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투명하다. 멀고 가까움의 선마저 더욱 뚜렷하게 도드라져 보이는 산빛은 한결 드높아진 하늘빛과 맞닿아 맑음을 빚어내고 있다. 그 맑음에 섞여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도 맑디맑다. 가을은 신명 가득한 저희끼리 놀 것이지 왜 나를 자꾸 유혹하는 것인지… 서류발송을 핑계 삼아 우체국까지 걸었다. 가을은 누구랑 친구 하며 놀고 있을까? 건물의 담 그늘이 서늘하다. 여름 같으면 얼른 들어섰을 그늘이었지만 금세 배반자가 되어 햇살 아래로 발을 옮겨 바라보니, 담 그늘에서는 아직도 방가지똥이 꽃을 피우고 서 있다. 잎에 돋은 가시가 행여 찬 기운을 막아내는 방패막이라도 될까. 이름마저 우스꽝스러운 멀쑥한 허우대에서 기척 없는 몸짓이 보인다. 큰 도로에 나서서 신호를 기다린다. 건너편 길의 가로수 벚나무 밑을 걷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