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마음따라 발길따라 418

상사화는 큰 달(대월습곡)을 보며 그리움을 달래다

위도(蝟島)의 명칭은 고슴도치를 뜻하는 위(蝟)와 섬을 뜻하는 도(島)에서 비롯되었다. 위도라는 섬의 명칭에 고슴도치가 등장하게 된 것은 섬의 전체적인 모습이 고슴도치를 닮았기 때문이다. 위도는 부안에서 가장 큰 섬이다. 섬이면서도 6개의 유인도와 24개의 무인섬을 거느리고 있으니 위도의 위상을 새삼 헤아려보는 마음이다. 길쭉한 섬 양쪽으로 구불구불한 해안도로가 조성되어 있어 자동차로 돌아보기에 좋은 섬이다. 1993년 10월 10일 200명 정원인 배에 362명을 싣고 운항하던 배가 임수도부근에서 침몰하면서 292명이 사망한 사고로 그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탑 - 위도 관아 - 조선 숙종 때의 건물로 수군 진영의 동헌으로 관원들이 공무를 보던 건물 위도는 황금어장이 있을 뿐 아니라 세곡선이 지나..

갈매기의 날개 짓에 위로 받다.

어머니의 흔적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소중한 어머니의 상속재산을 정리해야만 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일 년을 넘긴 시점에 이르니 여기저기서 조언이 들어왔다. 부동산은 살아계실 때 정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주 복잡하다고… 더구나 우리에게는 먼저 간 형제가 있어 더욱 그러하다는 조언을 해 주곤 했다. 부동산이라야 작은 아파트 한 채이고 어머니 명의의 통장 예금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난 8월 10일에 아파트 매매가 이루어지면서 매매금이 어머니 통장으로 입금이 되었고 그 후 19일에 어머니 면회를 했고 23일에 집 정리를 마치고 나니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지금 우리 형제들은 이 모든 일들을 어머니께서 정리해 주신 것이라고 말을 하곤 한다. 며칠에 걸쳐 자녀들이 각종 서..

윤선도와 낙서재, 곡수당 ㅡ 보길도에서

낙서재 고산의 주된 공간이었던 낙서재는 1637년 보길도에 입도하여 이 섬의 주산인 격자봉의 혈맥을 쫓아 집터를 잡고 3칸의 초가로 된 집을 지어 작품활동을 한 곳이다. 곡수당 곡수당은 격자봉에서 흐른물이 이곳에 이르러 곡수를 이루고 있다하여 붙인 이름으로 윤선도의 아들 학관이 휴식하던 장소로 서재 건물과 함께 곡수당이라 하였다. 초등학교 앞 세연식당에서 콩국수와 파전으로 점심을 먹고 돌아오기 위해 다시 노화도로 출발하여 동천항에 도착 하였으나 안개로 출항금지라는 안내문을 내걸고 문을 닫아 놓았다. 깜짝 놀랐다 우리는 약간의 비 내리는 날의 안개어린 풍경의 운치를 즐기며 걱정 없이 다녔는데 항구에서는 안전을 위해 배의 발을 묶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

공룡알 해변 - 보길도에서

가장 궁금했던 세연정을 뒤로하고 우리는 또 다른 윤선도의 자취를 찾아 나서며 먼저 공룡알 해변을 찾았다. 내비가 알려줘 수월하게 찾았지만 새벽부터 운전하느라 남편은 몹시 졸리는가 보다 주차장에 차를 대더니 한숨 자겠다며 나보고만 해변에 다녀오란다. 조심조심 찾아 나선 길~ 특유의 고요함을 옆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흡수해 버린다. 그래도 참 좋다 해변에 당도하니 어쩜~~ 해변의 돌맹이들이 이리 클 줄이야! 그동안 모래 해변과 몽돌해변은 만났지만 이리 큰 돌들이 쌓인 해변은 처음이었다 진정 동글동글하면서 크고 예쁜 모습들~ 이름도 참 잘 붙여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룡알을 밟고 재밌게 왔다갔다하며 파도 소리도 듣곤 했다. 그러다 눈이 번뜩 뜨이며 보이는 식물 아!! 순비기나무였다 이렇게 많은 순비..

윤선도 원림, 세연정 -보길도에서

윤선도 문학관이라는데 아직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은 윤선도에 대한 기록물이 있는 곳이 아니고 문학 공부를 위한 장소로 오늘이 토요일이라 문을 닫은 듯싶었다. 세연정 매표소에 다시 돌아오니 문이 열려 있었다 우리가 1등 손님~ 다행히 우리 뒤로 단체 일행이 와서 괜한 미안함을 덜었다. 매표소를 통과하니 곧바로 세연정이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윤선도원림이라는 기념관을 들려야 했다. 윤선도의 생애와 업적 등을 알리기 위한 일환으로 동선이 짜인 듯싶었다. 원림에 들어서니 숫자와 그에 관련한 윤선도의 정치적 업적과 그가 이곳에 내려와서 지은 어부사시사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원림에 들어서니 숫자와 그에 관련한 윤선도의 정치적 업적과 그가 이곳에 내려와서 지은 어부사시사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작년? 한 논..

우암 송시열의 글씐바위 -보길도에서

지난 7월 1일에 연화도를 다녀온 후 일주일 만인 7월 8일에 보길도를 다녀왔다. 나는 업무상 바쁜 시기였지만 토요일이라는 든든한 핑계를 대며 한 번 작정한 남편의 의견을 저버리지 못했다 남편 역시 이리저리 따져보고 갑자기 정한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보길도는 아이들 어렸을 때 한 번 다녀왔는데 해수욕장만 기억이 날 뿐 전혀 다른 무엇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새벽? 한밤중에 정확히 3시 10분에 출발했다. 보길도는 완도 화흥포 항에서 노화도 동천항까지 가는 배를 타야 하는데 예매가 되지 않고 현장 발권하는 까닭에 서둘러 출발한 것이다. 산청휴게소에서 아침을 누들식(면)으로 했다 어딘가로 떠날 때는 나그네가 되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왠지 우동이나 라면을 먹는 것이 여행 기분을 더 해 주는 것 같다는 내 느..

바다를 헤엄치는 龍의 섬, 연화도

우리가 그곳을 찾아가게 된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2월에 이집트 여행을 다녀온 후, 나들이다운 나들이를 못 해보고 일상을 살았다. 기껏해야 생활근거지 주변으로 운동 삼아 다니는 시간이었을 뿐! 남편이 갑자기 콧등에 여름 바람이라도 쏘이자며 제안한 곳은 코레일 투어 협곡열차 여행이었다. 물론 주말 당일치기다. 지난 7월 1일 일정으로 인터넷 예약을 진행하려 하니 예약 불가란다. 왜? 전화해 보니 손님이 적어 그날 계획은 취소가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코레일 측에서는 기차 운행은 계속되는 까닭에 개인적으로 타고 다녀올 수 있다고 알려주지만 우리가 가기에는 너무 멀고 왕복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협곡열차를 타고 자동차로는 갈 수 없는 깊은 골짜기에 하늘 세 평, 땅 세 평을 차지..

유럽(23.04.01- 파리 몽마르뜨 언덕)

▲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맞이한 파리의 아침 - 숙소에서 - ▼ 오늘 여행 마지막 일정으로 몽마르뜨 언덕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글이나 화보등을 통해 알고 있었던 파리의 몽마르뜨는 거리 화가들이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는 분위기를 지닌 곳이라고 하니 왠지 모르게 낭만적으로 다가오면서 그곳에는 화가들도 문인들도 거리를 걸어 다니겠지?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었다. 파리 북쪽에 위치한 언덕마을 몽마르뜨는 높이 130m에 불과하지만 파리 시내가 다 보이는 곳이라 한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포도밭과 밀밭이 있고 석고 광산들이 있는 목가적인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무들이 있고 특히 탱자나무 꽃을 만나 반가웠다. 성당 왼편으로 데르트르 광장을 만나는데 화가들이 많이 앉아 초상화를 그려준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