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내맘의 글방

꽃에 실려 온 옛 생각에 젖었다.

물소리~~^ 2024. 1. 26. 22:53

 

 

▲ 이제 행운목이 꽃대를 올렸다 (1월 24일)

 

 

새해 들어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요즈음,

나는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들에 파묻혀 지내는 듯싶다.

연말정산이 그러하고 지난해 결산을 요구하는 관공서에 제출하는 업무들이 있어서다.

그러느라 매서운 추위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개미 쳇바퀴 돌리는 일상에서 늘 똑같은 동선을 반복하다 보면

나 자신이 어떤 매뉴얼 따라 움직이는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업무든 살림이든 내 몸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보이지 않는 한 틀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살아가다 문득문득 이 틀 안에서 나를 꺼내어 주며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뜻밖의 존재들이다.

며칠 전 아침이 그러했다.

아침 바쁜 시간을 쪼개어 청소기를 밀며 이 방, 저 방, 거실, 주방, 욕실을 오가는데

거실 한쪽에서 자라고 있는 행운목의 자태가 무언가 이상하다.

무어지? 왜 오늘은 낯설지? 하면서 가까이 다가가니!! 

세상에~~ 행운목이 자신의 중심에 꽃대를 올리고 있었다.

어찌나 반가운지 그냥 청소기를 내려놓고 겅중겅중 뛰는 듯싶은 몸짓을 보였다.

 

행운목은 나에게

‘꽃 피우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렇게 순간적으로는 쉬운 일 이었어요’라고 말을 걸어오며

답답한 틀 안에서 나를 꺼내 주었던 것 이다. 이제는 꽃대가 쑥쑥 자랄 것이다.

우리 집 화분들은 거의 관엽식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잎을 주로 키우느라 꽃을 보기가 어렵다 하여 기대하지 않기에

어쩌다 꽃피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 가재발선인장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고

 

늦가을부터 콩고가 꽃봉오리를 4개나 올리더니 3개는 피었다 졌고 나머지 하나는 꽃을 아직 품고 있다.

어머니의 영산홍은 제철이 아닌데도 한겨울에 오래오래 피고 지며 내 눈길을 자꾸만 끌어가고 있다.

1월 초순경부터 주체 못 할 정도의 화려한 자태를 일주일 정도 뽐내던 가재발선인장은

이제 모두 시들어 가는데 아마도 행운목에 꽃 피우라는 바통을 이어 주었나 보다.

갑자기 이들의 꽃이 필 때마다 그때그때 변하는 내 마음을 받아주곤 했던 식물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아니 부여하고픈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며칠 전 한 신문의 칼럼의 내용이 떠올라서일 것이다.

 

 

▲ 밖은 하얀 눈세상인데 영산홍과 제라늄은 추위도 모르고 꽃을 피우고 있다.

 

 

▲ 20대 시절에 지니고 다녔던 수첩의 겉 표지

 

칼럼내용은 ‘순이 삼촌’ 이라는 중편 소설 속에 나오는 식물들을 이야기와 함께 건져 준 내용이었다.

물론 글쓴이의 관심사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순간 나는 그 책을 나의 20대에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 식물들이 거론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나는 내 오래된 물건들을 보관하는 작은 상자를 열었다.

그곳에는 비닐 커버가 씌워진, 40여 년의 세월을 지났음에도 아직도 튼튼한 모습의 수첩이 있다.

 

▲ 수첩내의 한 페이지에 매모했던 어느 달의 독서

내 기억을 더듬어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내가 찾고자 하는 내용을 만났다.

어쩌다 한 번씩 읽은 책들을 적어 놓곤 했는데

그 페이지에 '순이 삼춘- 현기영'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책이 79년도에 초판 되었으니

그 초판의 제목으로는 順伊삼춘 이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하여 순이를 한자로 順伊라 표기 하고 싶었는데

順의 순서를 잘못 기입하였고

잘못된 부분에 도장 날인을 해 놓은 모습에 웃음이 번졌다

 

 

그 시절 컴퓨터라는 기기가 없었으니 모든 공무의 행정업무는 펜으로 직접 글씨를 써야 했던 시절이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자를 대어 두 줄을 긋고

수정한 사람의 도장을 날인하여 수정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이러한 업무적인 습성을 나 개인적인 기록에도 적용하고 있었으니 이 또한 귀한 내 추억이 아닐까.

 

 

 

 

어찌했던 책은 분명히 읽었지만

내용을 알 수 없으니 다시

책을 구입하려고 인터넷서점에 들어가니

과연 지금도 책이 판매되고 있었다.

2015년 인쇄본은

그냥 한글로 순이삼촌 이었다.

 

책 가격이

14,400원에서 20,000원을 호가(呼價)한다.

그렇다면? 문화상품권을 사용해야겠다.

많은 업무들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이제 모든 업무는 기한 내에 홈페이지를 통해

전자신고로 진행하고 있다.

조금 일찍 전자 신고하는 사업체 담당자에게

가끔 상품권 한 장 씩 선물로 주기도 하는데

내가 그에 당첨되었고

모바일로 상품권을 받았던 것이다.

10,000원의 온라인 문화상품권이었다.

 

14,400원 값의 책을 선택하고

모바일 상품권으로 10,000원을 지불하고

나머지 4,400원만

카드결제를 하니 이 또한 오지다.

 

책 한 권에는

작가의 중편소설 10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한 편씩 읽을 생각하니

괜히 부자가 된 듯싶다.

 

 

 

 

 

작가는 제주도가 고향이다.

그곳에 살면서 직접 겪은 4.3 사건을 소설로 풀어낸 이야기인데

대화 속 제주도 사투리에 곁들여

그 어려운 시절의 생활 속에 함께 살아간 문학속 식물들이 몹시 궁금하였다.

 

순이삼촌은 단 27장, 총 53페이지에 걸친 중편 소설이기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 시절 금기시되어왔던 제주 4.3 사건을 처음 세상에 알린 작품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의 슬픈 , 그래서 애써 외면하고픈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역사를 찾아 나서다 보면 그 당시의 우리의 정서를 만날 수 있고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는 애절함도 다가온다.

그러면서 미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넌지시 들려주기에  역사 읽기를 좋아한다.

역사 속 인물들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는 말이 맞겠지만

이번에는 그에 등장하는, 그 시절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고

요즈음도 우리 곁에서 같이 살아가는 식물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었다.

 

 

신문의 칼럼지기의 글을 기억하며 읽어가는데

과연 60페이지에 멀구슬나무가 나왔다.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닌다 하여 목구슬 나무라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글 속에서는 먹구슬나무라 되어있었다. 제주도에서 불리는 이름인가 보다.

 

77페이지에는 청미래덩굴이 등장했다.

청미래덩굴은 불에 타도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91페이지에는 실거리나무와 엄나무가 제 몸이 지닌 특성으로 서민들의 삶을 도와주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갇혀 자라는 식물들도 나에게 새로움을 나누어주며 함께 살아가기에

나름대로 큰 의미를 부여해 주며 그 가치를 인정하고 싶은데

나는 늘 받기만 하고 받은 만큼의 도리를 못하고 지내고 있다.

그저 내 블로그 작은 공간에 올려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