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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빛으로 들려오는 봄의 소리

물소리~~^ 2023. 4. 4. 13:22

 

 

 

 

 

 

 

 

   새벽안개가 자욱하다. 일교차가 심한 요즈음 같은 봄날의 안개는 무언가 신비로움을 품고 있는 듯싶으니 그냥 정겹다. 훅! 긴 숨을 들이마시고 뒷산에 들어서니 숲 속을 가득 채운 안개는 나를 와락 껴안으며 허그 인사를 한다. 나는 주춤 잠시 어색했지만 그들만이 취할 수 있는 인사법이기에 나는 이내 편안함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오늘 숲은 포근한 이불이 펼쳐진 아늑한 방안 이었다. 우리 어릴 적 형제들이 커다란 이불 하나를 덮고 나란히 누워 재잘거리던 풍경이 떠오른다. 지금처럼 화려함도 가벼움도 없었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도 따듯함으로 우리를 감싸 주었던 솜이불. 지금 숲을 가득 채운 안개는 아마도 숲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이불이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이제 막 꼼지락거리며 내미는 새순의 연약함을 품어주고, 갖가지 색으로 피어나는 여린 꽃들이 행여 다칠세라 보듬어 보호해 주고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어린이의 해맑음처럼 안개의 포근함으로 숲의 생물들은 싱그럽기만 하다. 나는 불청객이 되어 아늑한 방안을 기웃거리며 골목길을 걸어가는 나그네가 되었다. 아, 이 숲의 파수꾼이라도 될까? 불청객인 나를 어찌할까 서로 은밀한 언어를 주고받기 시작했는지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호랑지빠귀의 긴 울음, 봄맞이 손님맞이하기엔 솥이 너무 작다고 우는 소쩍새, 덩치 큰 꿩의 조금은 게으른 듯싶은 허스키 울음소리, 손 안에 쏘옥 들어오는 귀여운 작은 새들의 지저귐, 곳간 쌀독을 훑어 내기라도 하는지 나무기둥을 파고드는 딱따구리의 우렁찬 울림소리,

 

나무와 꽃과 새순들은 일찍이 제 빛을 치장하며 나섰지만 낮게 혹은 높게 우는 새들의 소리에는 빛이 없었다. 다만 소리를 전해주며 보이지 않는 색을 맞춰보라며 나에게 수수께끼를 청한다. 새들은 서로간에 안개위에 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의사를 소통하고 있다. 고운 색으로 치장한 새소리들이 꽃처럼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다. 봄을 품은 숲은 안개 속에 온갖 것을 버무려 형형한 빛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길게 우는 호랑지빠귀의 울음소리에서 나는 휙 스쳐 지나는 무지개빛깔을 보았다. 솥이 적다 우는 소쩍새의 울음소리에 나는 윤기 나는 둥근 가마솥의 검은색을 칠했다. 산란기를 맞이해 한창 사랑을 나누다 내 기척에 꿩 꿩 소리치며 둔탁하게 날아오르는 꿩에게서는 분홍빛이 보였다. 딱따구리의 나무기둥 울리는 소리는 빈 항아리에 얼굴을 박고 아! 하고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퍼지면서 내 얼굴을 감싸던 주황빛이었다. 큰 항아리에 홍시를 감춰 두고 하나씩 꺼내주시던 할머니와 함께 스치는 빛이었다.

 

아! 이 봄 날의 생동감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단지 숲에서 살아가는 사물의 움직임에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봄이면 제 각각의 고운 빛으로 피어나는 꽃이듯, 이른 아침 안개 가득한 숲에서 노니는 새들의 지저귐은 글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의 언어였다. 봄 숲속을 채우는 온갖 것에는 빛이 스미어 있었고 그 빛은 언제나처럼 내 폐부 깊숙이 들어오면서 내 오감을 살려내곤 한다.

 

그 하찮은 나의 오감에 기대어 어찌 그들이 허공에 그려놓는 오묘한 빛을 오직 봄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긴 여운을 챙기려하는가. 숲에서는 내가 구사하는 언어는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빛으로 전해오는 모든 것들이 품고 있는 귀한 뜻을 해독해야만 한다. 멀고도 가까운 공원산 사찰에서 문득 들려오는 새벽범종 소리가 대신 긴 여운을 남기며 은은하게 퍼져온다.

 

 

 

 

근 열흘동안 제 방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돌아와 보니 벚꽃들이 와르르 피어나고 있었으니!!

이 봄빛의 아름다움을 놓친 것 같은 아쉬움이 차 오르며 제 마음을 동동 거리게 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뒷산에 올라

들려오는 새 소리들에 색칠하여 미처 만나지 못한 봄빛으로 만들며 걸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