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내맘의 글방 173

우리는 계절의 페이지 터너가 될 수 있을까.

어제는 토요일인지라 오전에 청소하고 반찬 몇 가지를 했다. 들깻잎 순을 삶아 나물무침을 하고, 고구마순을 삶아 호박과 꽃게 한 마리를 넣고 된장 지짐을 해 놓고, 미역 냉채를 하기 위해 미역을 담가 놓고, 양배추를 채 썰어 놓고, 오이깍두기를 담았다. 에어컨을 켜고 했지만도 땀을 흘렸다. 이런 나를 보더니 남편이 점심을 삼계탕으로 먹자 하여 18,000월 하는 삼계탕을 먹고 나는 배롱나무꽃이 보고 싶어 옥구향교로 향했다. 남편에게 함께 가자 청했지만 덥다고 싫단다. 옥구향교에 도착하여 꽃이 한창이겠지 생각했는데 꽃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은 주차할 공간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온 것 같은데 꽃을 볼 수 없었다. 배롱나무를 자세히 바라보니 세상에! 꽃대궁의 꽃봉오리가 다 떨어져 버린 것이다. 꽃이 ..

내맘의 글방 2023.08.13

울다가 웃었던 날

5월은 기념일이 참 많은 달이다. 그중, 해마다 나에게 의미 있는 날로 다가오는 날은 스승의 날이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 통장을 내가 관리하고 있기에 어제 오랜만에 통장 정리를 하다가 마음이 덜컥 내려앉은 내역을 보았다. 아버지 제자분이 지난 12일에 또 십만 원을 입금하신 것이다. 이제 그만하셔도 된다고 우리 의사를 충분히 밝혔음에도 그분은 한 해를 거르지 않고 이렇게 보내시는 것이다. 그 분과 아버지와의 인연은 아버지께서 교감 승진 후 처음 발령받으신 곳에서부터다 그 당시는 승진 초임 근무지는 도시와는 아주 먼 오지 근무지가 대부분이었기에 생활의 어려움도 많았던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생후 6개월부터 6살까지 지냈던 곳이기도 하다. 아버지께서는 초임지 근무를 하시면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동네 ..

내맘의 글방 2023.05.17

빛으로 들려오는 봄의 소리

새벽안개가 자욱하다. 일교차가 심한 요즈음 같은 봄날의 안개는 무언가 신비로움을 품고 있는 듯싶으니 그냥 정겹다. 훅! 긴 숨을 들이마시고 뒷산에 들어서니 숲 속을 가득 채운 안개는 나를 와락 껴안으며 허그 인사를 한다. 나는 주춤 잠시 어색했지만 그들만이 취할 수 있는 인사법이기에 나는 이내 편안함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오늘 숲은 포근한 이불이 펼쳐진 아늑한 방안 이었다. 우리 어릴 적 형제들이 커다란 이불 하나를 덮고 나란히 누워 재잘거리던 풍경이 떠오른다. 지금처럼 화려함도 가벼움도 없었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도 따듯함으로 우리를 감싸 주었던 솜이불. 지금 숲을 가득 채운 안개는 아마도 숲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이불이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이제 막 꼼지락거리며 내미는 새순의 연약함을 품어주고, 갖..

내맘의 글방 2023.04.04

로제트(rosette)가 되어 겨울을 살아간다

설날이 낀 연휴는 4일 동안 이어졌다. 명절이라는 듬직한 시간 안에서 쉬어가는 우리 사람들인데 세월의 수레바퀴는 잠시도 쉬지 않고서 1월 하순까지 걸어 나갔다. 벌써?라는 놀라움이었지만 묵묵히 나아가는 세월에게 태연한 척하며 일요일 한낮에 산을 올랐다. 여러 쉬는 날 중 한 번도 뒷산을 오르지 않는다면 그냥 산에 미안한 마음이기도 하여 매서운 바람을 뚫고 나갔다. 겨울 숲이 품은 세찬 바람은 더욱 날을 세운 듯, 잠깐 걸었을 뿐인 내 양 볼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얼얼하면서 시린 감촉은 느슨한 내 몸을 꽉 조여 주며 팽팽함을 안겨준다.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맛이다. 나뭇잎 하나 걸치지 않은 겨울 숲은 썰렁하면서도 언뜻 잔잔한 안온함을 품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잃어버린 그리움 가득한 곳을..

내맘의 글방 2023.01.26

겨울 산의 빨강은...

눈이 내려도 너무 많은 눈이 내렸다. 연 이틀 동안 차량에 쌓인 눈을 쓸어내리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다. 땀이 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눈 그친 하늘이 참 맑다. 맑은 하늘 아래 멀리 보이는 에움길이 촉촉이 젖어 있다. 급하게 염화칼슘으로 제설작업을 한 까닭이리라. 완전 무장을 하고 산 초입까지 가 보았지만 쌓인 눈의 두께 때문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에움길을 따라 잠시 걸었다. 하얀 눈을 제 몸에 얹고 있는 나무들이 추워 보인다. 애처로운 모습으로 떠나는 것들이 더없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요즈음의 나무들이 그런 모습이 아닐까. 행여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걷는데 하얀 눈 속의 빨간 열매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푸른 잎의 사철나무에게 눈덩이를 맡기고 자신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 노박덩..

내맘의 글방 2022.12.29

인생에서 귀한 것은 마음을 알아주는 일

초저녁 시간대에 산책 삼아 내가 늘 다니는 코스의 한 곳은 ‘뽕나무 집’이라는 간판의 음식점이 있었던 곳이다. 그곳은 음식점 이름처럼 뽕나무 여러 그루가 우거져 있었고 근방에는 탱자나무 울타리도 있었기에 철 따라 운치 있는 아담한 풍경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난 뽕나무보다는 울타리 식으로 둘려져 있던 탱자나무에 더욱 마음이 쏠리곤 했다. 아주 울창하고 길게 이어져 있었던 탱자나무였는데 지금은 많이 베어지고 한 곳에 조금 자리하고 있다. 그나마 환삼덩굴이 탱자나무를 뒤덮듯 엉켜 있으니 행여 아예 사라질까 아쉬운 마음이 자꾸 더해진다. 봄날 탱자나무가 꽃을 피울 즈음이 되면 일부러 꽃을 보러 가곤 했다. 유독 하얀빛을 발하는 꽃들은 줄기의 가시를 비켜나려는 듯 꽃잎을 성글게 피우니 참으로 애잔한 모습이다..

내맘의 글방 2022.12.13

깊은 골짜기 단풍 숲에서 받은 마음의 보약

10월 중순 어느 날 아침 9시, 지리산 성삼재는 막 번지기 시작하는 아침햇살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껴안고 있다. 저 해는 분명 천왕봉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로부터 환호를 받았겠지. 나무 사이로 깊숙이 파고드는 햇살에 나무들은 제 잎을 먼저 내 보이며 나를 환영하듯 반짝이는 길을 또박또박 걸으며 노고단으로 향했다. 노고단 고개에 이르면 노고단 정상으로 올라가는 문과, 지리산 종주를 시작하기 위해 통과하는 문이 있다. 고개라 이름 불리는 장소는 조금은 광활하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싶은데 산 속에서 만나는 넓은 곳이기도 하지만 그날따라 하늘의 공활함이 노고단 고개를 더더욱 넓게 펼쳐주고 있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거닐며 사진도 찍고 풍경을 감상하였다. 실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특별함은 없지만 지금 순간처..

내맘의 글방 2022.10.26

우리의 삶은 연습의 연속이다.

아침 일찍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집어 드니 몇 장의 전단지가 주르륵 쏟아진다. 하나하나 집어 들고 보니 그 중 한 장이 앞면에만 인쇄가 되어있었고 뒷면은 깨끗한 채로 끼어있었다.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참 오랜만에 만나는 전단지의 뒷면이었다. 학창 시절, 그런 종이를 모아 묶어 연습장이라는 제목의 노트를 만들어 가지고 다녔다. 모든 과목에 따른 노트가 한권씩 있었지만, 그 노트에는 그 과목의 내용만 깨끗하게 적어두고 가끔 검사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연습장에는 아무거나 써도 무방하였다. 수학문제를 길게 풀어나가기도 하였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기위해 수 십 번씩 쓰고 반복하기도 하였다. 지루한 시간을 만나면 선생님 몰래 그림을 그리며 낙서를 하기도 했다. 꽉 조여진 규율 속에서 ..

내맘의 글방 2022.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