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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외로운 나그네 음식, 국수

물소리~~^ 2024. 5. 28. 22:01

 

 

 

 

매 일요일의 점심 메뉴의 선택에 걱정이 앞선다.

점심을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점심은 뭐 먹지? 하는 내 말에

남편은 나의 귀찮은 듯한 마음을 느꼈는지 국수나 먹자고 한다.

라면 하나 끓이면 그보다 더 간편하겠지만 이상하게 나는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할 정도다.

 

우리는 비빔국수를 선호하는 편이라 먼저 각종 고명을 준비한다.

계란 지단을 부치고 감자, 당근, 양파, 피망 등을 잘게 채 썰어 볶아 놓는다.

펄펄 끓는 물에 면을 넣은 후 뚜껑을 닫고 물이 부르르 끓어 넘치면 얼른 뚜껑을 열고

2분 정도 더 끓인 다음 얼음 동동 띄운 물에 헹구어 건져 서린다.

그때의 차지면서 부드러운 감촉을 주는 면발은 입맛을 저절로 당기게 하니

몇 가닥을 후루룩 입에 넣기도 한다.

 

알맞은 양을 그릇에 담고 고명을 얹고 고추장 양념에 쓱쓱 비벼 먹으면 꿀맛이다.

비빔국수만 먹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한 듯싶어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낸 맛국물에

유부, 파를 넣어 끓인 장국을 곁들이면 맛있다고 

김삿갓이 먹었던 국수 한 사발과 반 종지의 간장에 달하는 별미처럼 한 그릇씩 비워내곤 한다.

 

간혹 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취미는 휴게소에 꼭 한 번 들르는 일이다.

대부분 차 한잔하면서 주위 풍경을 둘러보는 일이지만 간혹 점심을 거르게 된 경우 웬만하면 참아 넘기지만

꼭 무언가가 먹고 싶은 경우 선택하는 것은 국수류, 요즈음 말로 누들(noodle) 식이다.

낯선 곳에서 무언가를 혼자 먹는다는 것은 꽤 쑥스러운 일이다.

하니 국수는 그렇게 홀로 길을 걷는 나그네에게 쉽게,

또 혼자 먹기에 가장 어울리는 음식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 국수나무 : 가느다란 줄기 껍질을 벗기면 국수가닥처럼 보인다고 국수나무

 

 

국수는 2천5백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에서 지난 1991년 도로 공사를 하던 중,

고대인들의 무덤에서 손가락 정도의 길이로 만든 음식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국수였다고 한다.

그 지점이 실크로드와 통하는 지점으로

그 음식이 길 따라 중국에 전해지면서 국수(면)가 성행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길을 통해 전해지고 길과 길을 걸어가며 만나는 음식 국수,

나는 그 국수를 현대의 고속도로에서 자주 만나고 있으니

혼자된 나그네의 외로움을 함께 나누는 음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국수와 나그네를 연결한다면 떠오르는 이야기 하나는 우리의 천재 방랑시인 김삿갓이다.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는 나그네 신세로 아무 집이나 문간방에 들어가 걸식을 하고서,

시 한 수를 남기고 떠나곤 했던 김삿갓의 詩 한 구절에

“국수한사발(菊樹寒沙發)” “지영반종지(枝影半從地)”라는 시구가 있다.

한문으로 된 이 시를 해석하면

‘국화는 찬 모래에 피고 나뭇가지 그림자가 반쯤 땅에 늘어졌구나.’라는 해석이 된다고 한다.

차가운 모래밭에 피어난 국화의 외로움과 그림자를 반밖에 드리우지 못한 나뭇가지에

삿갓을 쓰고 피해 다녀야만 했던 자신의 모습으로 비유했을까.

 

 

▲ 국수나무도 마치 헝클어진 줄기를 꽃으로 서리어 사리를 만들어 놓은 듯~~

 

 

하지만 후세인들은 이 시를 한글 발음대로 읽어야만 진정한 뜻을 알 수 있다 한다.

지영은 경상도 말로 간장이라고 하니,

즉 자신이 국수 한 사발을 간장 반 종지와 함께 얻어먹었다는 뜻이라 한다.

이처럼 한자음을 빌어 의미 깊은 뜻을 표현한 그의 천재성에 놀라움과 함께 아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어쨌든 한시든, 발음 그대로 한글로 읽든

외로움 속에 간단한 음식을 받아야 했던 방랑 시인의 처지가 참 마음 아릿하게 젖어온다.

삿갓을 쓰고 다니며 국수 한 사발을 얻어먹어야만 했던 감정을 억누르는 일은

찬물에 막 건져 올린 국수를 서리는 것처럼 쉽지 않았겠지만

사리 되어 쌓인 어려움과 외로움을 시 한 수로 풀어 버리며 다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국수를 삶아 헝클어지지 않도록 돌려놓는 것을 ‘서리다’라고 표현한다면

그렇게 돌려서 만들어진 하나의 덩이를 사리라 한다.

우리의 속담에 어떤 일이 쉽게 해결되는 뜻으로 국수사리 풀어지듯이 풀린다고 한다.

사리가 그렇게 쉽게 풀어질 수 있음은

헝클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국수 가닥을 서려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 쉽게 풀린 사리는 꽃으로 피어났다.

 

 

내가 먼저 스스로 나의 감정을 잘 서리어 놓는다면

어쩌면 복잡다단한 생활 속에서도 내 감정이 먼저 쉽게 풀릴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본질적 삶의 길은 홀로 걸어야 하는 길이다.

내 안의 감정을 잘 서리어 질긴 삶의 질곡 속에서도 스르르 풀리는 꿈의 사리로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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