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내맘의 글방 172

깊은 골짜기 단풍 숲에서 받은 마음의 보약

10월 중순 어느 날 아침 9시, 지리산 성삼재는 막 번지기 시작하는 아침햇살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껴안고 있다. 저 해는 분명 천왕봉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로부터 환호를 받았겠지. 나무 사이로 깊숙이 파고드는 햇살에 나무들은 제 잎을 먼저 내 보이며 나를 환영하듯 반짝이는 길을 또박또박 걸으며 노고단으로 향했다. 노고단 고개에 이르면 노고단 정상으로 올라가는 문과, 지리산 종주를 시작하기 위해 통과하는 문이 있다. 고개라 이름 불리는 장소는 조금은 광활하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싶은데 산 속에서 만나는 넓은 곳이기도 하지만 그날따라 하늘의 공활함이 노고단 고개를 더더욱 넓게 펼쳐주고 있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거닐며 사진도 찍고 풍경을 감상하였다. 실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특별함은 없지만 지금 순간처..

내맘의 글방 2022.10.26

우리의 삶은 연습의 연속이다.

아침 일찍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집어 드니 몇 장의 전단지가 주르륵 쏟아진다. 하나하나 집어 들고 보니 그 중 한 장이 앞면에만 인쇄가 되어있었고 뒷면은 깨끗한 채로 끼어있었다.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참 오랜만에 만나는 전단지의 뒷면이었다. 학창 시절, 그런 종이를 모아 묶어 연습장이라는 제목의 노트를 만들어 가지고 다녔다. 모든 과목에 따른 노트가 한권씩 있었지만, 그 노트에는 그 과목의 내용만 깨끗하게 적어두고 가끔 검사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연습장에는 아무거나 써도 무방하였다. 수학문제를 길게 풀어나가기도 하였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기위해 수 십 번씩 쓰고 반복하기도 하였다. 지루한 시간을 만나면 선생님 몰래 그림을 그리며 낙서를 하기도 했다. 꽉 조여진 규율 속에서 ..

내맘의 글방 2022.10.12

굴비 맛은 숨죽인 당당함

추석 전 토요일, 급하게 약속된 시간에 맞추어 가느라 허둥대며 조금 일찍 사무실에서 나오는 바람에 친구와 만남이 어긋났다. 물론 친구도 사전 약속이 없이 으레 내가 사무실에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찾아온 경우였다. 아마도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무언가 선물을 가지고 왔고, 그에 일부러 말하지 않고 온 것인데 그만 어긋난 것이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다음 날을 기약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로부터 어렵게 전해 받은 선물은 굴비 한 두름 이였다. 굴비는 번거롭지 않게 식탁에 올릴 수 있어 좋다. 노릇하게 구워 낸 굴비는 저절로 입맛을 당기게 한다. 조기는 생선 중에서도 맛이 좋기로 으뜸이다. 또한 제사나 차례 상에도 빠지지 않으니 절까지 받으며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조기를 소금에 절여 잘 말리면 굴비가 되어 ..

내맘의 글방 2022.09.14

매미 우는 소리를 들으며

물을 퍼붓듯 비를 쏟아내고 지나간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고도 맑다. 저 맑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아픈 마음들이 더 많아서 일 것이다. 일요일이니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다. 평소와 똑같은 시간으로 일상을 시작하고 집안청소까지 마치고 컴 앞에 앉았다. 막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려 하는데 집 안에서 매미 소리가 난다. 무어지? 어떻게 집안에?? 하며 매미 소리를 따라가 보니 집 안이 아닌, 주방 옆 창 밖 우리 집 가스 배관 위에 매미 한 마리가 앉아 울고 있는 것이다. 아니 지척에 산을 두고 왜 이곳에서 울고 있을까. 사진 찍는 기척에도 날아가지 않고 울고 있다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산 쪽에서 우는 매미 소리에 화답하는 듯싶게 소리를 주고받고 있다. 짝을 찾으려는 소리라는데... 입추가 지나..

내맘의 글방 2022.08.14

여름날의 추억 하나

더워도 너무 더운 날, 점심시간에 외식을 하기로 하고 조금 먼 곳, 폐교를 식당으로 운영하는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음식점까지 한적한 시골길을 차로 달리지만 바깥의 열기는 대단하다. 이 쨍한 햇볕을 품은 여름의 뜨거움이 없다면 가을의 반가움이 없을 것이고 겨울의 그리움이 시들할 것이다 하니 이 여름을 즐겨야 할 것이라며 더위를 바라보니 후끈한 열기로 화답한다. 음식점은 먹음직스러운 쌈밥집인데 그에 보리 비빔밥을 덤으로 먹을 수 있으니 나처럼 양이 작은 사람은 보리밥만으로도 한 끼가 충분할 터이지만 모두들 보리밥을 먼저 챙긴다. 제육볶음과 함께 구수한 된장찌개를 곁들인 쌈밥을 먹고 나오며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옛 교실 풍경을 둘러보는데 문득 풍금이 보인다. 그만 마음이 착 가라 앉으며 머언 ..

내맘의 글방 2022.07.30

둥지

3월 29일, 오늘로서 우리 집 리모델링을 마친지 딱 일 년이 되었다. 새집처럼 꾸며놓은 집에 들어와 모든 것을 새롭게 맞추어 나가면서 많은 것을 비우고 버렸던 것 같다 그 결과 지금은 주방이며. 옷장, 신발장 등의 수납장이 널널하고 여유롭다. 일 년 동안 행여 새로운 것에 흠집이라도 날까 아끼며 닦아온 것은 물론, 혹시 모를 하자가 발생한 것은 아닐까하며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며 지내왔고 대 여섯 번의 AS를 받기도 했다. 이제 일 년이 지났으니 무상 AS 는 끝이 났고 앞으로는 비용을 들여가며 고치고 바꿔야 하는데 당분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퇴근 후, 말끔히 정리된 집에 돌아오면 참으로 마음이 편하다. 집이란 무엇인가~~ 가족들이 마음 편히 쉬며 지내는 아늑한 둥지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아이들..

내맘의 글방 2022.03.29

마실길, 혼자서 걸었다

부안의 둘레길 명칭은 마실길이다. 마실의 사전적 의미는 이웃사람을 만나기 위해 놀러 나간다는 것이니 븕노랑상사화를 만나러 지난 9월 11일에 변산의 해변에 접해 있는 2코스 마실길을 찾아 나섰다. 그곳에는 자생하는 붉노랑상사화가 지난 8월 말 경 부터 장관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곤 했지만 딱히 마음 움직임도 없었고 시간상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냥 놀러 나선 길~ 꽃은 이미 지고 있었다. 몇몇 남은 꽃무리들은 화려함보다는 시간의 더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민낯의 모습으로 간간이 길목을 지키고 서서 늦은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그래도 이게 어디냐 하는 마음이 화들짝 밝아온다. 시작점에 들어서자 오솔길가에는 조개껍질에 소원을 적어 걸어놓는 곳이 있었다. 지난 15년에 항암치료를 받으..

내맘의 글방 2021.09.19

능소화 필때면 슬픔이 밀려온다.

29년 전 우리 아버지께서는 정년퇴임을 하시고 경기도 일산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아들들이 그곳에 거주하면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며 지내고 있기도 했지만 유난히 학구열이 강하셨던 아버지 스스로 퇴임 후 첫째 목표이신 대학원에 다니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울시립대학원을 수료하시고 소일하시던 아버지께서 18년 전에 먼저 돌아가셨고 어머니 혼자 아파트를 지키며 아들들 곁에서 지내셨다. 어느 해 어머니 생신 즈음에 일산의 어머니 댁을 방문하였다 마중 나온 어머니는 내가 차를 주차하자마자 나를 데리고 아파트 화단으로 가시는 것이다. 우리 라인으로 올라가는 화단 한 구석에 능소화가 줄기를 타고 오르고 있었는데 울 어머니는 그걸 가르치며 ‘이것 내가 심었다’ 하시는 것이다. 경비아저씨들이 심을 수 없다고 말리셨지만..

내맘의 글방 2021.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