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내맘의 글방

인생에서 귀한 것은 마음을 알아주는 일

물소리~~^ 2022. 12. 13. 14:41

 

 

초저녁 시간대에 산책 삼아 내가 늘 다니는 코스의 한 곳은

‘뽕나무 집’이라는 간판의 음식점이 있었던 곳이다.

그곳은 음식점 이름처럼 뽕나무 여러 그루가 우거져 있었고 근방에는 탱자나무 울타리도 있었기에

철 따라 운치 있는 아담한 풍경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난 뽕나무보다는 울타리 식으로 둘려져 있던 탱자나무에 더욱 마음이 쏠리곤 했다.

아주 울창하고 길게 이어져 있었던 탱자나무였는데 지금은 많이 베어지고 한 곳에 조금 자리하고 있다.

그나마 환삼덩굴이 탱자나무를 뒤덮듯 엉켜 있으니 행여 아예 사라질까 아쉬운 마음이 자꾸 더해진다.

 

 

▲ 어느 봄날의 탱자나무

 

봄날 탱자나무가 꽃을 피울 즈음이 되면 일부러 꽃을 보러 가곤 했다.

유독 하얀빛을 발하는 꽃들은

줄기의 가시를 비켜나려는 듯 꽃잎을 성글게 피우니 참으로 애잔한 모습이다.

달 밝은 밤 탱자꽃의 흰빛은 하얗다 못해 푸릇한 빛이 감도는 듯싶으니

때로는 탱자나무 깊숙이 들어온 달빛이

탱자나무 가시에 갇혀 나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서린 빛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달빛은 억지로 그곳에서 나오려 하지 않고

오히려 아늑함을 함께 즐기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탱자나무 가시는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매력을 지닌 존재라 여기곤 했다.

 

 

▲ 탱자나무꽃과 여린 가시

 

꽃을 피우기 전,

연하게 올라오는 여린 순의 탱자나무 가시는 모습만 뾰족하였지 절대 사납지 않다.

유들유들한 가지에 달린 가시를 분질러 보면

가시 부분만 똑! 소리와 함께 부러지는 그 야무짐을 참으로 좋아했다.

음식 맛으로 한다면 아삭한 느낌이랄까.

여린 듯싶으면서도 알맞게 단단해진 가시가 부러지며 전해주는 감촉은,

무언가를 나눌 때 아주 절도 있게, 정확하게 나누어지는 그런 느낌이어서 참 좋아한다.

 

며칠 전, 비 그친 후

호숫가를 돌면서 탱자나무 곁을 지나노라니 작은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살그머니 다가가 귀 기울여 보니, 어쩜 새들이 작은 소리로 재잘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참새들인 것 같았다. 왜 하필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 속에 앉아 있을까.

저희끼리 저녁 모임을 하고 있는지 가만가만 속삭이는 듯싶게 재잘거리는 새소리에 그만 미소가 번진다.

문득 나무속 풍경이 궁금해진다.

 

▲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의 수령 200년 탱자나무(전북기념물112호) : 2012년 3월 방문시 촬영

 

듬성듬성 나 있는 탱자나무 가시들은 서로의 제 키를 맞대어 틈틈이 공간에 방을 만들어

낮 동안의 햇살을 모아 놓고 오늘처럼 추운 겨울을 지내는 참새들을 초대하여 

빈 가지로 지내야 하는 외로움을 함께 나누고 싶었을까. 

하지만 참새들은 가시가 있으니 함부로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로 같은 집에 들어와 행여 길 잃을까 봐 자기들끼리 조심하자며 소곤대곤 있는 것일 것이다.

 

참새들이 저렇게 얌전하다니…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껄떡거리기도 하고,

가을이면 들녘에서 남의 것을 탐내다 무참히 쫓기는 새이지 않았던가.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방정맞게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을 참새 엉덩이 같다고 한다.

그런 부산함으로 어떻게 저렇게 소곤거리며 날갯짓조차 조심스럽게 나대고 있을까.

 

 

▲우리집 벽에 걸려있는 수묵화 : 미풍세우 속 참새

 

 

나는 모르고 있었다.

텃새지만 텃세를 부리지 않는 겸손을 지니고,

여름에는 해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행동을 하는 참새의 ‘참’ (진) 면목을…

하지만 탱자나무는 참새들을 깊은 안목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애꿎게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참새들을 초대해 똑 부러지는 야무짐으로 그들을 다독여 주면,

말 잘 듣는 어린아이들처럼 조용히 재잘거리는 참새들을 바라보며 흐뭇해하였던 것이다.

참새들은 얼마나 좋을까.  그곳의 아늑함에 안주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속살거리며

탱자나무의 텅 빈 외로움의 공간을 채워주고 있지 않은가.

 

인생에서 귀한 것은 마음을 알아주는 일이라 했거늘…

탱자나무는 날카롭지만 부드러운 가시의 공간을 조심스럽게 내주고,

참새는 그 공간에서 정겹게 지저귀며 외로운 탱자나무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으니,

참새와 탱자나무는 서로가 지닌 것으로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주며 원활한 소통을 하고 있었다.

소통은 서로 간에 진심이 담긴 행동과 마음으로 내 것을 나누어 줄 수 있을 때 저절로 흐르는 것이다.

 

어느 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의 공통된 키워드는 위로와 동감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살아가며 서로 위로하고 동감하며 소통의 장을 이루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탱자나무도 되어보고 참새도 되어보면서 내가 지닌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진심으로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소통하고 싶어 했는지,

아늑한 공간 속에서 도란거리며 주고받는 저들만의 은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