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감이 익어가는 풍경

물소리~~^ 2022. 11. 7. 15:01

 

 

 

 

   가을날 쓸쓸함의 극치는 11월에 있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차창으로 스치는 11월 가을 들녘은 모두를 비워낸 공허함이 가득했지만,

   보이지 않는 것까지, 모든 것을 나누어준 여유로운 모습의 공허함이기에

   언제 보아도 다감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가을 색이 짙어가고 있다는 말은

   어쩌면 모든 것들의 차림새가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분을 잃은 나뭇잎들의 부석 거림,

   반쯤은 메마른 줄기 끝에 피어있는 작은 들꽃들의 모습,

   나무들도 내년을 위해 스스로 자신들의 잎을 메마르게 하고 있으니

   이 모든 것들은 가을만이 빚어내는 가을 색인 것이다.

 

   가을 색이 완연한 일요일,

   자분자분 집안일과 어제 이어 옷장 정리를 마치고 보니 아이들 생각이 난다.

   내가 가서 이것저것 겨울 채비를 챙겨주어야 하는데

   일한다는 핑계로 제대로 한 번 챙겨주지 못하는 마음은 늘 나를 죄인으로 만든다.

 

 

   아이들 생각에 큰아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일요일을 잘 지내느냐고 묻는데

   담임 반 학생 한 명이 코로나 양성이 나와 걱정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처음처럼 모두를 격리하는 것 아니고

   검사 결과 음성이면 계속 등교도 하고 수업도 한다고 한다.

   조심하라는 말끝에 일요일이니 집 정리도 하고 청소도 하라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낸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치우며 정리하며 지내는데

   늘 엄마 기준으로 잘했다, 못했다, 한다는 것이다. 난 그만 깜짝 놀랐다.

   정말 그랬을까. 언제나 나의 기준에서 아이들한테 잔소리를 했단 말인가.

   마음이 서성거리며 안정이 되지 않는다. 뒷산을 올랐다.

 

 

 

   우리 뒷산은 아직 초록이 우세다

   단풍나무는 어쩌다 한 그루 있을까?  참나무와 소나무 종류가 많아서일 것이다.

   오솔길은 바싹 말라 먼지가 폴폴 날린다.

 

 

   햇살이 가득한 양지바른 오솔길에 이르렀다.

   겨울에도 가장 따듯한 곳이어서 제일 좋아하는 그곳에서 바라보는 산등성에

   고욤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다.

   감이 익을 무렵이면 새들이 날아와 감을 쪼아 먹곤 하는 풍경 좋은 곳인데

   작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데도 오늘은 조용하다.

   3봉 아래에 터널공사를 한다며 매일 기계음을 크게 울리는 탓일까

   시끄러움에 미리 피한 새들인지…

   그 덕에 나는 감나무들의 의연한 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을 머물렀다

   나무는 裸木이 되어가면서 제 열매들을 더욱 돋보여주고 있다.

 

 

   고욤나무 줄기에

   담쟁이가 타고 오르며 햇살을 받아 말갛게 제 속내를 다 보이고 있다.

   줄기 끝에는 작은 감들이 늘어진 품새로 달려 있으니

   진정 이 가을의 멋쟁이가 아닌가.

 

   

   한자어로 감나무를 柿樹(시수)라 하고 고욤은 小柿(소시)라고 한다.

   감에 비해 고욤은 육질이 적고 씨가 크고 많으니 먹을 게 거의 없다

   하니 감나무에 비해 푸대접을 받는 나무지만

   사실 감나무는 고욤나무 없으면 열매를 실하게 맺지 못한다.

 

   감 씨앗으로 감나무를 번식하면 부실한 감이 열리지만

   감나무 가지를 고욤나무에 접목하면 우리가 보는 실한 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감나무 혼자 할 수 없는 튼실한 감 맺기를 고욤나무를 통해 할 수 있으니

   어쩌면 감나무와 고욤나무는 접목하는 순간

   서로 자신이 지닌 소중한 것들 중에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면서

   고욤나무도 감나무도 튼실한 감을 맺고 있는 것이다.

 

   잠시 쓸쓸함에 서러움이 받쳐 오르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 가을 나무들은 겨울을 나기위해

   나뭇잎에 가는 영양을 차단하여

   단풍 들게 하여 나뭇잎을 온통 버리며 살아가고 있거늘,

   또 실한 열매를 얻기위해 자신의 소중함을 버리고 있으니

   버려야 버림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이치를 나무들은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들에게 곱게 단풍든

나무 사진을 보여주니

바로 답이 왔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나는 무엇을 버렸기에

이리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일까.

 

산 아래 내려와서

주택 옆에서 잘 익어가고 있는

감나무를 다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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