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낯설음 앞에서

물소리~~^ 2020. 8. 9. 21:45

 

▲ 칡꽃

 

   비가 연일 끊임없이 무섭게 내리고 있으니

   연일 날아오는 비 예방안내 문자는 코로나예방안내 문자를 앞서고 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로인한 피해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나마 우리지역은 조금 덜하다는 안도감이 미안해 얼른 감추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도 입추절기에 때 아닌 호우주의보를 내리더니

   급기야 호우경보로 바뀌면서 나를 불안케 하였다.

   산사태소식도 연이어 들러오니 뒷산을 근 일주일 동안 오르지 못했다.

 

   비는 많이 내려도 출근은 해야 했다.

   호수 순환산책로에 줄지어 서 있는 벚나무들의 여름 낙엽이 애상스럽다.

   굵은 빗줄기였지만 흐트러짐 없는 곧은 사선으로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받아내는 자동차 와이퍼의 움직임이 방정맞다.

 

   차를 주차하고 내려야 하는데 억척스런 빗줄기 때문에 선뜻 내리지 못하였다.

   가까스로 우산을 펼치고 차문을 열고 나왔지만

   내 옷과 신발은 금세 푹 젖어버린다.

   후줄근한 엉성한 모습으로 사무실에 들어서니 내 책상 위 A4 용지가 눅눅하다.

   에어컨으로 습기를 날려보지만

   컴 화면에서 전해주는 섬진강 범람소식에 내 마음이 쿵! 무너지며 푹 젖어버린다.

 

   내 삶 주변의 모든 것들이 젖어 버렸지만

   이 개운치 못한 낯선 불청객의 꿉꿉함을 참고 견디는 것이 내 몫일 것이다.

 

▲ 벚나무의 여름 낙엽

 

   산을 오르지 못한 날들의 초저녁에 호수 순환 산책로를 열심히 걸었다.

   많은 비로 알게 모르게 높이를 키워가는 호수의 물이

   자꾸만 산책로를 넘실넘실 넘보며 제 몸을 비벼대고 있으니

   걷다가 내 발을 살짝 호수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스릴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하는 것이다.

 

   물들은 낯선 산책로를 넘보며 제 몸을 뒤척이는가하면

   산책로를 걷는 나는 넘실대는 물들에 스릴감이라는 낯선 마음을 경험하고 있으니

   맞닥트린 낯섦 앞에서의 의식을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렇게 치르곤 하나보다

 

 

▲ 물에 잠긴 수변무대

 

 

▲ 출입금지

   연일 나의 의식은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이 어둠에 자리를 내 주기 직전의 빛,

   회색빛이 감돌 때 진행되곤 했는데…

   어제 오후에는 많은 비로 호수 순환 산책로를 전면 통제한다는 안내문자가 날아 왔다.

   과연 호수 진입로 모든 곳을 막아 놓았다.

   그 낯선 모습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는 의식을 치르고 되돌아섰다.

 

▲ 물에 잠긴 테크

 

▲ 호수와 산책로의 경계사면까지 올라온 물에 나무의 자화상이....

 

▲ 내가 매일 건너는 물빛다리도 물에....

 

 

▲ 제방의 무릇은 곱기도 하다

 

▲ 꽃범의꼬리

 


▲ 오솔길은 단정했다

   오늘 일요일 아침,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뒷산을 오르고 싶었다.

   오솔길이 몹시 궁금해진 것이다.

   다행히 어제 저녁 7시 이후부터 사나운 비는 그쳤지만

   새벽 5시 경부터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비는 보통 수준이었으니

   나는 오솔길의 또 다른 낯섦에 대한 의식을 치르고 싶었다.

 

   아, 우리 뒷산은 모든 것이 질서 정연했다.

   흐트러짐이 없었다.

   얼마나 좋은지… 발맘발맘 걸으며 살펴보니

   산은 산대로 비에 대한 충분한 마음가짐을 지녔던 듯싶었다.

 

   오솔길은 스스로 작은 물줄기를 만들며

   빗물을 아래로, 아래로 내려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들은 제 몸을 빗줄기에 맞추어 순응했던 흔적들이 보였다.

   아직 여물지 못한 풋 열매와 나뭇잎들을 미련 없이 떨어냈고

   제 몸의 기울기를 낮추어 꺾이지 않는 부드러움으로 지탱하고 있었다.

 

   닭의장풀들은 꽃빛의 선연함을 잃지 않고 있었고

   주름조개풀들은 가을을 기약하며 꿋꿋하게 길섶을 지키고 있었다.

   참으로 감사하다.

   자연은 자연에 반항하지 않고 순응하며 지켜내고 있었다.

 

   비가 조금 그치는 듯싶으니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우렁차다.

   틈새를 놓치지 않고 짝을 찾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나도 나에게 주어진 낯설음에 소홀하지 않도록.

   이제 정신을 차려야하는 의식을 치르며 마음을 세워보아야겠다.

 

 

▲ 기울어진 나무

 

▲ 커다란 오동잎 하나가 옆 나무가지에 걸렸다

 

▲ 함초롬히 젖은 닭의장풀 무리

 

▲ 오솔길은 이렇게 물길을 만들어 빗물을 내려 보내니

 

▲ 우리 아파트 옆 오수구는 폭포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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