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상문

벽광나치오

물소리~~^ 2016. 6. 2. 11:36

 

 

 

 

5월의 숲은 정중동이다. 보이지 않는 부산함이 가득하다.

노란 꽃을 피우기 전 씀바귀들은 옛날 우리 선조들의 식탁을 쌉쌀하게 차려 냈음을 그리워하듯 다소곳이 피어 있다. 칡넝쿨은 아마도 곤한 잠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허공을 향해 무언가 붙잡으려 자꾸 헛손질을 하듯 뻗어 올리고 있다. 아, 달콤한 향으로 벌 나비를 유혹하는 인동덩굴도 슬며시 무언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렇듯 계절을 놓치지 아니하려고 온갖 것들이 자신이 지닌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5월의 숲이다.


그들은 스스로 화가가 되고 시인이 되고 성악가가 되고 줄 타는 곡예사가 되어 이 숲을 장식하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지닌 재주를 뿜어냄은 광기어린 예술혼을 지니고 있음이 아닐까.


책을 통해 만나는 천재들에게서도 그들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느끼곤 한다. 천재이면서도 천재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한 시대를 살아왔던 우리 선조들을 만났다.


‘벽광나치오’ 는 200여 년 전 조선후기 여항문학의 주를 이루던 11개 분야의 인물들을 국문학 교수가 발굴 조명한 책이다. 역사 속의 인물들을 불러내어 바로 우리 곁에 숨 쉬는 인물로 되살려 낸 유익함이었다. 중인, 서얼, 서리(胥吏), 의 평민들, 즉 양반이 아닌 계급층의 사람들이 이룬 문학적 가치를 알려주는 책이다.


양반이 아니어서 천대를 했지만 그들이 지닌 재주만은 멸시할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사실에 얼마간 가슴을 쓸어 내려 본다. 묻혀버린 인물들을 발굴하여 재조명함으로서 그들의 예술적 광기와 함께해 보는 즐거움이 있다. 획일화된 전통사회에서 그 틀을 뛰어 넘어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여간한 집념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 집념이 양반들의 눈에는 미친 짓으로 보였을 것이고 신분마저 비천하니 더욱 천대를 받았을 것이다.


그 시대의 주류를 이루었던 선비! 그들은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그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살다간 인물들이다. 벼룻돌에 미친 정철조, 송곳으로 제 눈을 찌른 화가 최북, 최고의 검무가 운심, 세상의 책을 팔러 다니던 조신선, 이슬 같은 소리의 운명을 지닌 김성기, 기술자 최천약, 바둑기사 정운창, 여행가 정란, 원예가 유박, 시인 이단전, 탈춤꾼 탁문한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흥미로움에 이끌려 끈을 놓지 못하였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한 가지 일에 고질병(癖 )이 든 사람이며, 그 일에 빠진 미치광이(狂 )였고, 다른 일에는 게으름뱅이(懶 )가 되었고, 그것 밖에 모르는 천치(痴 )였으며 자신만을 아는 오만함(傲 )으로 가득한 자들이었다.


나에게 감명 깊게 다가온 사람은 화가 최북과 시인 이단전이다. 최북은 메추라기 그림에 으뜸인 화가다. 별명이 ‘최 메추라기’였다. 하지만 그의 삶은 지난(至難)했다. 그의 호는 칠칠이다. 이름자 北을 파자하여 七七이라 하였다. 그 시절에도 칠칠맞다 라는 말이 있었던가. 그는 애꾸눈이다. 한 지체 높은 사람이 그림을 부탁했지만 거절하였고 그에 협박을 당하자 스스로 제 눈을 송곳으로 찔렀다 한다. 조선의 고흐였다. 해진 옷을 입고 걸식을 일삼으니 사람들은 그를 ‘거지 화가’라 비난했다.


한자로 메추라기 ‘순(鶉)’은 ‘옷이 해지다’라는 뜻이니 터럭이 얼룩덜룩한 꼴이 남루한 옷처럼 보인다. 메추라기 ‘순(鶉)’은 또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는 뜻도 있다. 누더기 옷차림으로 떠도는 화가와 닮았다. 거지화가 최북은 그래서 칠칠맞은 메추라기를 잘 그렸나 보다


시인 이단전은 이름부터 하인이다. 진실로 단이요 머슴 전이니 만천하에 나는 하인이요 하고 다닌다. 호 또한 필한(疋漢)이다. 疋(필)을 파자하면 下人이란다.  漢은 한나라 한이지만 천한 사내라는 뜻도 있으니 필한을 풀이하면 ‘하인놈’이라 한다. ‘나는 종놈이다.’ 라고 스스로 외치며 신분을 뛰어 넘는 행위를 일삼은 그를 작가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은 존재라 하였다.


이단전은 머슴이었지만 주인도련님들의 글공부를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천재성을 보인다. 지체 높은 주인이 그에게 일하지 말고 공부 하라고 내버려 둔다. 그는 신분도 미천했지만 용모마저 곰보에 말까지 어눌한, 그야말로 인간적 불행을 고루 갖춘 사람이라고 표현해 놓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밋밋한 인생을 버리고 술과 시에 도취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열정이 도사리고 있다고 하였다. 기발한 착상과 비유의 명수라 일컬을 만큼 그의 시는 특출하였고 자연에 대한 심도 있는 관찰력이 으뜸이라고 하였다. 예술가의 광적 행위의 결과는 맑고 고고한 시로 남겨졌지만 시인 이단전은 술에 취해 객사하였다.


공식에 맞추어진 역사의 틀에서 찾을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과 삶을 찾아보며 한숨을 쉬어본 책 읽기였다. 시대를 잘 못 타고 태어난 그들일 수 있다.


5월 숲의 모든 것들이 제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아름다움을 보이듯, 그들 또한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살아갔던 인물들이다. 다만 그 아름다움을 뒤늦게 발견했을 뿐이다. 그 아름다움의 뒤에는 고난을 이겨낸 용기와 열정이 있었다. 내 마음 안에 그 무엇을 향한 광기가 있을까. 만약 끼가 있는 광기가 숨겨져 있다면 이생을 다하기 전에 불사르고 싶다.

 

 

 

 

 

 

 

 

'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의 기원  (0) 2016.06.29
얼쑤~~ 우리 가락  (0) 2016.06.28
채식주의자  (4) 2016.05.24
울 아버지 TV에 출연 하시다.  (0) 2016.05.14
안중근 의사 서거 106주년  (0) 2016.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