ 8시 30분 비가 내리기 시작!!!

 
내 이 염치 없는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부산하게 움직이는 나를 밀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초목들은 비를 맞아 더욱 말끔한 모습이다.
아, 이제 저들은 곱게 차려입고 연주를 시작했다.
아직 관중들이 없는 연주회이지만 나 혼자 유유자적 즐길 수 있어 좋다.
나무들은 스스로 바이올린도 되고 첼로도 되고 피아노도 된다.
조금 키가 큰 나무들은 관악기 역할을 자처한다.
저들은 무슨 곡을 연주하고 있을까
마침 음악방송에서 들려주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대입한다
저들이 건네주는 차분한 마음을 보듬고
최고의 연주회장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선다.
 
어느 봄날, 참으로 맛있게 차려진 아침상을 받고 든든한 마음으로 오늘을 출발한다.
 

▲ 비 내리는 풍경도 유리창을 통해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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