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마음따라 발길따라 428

단풍 없는 가을 주왕산

11월 9일 월례 산악회 등산일이다 친구가 꼭 가자고 하면서 신청을 했기에 함께 다녀왔다 일 년 12번의 산행 중 겨우 4번째 참석인데 3번 미만 참석 시 탈락되는 위기에서 겨우 면 했다. 경북 청송의 주왕산이니 이곳에서 먼 거리라서 새벽 5시에 출발했다. 4시간여 달려 도착한 주왕산은 예전 2014년에 올랐던 산이었다. 오늘은 2팀으로 나뉘어 1팀은 주봉에 올라 폭포를 돌아오는 팀이고 2팀은 산행이 어려운 사람들의 팀으로 폭포까지만 왕복하는 경우다 나는 1팀에 합류하고 친구 둘은 2팀에 합류했다. 주왕산은 726m의 높이인데 예전에 다녀올 때는 힘 하나 안 들이고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엄청 힘들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오르는 길 대부분을 데크로 만들어 놓은 가파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변명이고, 이제..

잠깐 적벽강에서

지난 9일 위도를 다녀오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의 적벽강을 잠시 둘러봤다. 지방 신문에 이곳 코스모스 꽃을 소개해 놓은 기사를 보았었다. 마실길 3코스 길을 해안 따라 걸으면 완벽한 적벽강을 만나볼 수 있는데 이곳은 배 타지 않고도 올 수 있는 접근성이 좋기에 어렵게 오는 곳이라면 꼭 전부를 돌아보았겠지만 그날따라 덥기도 했고 언제든 와 볼 수 있다는 조건이 주는 마음의 해이감으로 그냥 잠깐 둘러보았다.

상사화는 큰 달(대월습곡)을 보며 그리움을 달래다

위도(蝟島)의 명칭은 고슴도치를 뜻하는 위(蝟)와 섬을 뜻하는 도(島)에서 비롯되었다. 위도라는 섬의 명칭에 고슴도치가 등장하게 된 것은 섬의 전체적인 모습이 고슴도치를 닮았기 때문이다. 위도는 부안에서 가장 큰 섬이다. 섬이면서도 6개의 유인도와 24개의 무인섬을 거느리고 있으니 위도의 위상을 새삼 헤아려보는 마음이다. 길쭉한 섬 양쪽으로 구불구불한 해안도로가 조성되어 있어 자동차로 돌아보기에 좋은 섬이다. 1993년 10월 10일 200명 정원인 배에 362명을 싣고 운항하던 배가 임수도부근에서 침몰하면서 292명이 사망한 사고로 그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탑 - 위도 관아 - 조선 숙종 때의 건물로 수군 진영의 동헌으로 관원들이 공무를 보던 건물 위도는 황금어장이 있을 뿐 아니라 세곡선이 지나..

갈매기의 날개 짓에 위로 받다.

어머니의 흔적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소중한 어머니의 상속재산을 정리해야만 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일 년을 넘긴 시점에 이르니 여기저기서 조언이 들어왔다. 부동산은 살아계실 때 정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주 복잡하다고… 더구나 우리에게는 먼저 간 형제가 있어 더욱 그러하다는 조언을 해 주곤 했다. 부동산이라야 작은 아파트 한 채이고 어머니 명의의 통장 예금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난 8월 10일에 아파트 매매가 이루어지면서 매매금이 어머니 통장으로 입금이 되었고 그 후 19일에 어머니 면회를 했고 23일에 집 정리를 마치고 나니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지금 우리 형제들은 이 모든 일들을 어머니께서 정리해 주신 것이라고 말을 하곤 한다. 며칠에 걸쳐 자녀들이 각종 서..

윤선도와 낙서재, 곡수당 ㅡ 보길도에서

낙서재 고산의 주된 공간이었던 낙서재는 1637년 보길도에 입도하여 이 섬의 주산인 격자봉의 혈맥을 쫓아 집터를 잡고 3칸의 초가로 된 집을 지어 작품활동을 한 곳이다. 곡수당 곡수당은 격자봉에서 흐른물이 이곳에 이르러 곡수를 이루고 있다하여 붙인 이름으로 윤선도의 아들 학관이 휴식하던 장소로 서재 건물과 함께 곡수당이라 하였다. 초등학교 앞 세연식당에서 콩국수와 파전으로 점심을 먹고 돌아오기 위해 다시 노화도로 출발하여 동천항에 도착 하였으나 안개로 출항금지라는 안내문을 내걸고 문을 닫아 놓았다. 깜짝 놀랐다 우리는 약간의 비 내리는 날의 안개어린 풍경의 운치를 즐기며 걱정 없이 다녔는데 항구에서는 안전을 위해 배의 발을 묶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

공룡알 해변 - 보길도에서

가장 궁금했던 세연정을 뒤로하고 우리는 또 다른 윤선도의 자취를 찾아 나서며 먼저 공룡알 해변을 찾았다. 내비가 알려줘 수월하게 찾았지만 새벽부터 운전하느라 남편은 몹시 졸리는가 보다 주차장에 차를 대더니 한숨 자겠다며 나보고만 해변에 다녀오란다. 조심조심 찾아 나선 길~ 특유의 고요함을 옆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흡수해 버린다. 그래도 참 좋다 해변에 당도하니 어쩜~~ 해변의 돌맹이들이 이리 클 줄이야! 그동안 모래 해변과 몽돌해변은 만났지만 이리 큰 돌들이 쌓인 해변은 처음이었다 진정 동글동글하면서 크고 예쁜 모습들~ 이름도 참 잘 붙여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룡알을 밟고 재밌게 왔다갔다하며 파도 소리도 듣곤 했다. 그러다 눈이 번뜩 뜨이며 보이는 식물 아!! 순비기나무였다 이렇게 많은 순비..

윤선도 원림, 세연정 -보길도에서

윤선도 문학관이라는데 아직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은 윤선도에 대한 기록물이 있는 곳이 아니고 문학 공부를 위한 장소로 오늘이 토요일이라 문을 닫은 듯싶었다. 세연정 매표소에 다시 돌아오니 문이 열려 있었다 우리가 1등 손님~ 다행히 우리 뒤로 단체 일행이 와서 괜한 미안함을 덜었다. 매표소를 통과하니 곧바로 세연정이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윤선도원림이라는 기념관을 들려야 했다. 윤선도의 생애와 업적 등을 알리기 위한 일환으로 동선이 짜인 듯싶었다. 원림에 들어서니 숫자와 그에 관련한 윤선도의 정치적 업적과 그가 이곳에 내려와서 지은 어부사시사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원림에 들어서니 숫자와 그에 관련한 윤선도의 정치적 업적과 그가 이곳에 내려와서 지은 어부사시사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작년? 한 논..

우암 송시열의 글씐바위 -보길도에서

지난 7월 1일에 연화도를 다녀온 후 일주일 만인 7월 8일에 보길도를 다녀왔다. 나는 업무상 바쁜 시기였지만 토요일이라는 든든한 핑계를 대며 한 번 작정한 남편의 의견을 저버리지 못했다 남편 역시 이리저리 따져보고 갑자기 정한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보길도는 아이들 어렸을 때 한 번 다녀왔는데 해수욕장만 기억이 날 뿐 전혀 다른 무엇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새벽? 한밤중에 정확히 3시 10분에 출발했다. 보길도는 완도 화흥포 항에서 노화도 동천항까지 가는 배를 타야 하는데 예매가 되지 않고 현장 발권하는 까닭에 서둘러 출발한 것이다. 산청휴게소에서 아침을 누들식(면)으로 했다 어딘가로 떠날 때는 나그네가 되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왠지 우동이나 라면을 먹는 것이 여행 기분을 더 해 주는 것 같다는 내 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