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상문

저만치 혼자서

물소리~~^ 2022. 7. 17. 11:00

 

 

   더워도 너무 덥다

   코로나에 지쳤다고 늘 핑계를 대며

   이것도 저것도 두루뭉술 넘기는 시간이 아깝다며

   가끔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구입 하고서도 읽기에 게으른 마음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볍게 읽고 싶다며 주제넘게

   또다시 선택한 책이 김훈작가님의 단편소설집 ‘저만치 혼자서’ 였다.

 

   작가의 문체는 언제나 매력적이기에 작가의 책 다수를 읽었고

   그 책 모두 지금도 나의 책꽂이에 꽂혀있고

   두 어 권은 지인에게 읽어보라고 빌려주기도 했다.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우리 인간, 아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들을 읽으며

   나의 삶의 흐름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기도 하니

   내 편인 듯 그렇게 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늘 혼자 나서는 저녁 산책길에

   책 읽은 내용을 되새기며 나름 충만한 시간으로 채울 수 있으니

   언제나 가난한 마음이지만 부자가 될 수 있는 떳떳함으로 걸음도 씩씩하다

 

 

   1. 명태와 고래

   아침에, 고래의 대열은 빛이 퍼지는 수평선 쪽으로 나아갔다.

   고래들이 물 위로 치솟을 때 대가리에서 아침 햇살이 튕겼고,

   곤두박질쳐서 잠길 때 꼬리지느러미에서 빛의 가루들이 흩어졌다. p10

 

주인공 이춘개

그의 삶이 터전이 삶의 올가미가 되어 죽음으로 끝나다니!!!

 

 

 2. 손

   나는 철호가 그 집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살았는지를 그때도 그 후에도 묻지 않았고

   철호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을 묻는다면 아무런 위안도 없이 상처를 들쑤시는 결과가 될 것이었다.

   (중략)

   열 살 난 아이가 혼자서 아무런 짐도 없이, 물병도 없이, 고속버스를 기다리고

   고속터미널에서 지하철역으로, 전철에서 내려서 다시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두리번거리며 길을 묻고 다녔을 모습을 생각하면서 나는 목구멍이 뜨거웠다.

   그 목적지가 나였다. p 73

 

결혼하여 낳은 자식에 대한 책임

어떤 형태로든 부모에게 되돌아오는 것 일까…

 

 

   3. 저녁내기

   주인공1 : 이춘갑

   외환위기 때 이혼하였다.

   이 년후, 법원으로부터 채무면책 허가를 받았다.

 

   법원의 직인이 찍힌 문서를 읽으면서

   이춘갑은 한 생애의 모든 일상이 소멸된 자리에서 갯벌처럼 드러나는 공터를 느꼈다.

   이춘갑은 경남 해안의 여러 소읍과 포구를 옮겨 다니며 자랐다.

   이춘갑은 아버지의 생업이 무엇이었는지 뚜렷이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밥이라는 천형을 복역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았고,

   태어났을 때부터 무기징역을 받은 것 같았다. p106

 

   주인공2 : 오개남

   오개남은 1.4 후퇴 이후에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태어났다. p 102

 

   장기를 이긴 것은,

   손수레가 제어력을 벗어나서 내달릴 때 거기에 저항하지 않고

   미리 방향을 벽 쪽으로 틀어서 싸움을 끝내버린 것처럼

   달려드는 졸 앞에서 마를 미리 변두리로 빼냈기 때문이 아닐까… p104

 

서로 다른 이름으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삶 깊숙한 그곳에는 두 주인공의 신산한 삶의 길이

나란히 비슷하게 펼쳐져 있었다.

 

 

   4. 대장 내시경 검사

   전처와 살 때는 사소한 일로 자주 다투었다.

   삽 십 년이 넘는 그 세월의 다툼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사소한 것이 사소하지 않았고, 무의미한 것들이 쌓여서 무의미하지 않았다.

   화해하려는 노력이 더 큰 싸움을 일으켰다. p 125

 

   나은희의 편지를 읽고 나서 나의 생애 속에 흩어진 시간들이 이어지는 것을 느꼈다. p129

 

대장 내시경 할 때 보호자가 필요한데..

뒷모습마저 익숙한 전처도,

한 때 사랑했던 사람도, 단지 생애 속에 왔다 간 사람들일 뿐~~

지금 곁에서 나를 돌봐주는 도우미가 유일한 보호자 !!

 

 

   5. 영자

   흉어가 계속되자 아버지는 4.5톤짜리 연안 자망 어선을 팔아서 수협 빚을 갚았고

   남은 돈으로 나의 서울 이주 비용을 대 주었다.

   (중략)

   -내년 부터는 다달이 돈을 보내줄 수가 없으니

   9급인지 10급인 빨리 붙어서 너의 발로 서는 꼴을 보여다오.

   네 아비 등뼈 휘는 꼴이 네 눈에는 안 뵈냐? - p153

 

   내가 9급에 합격했을 때 아버지의 섬마을 포구에서

   늙은 어부들이 푼돈을 모아서 아버지에게 술자리를 차려주었다는 소식을

   아버지가 편지로 전해 주었다. p169

 

주인공은 노량진 고시텔에 입주하여 방세를 줄이기 위해 동거인을 구하던 중

인터넷 카페에서 영자를 만나 함께 지낸다.

 

서울 노량진동에는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구준생)들의 집단 주거지가 형성되어있다.

그들 누구나가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와중에도 살아가야하는 그들의 삶의 형태를 간혹 접하다 보면 마음이 쓰라린데

작가님의 시선으로 읽어주신 그들의 삶의 모습을 재 음미해 본다

그래도 조금은 서글프다.

 

 

6. 48GOP

   한 구덩이에서 양쪽의 유품들이 모두 나왔다.

   북한군 AK소총의 총열과 아군 MI 소총의 방아틀 뭉치가 같은 참호에서 나왔다. p 208

 

   임하사의 분대는 작업장의 잡초를 제거했고, 파낸 흙을 들것으로 옮겼다.

   임하사는 들것을 들고 구덩이들 사이를 걸어가면서 뼛조각들을 들여다보았다.

   뼈들은 헐거워 보였다. 작은 구멍들 사이에 봄볕이 오글거렸다.

   뼈들은 오십 년 만의 햇볕을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p209

 

작가는 최전방 이야기를 자주 쓰는 것 같다.

내 생각으로는 자전거 여행은 물론,

곳곳을 다니면서 접한 풍경에서 글감으로 채택하는 것 같다는 어설픈 생각이 든다.

우리의 현실인 전쟁과 분단은 전후 세대인 나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변하지 않는 것들이 변하는 것을 억누르고 있다는 작가의 말에 깊은 동감이 일렁였다.

 

 

   7. 저만치 혼자서

   마가레트는 죽어가는 자들에게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의 궤적을 묻지 않았다.

   마가레트는 죽어가는 자들을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씻겨서

   구원이나 인도가 아니라 동행의 방식으로 임종까지 함께 가서 망자들을 배웅했다. p217

 

   도라지수녀원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은 것이 아니고 저절로 불리게 된 것인데

   그 까닭은 도라지꽃의 색깔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백도라지꽃의 흰색은 다만 하양색이 아니라

   온갖 색의 잠재태를 모두 감추어서 거느리고 검은색 쪽으로 흘러가고 있지요

   (중략)

   그래서 도라지는 이름이라기보다는 잠이나 숨 같은 것입니다.

 

   봄부터 초겨울까지, 수녀원 마당에서 장미는 피고 지기를 잇대었고,

   지면서 더욱 피었다.

   꽃 한 송이는 죽음의 반대쪽에서 피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꽃이 지는 것이 죽음은 아니었다. p 229

 

   사한다는 것은 이미 저지른 죄업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그 죄업에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은총일 것입니다. p245

 

작가는 신앙의 신비는 일상의 생활속에 있다고 하였다.

진정 그러하다

‘자신이 나약할 때 신을 찾는다’는 문장을 언젠가 체득하고서

이 말에 나의 무신앙을 합리화 시키곤 했는데

그 얼마나 건방진 마음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나로서

일상 자체가 신앙이라는 말에 위안을 삼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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