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싹쓸바람이 지나고

물소리~~^ 2020. 9. 4. 22:03

 

   태풍 바비에 이어 마이삭이 지나갔다.

   또다시 하이선이라는 태풍이 올라오고 있단다.

   올해처럼 어려운 시절에 왜 태풍마저 자주 오는지…

  

   지난번 장마 때 내린 엄청난 비에

   울 동네 호수 수위가 꽉 차 오르면서 출입통제를 한 바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 28년을 살아오면서

   호수 출입금지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 놀란 가슴이었을까.

   지자체에서는 태풍의 영향권에서 멀리 있는 곳임에도

   마이삭을 이겨 보자고 호수 입구를 경계테이프로 막아 놓고 있었던 것이다.

  

   늘 하던 산책시간에

   호수 산책로는 걸을 수 없었지만 호수 따라 이어진 차도 옆 인도를 걸었다

   비는 많지 않았지만 바람이 있는 듯 없는 듯싶기도 한데

   느닷없이 휙 끼쳐오는 바람이 우산을 화들짝 들어올리기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하기도 하다.

   아무래도 저녁쯤 도착할 바람이 심상치 않을 것 같다

 

   점점 거칠어지는 비바람을 맞으며 1시간여를 걷다 들어오니

   남편은 오랜만의 바람이 시원하다며 베란다 문들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

   시원한 바람도 좋지만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이 어수선 하기도 하고

   바람에 실려 온 비가 방충망을 뚫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게 싫어 문을 닫았다.

   그런데 남편은 어느새 또 문을 열어 놓고, 나는 또 닫고…

   이러다 바람 때문에 싸울 것 같다. 참아야지

  

   태풍이 곱게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TV 뉴스에서는 태풍이 지나간 지역의 피해상황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나마 우리지역은 조용한 것 같아 다행한 마음으로 출근을 하는데

   도로위에 찢겨 떨어진 무수한 나뭇잎들에 자꾸만 눈길이 쏠린다.

   마치 바람이 나무의 생살을 찢어 놓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무의 심정은 어떠할까

   어쩌면 바람도 원망하지 못하고

   떨어진 나뭇잎자리의 상처를 제 살로 덮으며 악착같이 버티고 살아가겠지

 

   태풍이 몰고 온 바람은 무슨 바람일까.

   계절 바람? 방향 바람? 공기 바람?

  

   우리는 무언가에 들뜬 마음을 바람 들었다고 하고

   누군가와 약속장소에서 만나지 못함도 바람 맞았다고 한다.

     

   태풍에 실려오눈 동안 들뜬 마음의 바람은

   굳건히 살아가는 나무들에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풀릴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하는 나무의 모습에서

   우리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읽어 보았다.

   바람 들지도 말고, 맞지도 않고 살아 갈 수 있을까

    

   그럼 우리의 소망을 일컫는 바람은 어떻게 할까.

   스치는 바람에 실어

   허공에 흩으러 놓고 이룰 수 없는 것이라 말 하고 싶다

 

 

 

▲ 뒷산의 꺾이고 뽑힌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