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토요일에
원래 지리산 칠선계곡의 비선담을 다녀오자는 계획을 세웠었다
한데 아들아이의 일정에 맞추다보니 시간 내기가 어려워 포기하고 나니
자꾸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진다.
어쩌면 올 가을의 마지막 비경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어제 비가 내려 단풍은 더욱 고운 빛을 띄울 텐데… 하는 마음에
자꾸만 창밖으로 눈길이 간다.
베란다에 나서니 울 앞산이 어느 사이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늘 오솔길 걸으며 가까이 보느라 나뭇잎들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아! 그렇구나! 가을이 어디 깊고 높은 산에만 찾아오던가!!
집안일을 대충 마치고 뒷산에 올랐다.
밝은 시간에 만나는 우리 뒷산의 나무들은
알록달록한 색연필이 되어 제 몸들을 칠하고 있었다.
전해오는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오솔길은 온통 낙엽으로 뒤덮여 있으니 푹신푹신하다.
고요한 숲속 길은 오직 내 발자국 소리뿐인데
낙엽들은 심심했는지 바스락거리며 내 꽁무니를 따라나서며 재잘거린다.
▲ 갖가지 잎들로 뒤 덮인 뒷산 오솔길
▲ 감나무잎 오솔길
▲ 난 감나무 잎의 단풍이 참 좋다
도톰한 잎들에 반점인 듯 얼룩져 있으니 마치 무늬를 그려 놓은 듯싶다.
▲ 생강나무 열매
생강나무는 암수딴그루이다
열매를 맺고 있는 이 생강나무는 암나무 일 것이다.
잎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으니 아마도 열매를 위해 나뭇잎들은 숙살된 듯~
▲ 생강나무 수나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노랗게 물든 잎을 자랑하고 있다.
아침 햇살에 나뭇잎 빛이 밝은 빛을 보이고 있다.
▲ 예덕나무
올 가을 우리 뒷산은 노란빛 나뭇잎이 많다.
생강나무와 예덕나무의 단풍 빛이다.
언뜻 보면 같은 나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둘은 서로 다른 모습이다.
▲ 예덕나무잎(왼쪽)과 생강나무 잎(오른쪽)
예덕나무 잎은 잎자루가 길고 역삼각형 잎의 굴곡이 얕으며
생강나무는 잎자루가 짧고 잎의 굴곡이 깊이 패였다.
이렇듯 서로 같은 듯 다른 모습으로
자기만의 개성을 지니고 나무들은 살아가고 있으니
제 몸 빛을 보여주는 요즈음의 산들이 알록달록하니 진정 꽃보다 아름답다,
▲ 개암나무의 열매집
익힌 열매를 떨어트리고 열매집만 남았다.
▲ 팥배나무
팥배나무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작년에는 주체 못할 만큼 열리더니… 해거리를 하는 것인가.
겨울을 나는 새들의 먹이가 부족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든다.
▲ 소나무와 상수리나무는 닿을 듯 말 듯
서로 간에 하늘 길도 조금씩 양보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경이롭다.
▲ 댕댕이덩굴
보랏빛으로 익은 댕댕이덩굴이 고와도 보이나니 탐스런 열매가 욕심이 난다.
하지만 다른 나무를 감고 오른 줄기는
여간 힘이 센 것이 아니라서 쉽게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신이 감고 오른 나무는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열매를 지키는 힘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힘인 것이다.
부드러워 보이는 곡선의 강직함은 무엇에서 비롯될까.
▲ 가막사리
▲ 미국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꽃이 청초하다.
이 가을에 꽃을 만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저 연약한 꽃으로 씨를 품고 있을 것이니
짧은 기간에 어찌 열매 맺는 과정을 지켜낼 것인가
▲ 환삼덩굴 암꽃
이 덩굴도 암 수 딴그루 이며 암꽃이 씨앗을 맺어 번식한다.
▲ 환삼덩굴 수꽃
환삼덩굴을 만나면 조금 무섭다
얼마나 무성하게 자라는지 순식간에 옆의 식물들을 덮어버릴 뿐 아니라
까칠까칠한 작은 가시가 돋아 있어 긁히기 쉽다.
농사짓는 분들한테는 성가시고 미움을 받는 존재이면서도
나름대로의 꽃 피우고 열매 맺으며 살아간다.
▲ 노박덩굴 열매
노박덩굴 열매는 내가 좋아하는 가을열매다
우리 어렸을 적엔 까치밥으로 불리면서 꽃꽂이에 많이 사용했던 추억이 있다.
늦가을 열매가지를 화병에 꽂아두면
저 혼자 노란껍질을 벗겨내는 톡톡 소리에 자꾸만 귀 기울이곤 했는데
한 겨울, 빨간 씨앗이 떨어지고 난 후
노란 껍질만 남아 나무에 달려있는 모습도 여간 예쁘지 않다
▲ 오리나무가 많은 곳의 오솔길에는
오리나무의 초록잎들이 많이 떨어져 섞여 있으니 더욱 예쁘다
▲ 편백나무 우거진 오솔길
집으로 돌아올 때 살짝 비켜간 다른 오솔길로 접어들면 이런 편백나무 숲도 만난다.
이 산을 지키는 나무와 풀, 그리고 꽃들은
바람에 날린 풀씨와 새의 배설물에 섞인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햇살과 빗물의 영양을 받고 자랐을 것이다
또 앞으로도 이런 질서를 지니고 살아가며 숲을 이룰 것이니
어찌 우리 사람만이 나무를 심고 꽃을 심는다 할 수 있겠는가.
바람도 새도, 햇살도, 물길도 자연이 자연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지리산의 숨겨진 비경이라 일컫는 비선담에 가지는 못했지만
한 시간여의 우리 뒷산에서 여한 없이 가을을 만났다.
참 정겨운 나의 친구들이 나를 가을로 초대해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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