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남편과 나는 추자도에 있어야 했던 일요일이었다.
하지만 2일 전에 연락이 오기를
여객선 이상으로 17일까지 점검 예정이라고
운행을 할 수 없어 죄송하다며 예약 취소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이런이런~~
사실 추자도는 당일여행으로는 어려운 곳이었다.
그런데 지난 5월 7일
진도항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여 45분 만에 추자도에 도착 후,
오후 6시 45분에 추자를 출발하는 쾌속선 산타모니카 취항으로
충분히 하루에 다녀올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좋아하며 예약을 해 놓았던 것인데~~ 새롭게 만든 쾌속선이라는데 웬 고장이람~~
주말이면 이것저것 둘러보며 잠깐씩 소일하던 티스토리도 어제(15일) 오후부터 이용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접고 고추장을 담기로 했다.
그동안 재료를 하나 둘 준비를 해 놓았기에 이제 만들기 실천만 하면 되는 상황~
울 남편이 고추장을 엄청 좋아하기에
나는 매년 고추장을 담근다. 항상 10월 중순 경에 담그고
한 석 달 정도 숙성시킨 후 먹곤 하는 주기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천일염(15년산), 매실액, 엿기름, 찹쌀가루 등은 집에 있으니
고춧가루, 메주가루, 사과 조청 등은 분량에 맞게 구입하였다.
아침 7시부터 부산을 떨며 시작하였다
엿기름 거른 물에 찹쌀가루 삭힌 물을 풀어 끓이는데 1시간 10분을 저어 주어야 했다
이렇게 오래 서서 젓기가 힘들어 앉아서 하려고 일회용 가스레인지를 이용했다
거품이 사라질 때까지 팔팔 끓인 후, 불을 끄고 소금을 넣어 녹이고
조청을 넣고 완전히 섞이면 이제 메주가루와 고춧가루를 풀며 저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열심히 고추장을 만들어도
울 어머니께 전해드릴 수 없음에 마음이 서러워진다.
늘 우리 딸이 만들어줘서 맛있다며
그걸 또 아들에게 주려고 냉장고에 꼭꼭 넣어두시던 어머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멍울지지 않으려면 빨리 저어야 하는데 누구지? 하면서 전화를 받으니
‘언니~~’ 쾌활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나, 지난번 곰배령 갈 때 차 안의 짝꿍이었다.
집이 어딘지, 몇 동인지를 묻는다.
그날 처음 만났는데 어찌나 살갑게 구는지 금방 친해진 친구였다.
이야기 도중 시댁이 공주인데 시어머님이 작은 농사를 짓고 계셔서
자주 다녀온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곳에서 호박이랑 조금 가져왔는데
언니한테 주고 싶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세수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나 싶으면서도 둥개 둥개 하는데
어느새 도착했단다.
얼른 커다란 비닐봉지를 건네주고 뛰어가 버린다.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호박 세 개와 단감 여러 개,
아주아주 커다란 고구마가 들어있었다.
고구마를 보고 혼자 웃으면서 단감 하나를 깎아 먹으니 맛이 좋다.
메줏가루와 고춧가루가 잘 풀리면 다시 매실액을 부어 골고루 섞어주고
마지막으로 소주 한 컵 정도를 부어 섞어준다.
소주는 발효되는 과정에 꽃가지(곰팡이)가 피어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니 맛있다 ^^.
완성된 고추장을 열소독까지 마친 항아리에 옮겨 담고
그릇에 남은 고추장을 씻어낸 물로 저녁에는 게와 호박으로 찌개를 했다
맛있게 먹고 나니 하루가 뿌듯해졌다.
추자도에는 언제 또 기회가 올 것이다.
오늘 추자도를 만났다면 고추장 담그는 일이 늦춰졌을 것이고
가을을 듬뿍 담은 호박도 감도 고구마도 만날 수 없었을 것 아닌가!
고추장을 담으면 늘 우리 어머니께 갖다 드리곤 했는데
올해는 그럴 수 없어 잠시 서러워졌던 마음이
친구의 후덕함으로 달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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