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의 아침 산을 올라가는 시간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기이다.
어둠은 나의 발걸음을 조심조심 옮겨 놓게 하는데
갑자기 산등성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쭈볏거린다.
추석을 앞 둔 요즈음에는 밤이 익어가는 최적의 시기인지라
몇 몇 사람이 밤을 줍느라 배낭 하나씩 짊어지고
손에는 집게를 든 사람들의 움직임이 내는 소리임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시간에 맞춰 다녀와야 하는 내 발걸음은
눈앞에 딱 놓인 밤송이나 밤알 말고는 염두에 둘 여유가 없다.
돌아 내려올 즈음이면 햇살이 막 올라 오면서
산 가까이 보다는 산의 그림자를 받지 않는
산 너머 아파트를 먼저 환히 비추고 있으니
나는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음예공간에 서서 부드러운 햇살을 받는 밝은 풍경을
가만히 서서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한 없이 선해지고 맑아진다.
저 풍경은 나를 보고, 살아가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의 분별력도 아무 의미가 없단다.
아웅다웅하지 말고 마음 내려놓고 평화롭게 지내라는 메시지를
햇살이 내려주는 풍경으로 받는 나는 세상에서 제일 복 받은 사람이 아닐까.
문득 얼마 전 인제 자작나무숲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잠깐 양양에 들렸다 온 일이 떠오른다.
어차피 지나는 길, 유명한 의상대를 둘러보고 가자고 청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 도착하니 잔비가 내리며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내가 그만 날아 갈 것만 같았다
자작나무숲을 내려오면서 비를 맞았던 터라
더 이상 지체하면 몸이 무리할 것 같아
겨우 의상대 사진 한 장만 찍고 다시 돌아 나오려니
의상대의 무엇이 그토록 나를 다시금 이끌었을까 하는 의구심 끝에
한 이야기가 생각이 난 것이다.
양양은 지금은 강릉과 속초에 밀려 발전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만
조선 태종 때
도호부가 설치됐을 정도로 산수의 기상이 서린 지역으로 위세가 당당했다고 한다.
그곳에 연암 박지원이 부임해서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
다른 지역의 전직부사들과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그들은 이야기 끝에 서로의 녹봉(월급)을 비교 했다고 한다.
그에 모두들 2000∼3000냥 이라고 하는데
연암은 “나는 1만3000냥을 받았다”고 했단다.
모두 놀라며 부러워하자
연암은 말하기를 “3000냥은 돈으로 받았고,
나머지 1만 냥은 양양의 경관을 돈으로 환산해보면 그렇다는 얘기”라고 했다고 하니
이 말이 후세까지 회자되는 이른바 연암의 ‘경관 녹봉론’이다.
오늘 아침 나는 우리 뒷산에 가만히 서서
문득 보이는 풍경에
복잡하고, 서운하고, 쓸쓸해지는 요즈음의 마음을 싹 씻어내며
내 마음을 이끌어 낼 수 있었으니 그냥 눈물겹다
나 지금 경관녹봉이라고 까지는 못해도
최고의 경관 추석 선물을 받았다고 말하고 싶다.
아침산에서 만난 울 뒷산의 친구들
'단상(短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며드는 가을햇살 속에서 (0) | 2020.10.16 |
---|---|
우리도 이렇게 견디며 살아왔다고... (0) | 2020.10.07 |
싹쓸바람이 지나고 (0) | 2020.09.04 |
8월이 이렇게... (0) | 2020.08.23 |
낯설음 앞에서 (0) | 2020.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