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달력을 눈앞으로 끌어당겨 물끄러미 보는데
오늘 날짜 옆에 작은 윗글자로 소만이라고 쓰여 있다.
세상에~ 절기가 어느새 소만(小滿)에 닿아 있었구나.
코로나에 시달리느라
절기의 오고 감을 모르고 지냈으니 새삼 세월의 빠름을 느껴본다.
소만 절기는
봄 햇살에 피어났던 작은 (小) 것들이 자라나서
온 세상을 가득 (滿) 하게 메우는 때인 것이다.
소만 무렵이 되면 우리 조상님들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애송이 밤송이를 겨드랑이에 끼워보고
아프지 않을 때를 모내기철이라 가늠하였다니…
불변하지 않는 자연의 이치를 알고
그에 따르는 삶의 철학은 그대로 예술의 경지가 아니었던가.
한참을 달력을 바라보노라니 23일 옆에는 윗글자로 윤 4.1이라고 적혀있다.
아, 윤사월이네~~
윤사월~ 윤사월~ 입안에서 절로 구르는 듯싶으니 정말 예쁜 이름이다.
어김없이 박목월의 詩, 윤사월이 떠오른다.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윤사월이 아니어도 송홧가루 날리는 이즈음이 되면 꽃 한 번 읊어보고 지나는 시,
반세기가 지난 詩임에도 언제나 풋풋한 감동을 안겨 주고 있는데
올 해는 진짜로 윤사월을 맞이한 것이다.
양력의 1년은 365일인 반면, 음력의 1년은 354일 정도로 1년에 약 11일 차이가 난다.
이렇게 벌어진 양력과 음력의 간격을 보정하여 절기를 맞추기 위해
2~3년에 한 번 꼴로 윤달을 넣어 준다는 것이다.
만약 음력에서 윤달을 넣어주지 않고 17년 정도 지나면
5~6월에 눈이 내리고,
11~12월이 한여름이 되는 등 절기와 계절이 맞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될까.
올해 그렇게 윤달을 4월에 끼워 넣었으니 윤사월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윤달을 ‘공 달’, ‘덤 달’, ‘여벌 달’이라고 불렀다.
그래서일까 윤달의 달력에는 절기 표시도 없고 초파일 표시도 없고,
그 무엇도 표시되지 않고 있으니 神도 윤달을 관장하지 못하나 보다.
하니 윤달을 부정을 타지 않는 달, 손 없는 달이라 하여
이사, 산소 이장 등 어려웠던 집안 행사를 하는 전통이 내려오고 있다.
불가에서는 코로나로 인하여 성대히 치르지 못한 지난 초파일 행사를
윤달 초파일에 가질까 했던 의견들도 나왔던 것이 기억된다.
나의 삶 속에서도
이렇게 가끔 좋은 윤달이 끼어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디 가당키나 할까. 쓸쓸함이 덮쳐온다.
소만 절기를 알리며
찔레 덤불에서 우윳빛으로 피어나는 찔레꽃들의 잔잔한 어여쁨이 애처롭고
덩그마니 혼자 피어있는 작약이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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