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서해바닷가에
작디나 작은 몸짓의 연보랏빛 해국이 피었습니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을 찾으려는 듯
해풍에 맞서느라 갯바위에 몸을 숨기고
도톰한 잎과 잔잔한 솜털로 추위를 이기며
무심한 낚시꾼의 등을 바라보며
한적한 해변 갯바위 위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피었습니다.
문득 만난
아련한 몸짓의 해국의 그리움을 담아
아픈 마음들을 어루만져 주고 싶습니다.
지난 토요일 오전~
집안 깊숙이 들어온 햇살이 참으로 얌전하다
그 얌전을 본 받아 아침 일찍부터
집안 청소를 마치고 밑반찬 몇 가지를 만들고 나니 12시가 훌쩍 넘었다.
부엌 창으로 보이는 울 뒷산은 아직도 푸른빛이 우세다.
뒷산에나 다녀올까 하는 생각에 도리질을 하게하는 까닭은
요즈음 뒷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산인데 자꾸만 어수선해지는 모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어쩔까~ 이 가을날이 아깝다하는 생각에
얌전해졌던 마음이 살짝 옆으로 돌아서니 나는 어느새 외출차림을 하고 있다
아마 지금쯤 해국이 피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마파지길을 다녀오자 생각한 것이다
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닿는 마파지 길은
그동안 군부대가 있는 주변이라 출입통제가 되었던 곳이다.
몇 해 전 주변의 통제를 해제하고
산책길을 조성하고 마파지길이란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개방하기 전 먼저 해안선을 따라 데크산책로를 조성하였기에
주변 식물들은 그대로 보존되기도 하는
이채로운 갯바위와 서해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참 좋은 곳이다
동안 두 번을 다녀왔는데 한여름이거나 이른 가을이었으니
해국을 만나지 못하고 더부룩 솟아있는 싹들만 보았었다
또 코로나로 산책로를 막아놓기도 했었다
많은 세월을 껴안은 듯싶은 갯바위의 특이함에 연신 눈길을 주며 걸었다
곳곳에 낚시꾼들이 서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기까지 내려갔을까 아무리 둘러봐도
막아놓은 데크길 뿐인데... 저기를 내려가야 해국을 만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데
문득 해국 한 송이가 눈에 들어온다.
어쩜! 그래 꼭 내려가야 한다며 계속 살펴보는데 딱 한 군데 길이 나 있었다.
얼마나 좋든지.. 망설임 없이 그 곳을 따라 갯바위로 올랐다.
아, 여기 저기 도톰한 잎사귀에 잔잔한 솜털을 달고 해국 들이 피어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한창인 때를 조금 지난 것 같았지만
이만큼이라도 만날 수 있음에 얼마나 좋은지…
무작정 갯바위로 들어서는 나를 데크길을 걷던 사람들이 쳐다본다.
그렇게 해국을 마중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은파에서 공연하는 친구의 공연장을 찾아 꽃다발을 전하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컴 앞에 앉아 오늘 만난 해국 사진들을 정리했다
블로그에 자랑하고파서 저녁 10시 반 쯤 로그인을 하고 들어오는데
남편이 놀란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tv 화면에 이태원 압사라는 속보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무슨 일??
세상에! 세상에! 화면을 보며 얼마나 놀랍던지
후다닥 컴을 끄고
새벽 3시경까지 tv 뉴스를 바라보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3일이 지난 11월 첫 날~
무수히 쌓여가는 추모 국화꽃을 바라보며
마침 그날 만난 해국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연히도 해국의 꽃말은 그리움이다.
먼 바다를 바라보며
무심한 낚시꾼들의 등만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삭이고 있는 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해국은 그렇게 아픈 마음들을 위로하며 그리움이라는 애절함을 남겨준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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