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노을지는 산책길의 골무꽃

물소리~~^ 2020. 5. 24. 21:23

 

▲ 우리 동네 노을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 예찬 받은 오월의 신록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더니 이제는 완숙미가 물씬 느껴지는 강인함으로 다가온다.

   튼튼하게 자라는 오월을 축하해 주려는 듯

   해거름의 하늘에는 노을빛이 축포처럼 퍼져 있다.

   노을빛을 받으며 산책길을 걷노라니

   낮 동안의 시름은 어느새 꽁무니를 감추고 사라져 버린다.

 

   하늘 한 번, 호수 한 번, 풀숲 한 번, 산등성 한 번씩 바라보며

   온갖 상상으로 내 마음에 그림을 그리며 걷는다.

   늘 같은 길이지만

   내 생각에 따라 늘 다른 길, 새로움을 보여주는 길이기에 난 이 시간을 좋아한다.

   새로움을 만나면, 아니 느끼면 나는 사진 찍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집에 돌아가 찍어 놓은 사진들을 보고

   어쩌다 한 두 개만 남기고 모두 지워버리곤 하면서도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사물을 만나는 순간에는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먼저 내달리곤 하는데 나는 그 마음을 나무라지 않는다.

   순간의 짧은 행복감을 챙겨두고 싶은 것이다.

 

 

▲ 골무꽃

   오늘도 그렇게 풀숲에서 골무꽃을 만났다.

   꽃으로 한창인 시기가 벌써 지난 듯

   꽃과 열매가 공존하고 있었는데 왜 이제야 보이는 것일까.

   와락 반가운 마음에 꽃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볕이 잘 드는 쪽을 향해 핀다는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듯

   노을 진 하늘을 향해 서 있으니

   산책길의 내 방향에서는 꽃의 뒷모습만 보인다.

 

   햇살을 향한 지극한 그리움이 꽃이 되어

   앞으로 나란히, 위로 나란히, 뒤로 나란히 서서 초저녁 산책길의 나를 불러 세운다.

 

 

 

   선비에게는 문방사우가 있듯

   아녀자들에게는 규중칠우가 있었으니

   자(尺), 가위, 바늘, 실, 골무, 인두, 다리미다.

   이들을 의인화한 소설 ‘규중칠우쟁론기’ 에 골무는 감투할미가 되어 나온다.

   할미는 규중칠우 중 가장 연장자로서

   "나는 매양 바늘귀에 찔려도 낯가죽이 두꺼워 견딜 만하다"고 말한다.

 

   그 작은 골무를

   할미라 부르며 연장자 대접으로 높이 올려주고,

   때론 친구삼아 쿡쿡 찔러가며 꽃 수를 놓으며 마음 멋을 부렸으니

   바느질하는 시간의 지루함과 어려움을 승화시킨 아녀자들의 마음이 참으로 곱다

   골무꽃에서 물씬 정감이 묻어나는 까닭은 이렇듯

   우리 조상님들의 멋진 삶의 정서가 배어있는 꽃이기 때문이다.

 

   골무꽃은 오늘 나에게

   산책시간의 걷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주는 친구가 되었으니

   골무꽃 친구처럼

   나만의 그 무엇이 내 몸에 배여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청해 보았다

 

 

▲ 골무꽃 앞모습
▲ 골무꽃 뒷모습

 

골무꽃이라는 이름은

이 꽃 열매가 골무를 닮았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나는 열매를 아무리 바라보아도 골무가 연상되지 않는다.

달고나 만드는 구리 접시 같아 보인다.

 

꽃사진 찍으러 풀숲으로 내려가는데

나처럼 평화롭게 노을을 즐기던

오리 두 마리가 지레 겁을 먹고 날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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