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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숲 속 학교에 귀 기울이다.

물소리~~^ 2024. 6. 27. 22:53

 
 
 

▲'어치'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날 여러 포즈로 나에게 모델이 되어 주었다.

    

일요일 무심코 티브이 리모컨을 누르니 시원한 바닷가에 새들이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아마도 케이블 방송인 듯 낯선 채널이었다. 별 마음 없이 화면을 주시하노라니 새의 행동을 잘 지켜보라는 진행자의 멘트가 호기심을 자각한다. 새의 발 옆에는 관광객이 던져준 빵 조각이 있었다.
 
그 새는 빵을 한참을 주시하더니 부리로 두 조각을 내었다. 그중 하나를 부리로 집기에 먹으려는 줄 알았는데 바로 물속에 텀벙 빠트리는 것이다. 왜이지? 하고 바라보다 나는 그만 탄성을 질렀다. 그 빵 조각을 먹기 위해 달려드는 작은 물고기 떼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순간 새는 부리나케 물고기 한 마리를 집어 올리는 것이었다. 새는 빵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더 좋은 먹잇감을 구하고 있었다. 참으로 영리한 그들이 아닌가.
 
나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한 어떤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지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도구를 이용하는 지혜를 지닌 것으로 인간의 우월성을 말했던가? 하지만 인간만이 도구를 이용하는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순간 깨달았다. 새들을 더 가까이 바라보고 싶다는 욕망이 그득히 차오르며 뒷산에 올라 새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
 

 
초여름 숲은 상쾌한 기운으로 충만하다. 지난밤, 하늘의 천사들이 내려와 노닐다 급히 떠나면서 미처 챙기지 못하고 남겨둔 신선 함일까. 내 이런 상상을 안다는 듯,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이 천사들의 모습을 보았노라고 재잘거린다. 나는 저들의 재잘거림을 알아듣는 척하며 오늘따라 예사롭지 않게 듣고 있는 것은 그들의 영리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혜를 어떻게 취했을까. 무엇을 보고 배웠을까. 문득 이 숲은 새들의 학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숲을 채우는 나무들은 세월에 따라 오래된 자신의 피부를 안으로 숨기고 새로 생성되는 젊은 목질로 겉을 감싸는 나이테를 생성하며 신진대사를 거듭한다고 한다. 숲은 이렇게 싱싱한 젊음만을 내주는 나무들의 삶의 질서가 가득한 좋은 곳이다. 세상 모든 것에 뜻이 있다면 이 숲에서 살고 있는 모든 생명들도 상형문자가 되어 뭇 생명들에게 자신이 지닌 좋은 뜻을 은연중 전달하는 배움터라고 말하고 싶다.
 

 
새들은 이 숲의 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문자를 해독하여 울음소리의 강약으로 그들의 뜻을 읽으며 지혜를 채웠을 것이다. 소나무에게서 올곧은 기상을, 상수리나무 가지를 비행기 삼아 날려 보내는 도토리거위벌레로부터는 모성을 배웠을 것이다. 보랏빛 꽃을 피우는 오동나무에게서는 빨리 자라는 비법을, 낮은 초목들에게서는 겸손을 배웠을 것이다. 그렇게 숲의 생명들이 보여주는 몸짓 문자를 읽고 배우기 위해 새들은 날마다 공부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산비둘기의 구구구 하며 내는 소리는 구구단을 외우는 소리다. 딱따구리는 나무 기둥 악기를 열심히 두드리며 간혹 일어나는 불협화음을 조율하여 멋진 화음으로 이끌어 내기도 한다. 늘 같은 나뭇가지에서 맑고 청아한 음색으로 지지 배배 지지 배배 우는 저 작은 종달새는 논어를 읽고 있다. 요즈음 장기 결석하는 제비 대신 종달새가 논어를 읽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조선시대의 문장가 유몽인은 제비가 논어를 읽는다 하였다.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부지위부지(不知爲不知), 시지야(是知也)’ 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 이니라"라는 뜻으로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빨리 읽으면 제비의 울음소리와 비슷하다 하여 한 말이다.
 

▲딱다구리

 
논어야 말로 인류의 고전인 즉, 그 누구라도 읽어야 마땅함이니 찾아오지 않는 제비가 아닌 종달새가 읽고 있다 한들 탓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이런 맘으로, 날아가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지지배배 우는 저 새소리를 듣노라니 문득 내 머리를 확 깨우치는 무언가가 있다. 종달새는 나한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는 것은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여라.
지지 배배 지지 배배 아는 척 하지마라! 이 지지배아이야!”
 
마음 놓고 있다 불쑥 날아온 한마디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책 속에서 귀함을 만나듯 삶의 갈피에서도 느닷없이 만나는 귀함이 있다.
아! 나도 저 종달새가 전하는 귀함을 이제 알아들었으니
나 역시 한창 녹음의 향연이 펼쳐지는 6월 숲 속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이다.
나를 품어주며 새를 통해 깨우쳐 준 우리 뒷산의 너른 품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선다.
싱싱한 6월 숲에서의 이런 멋진 새들과의 만남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 예전에 쓴 글을 조금 각색 (脚色 ) 하여 이곳에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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