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일요일 아침 우리 아파트에서 바라 본 풍경
참으로 기분 좋은 일요일 아침이다.
며칠 동안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이제 진정한 일상으로 돌아 온 편안함이 밀려온다.
태풍 지나간 가을 하늘은 더 없는 청명함으로 내 마음을 더욱 차분하게 다독여 주는 것 같다
여행 가방의 마지막 세탁물들도
햇살 가득한 건조대 위에서 가을 햇살을 껴안으며 그동안의 고단함을 풀고 있다
아침 일찍부터 집안 대청소를 하고, 식탁 앞에 앉으니 왜 이리도 좋은지…
남편은 일찍 출타했고, 작은 아들은 회사일이 바빠 어제 내려오지 못했다.
큰 아이는 휴일이면 뭐가 바쁜지 내려오지 않으니
오늘은 오로지 나 혼자의 시간을 마음껏 누릴 것이다.
요거트와 무화과 두개, 파프리카 반쪽, 모시송편 두개를 아침으로 먹고
이젠 컴퓨터 앞에 앉아 남은 여행일정을 정리해야겠다,
주전자에 둥글레와 양파껍질 말린 것을 넣고 물 가득 붓고 렌지 위에 올려놨다
이 물이 끓으면 커피 한 잔 마시는 호사스런 시간을 누릴 것이니 참 행복하다.
나름대로의 여행일정의 정리가 끝나면 오랜만에 뒷산을 오를 생각을 하니 왜 이리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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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 소피아성당을 나와 히포드럼 광장을 향하여 걸었다.
이스탄불은 비잔틴제국 시대부터 중심도시의 역할을 해서인지
역사적 건물들이 지근거리에 모여 있는 곳이기에 모두 도보로 걸어서 이동을 했다.
또한 그만큼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으로 한 구획을 이루고 있는
역사적인 장소를 공원으로 정해 놓은 이곳은 엄청난 인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 노점상에서는 모두가 남자들이 판매를 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주로 가정일을 하며 지낸다고 한다.
▲ 광장의 노점상
터키의 주식은 빵이라고 했는데
이처럼 곳곳에서 빵을 팔고있는 상인들을 자주 만난다
이층버스도 보였고, ‘트램’ 이라고 하는 시내버스가?
4칸의 전동차를 달고 도로 위의 레일을 따라 달리는 풍경도 이채로웠다.
그 트램을 우리의 현대 로템의 기술로 만들었다는 말을 들으니
다시 한 번 바라보면서 어깨가 으쓱해진다.
▲ 기다란 흰색이 트램의 지붕
▲ 이층버스
▲ 대추야자
성서에 나오는 종려나무가 이 대추야자나무라고 한다
성소피아성당을 나와 블루모스크의 옆길을 걸으며
히포드로모스 광장을 가는 도중에 팔각형 정자를 만났다.
▲ 일만 체스메시(카이저 빌헬름분수)
1898년 독일황제 카이저 빌헬름2세의 이스탄불 두 번째 방문을 기념하는 분수로
독일에서 만들어 배로 운송되었다하니 놀랍기만 하다.
8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이루어진 분수를 만들어 보낸 빌헬름 황제의 목적은
베를린과 페르시아만을 연결하는 철도노선을 건설하기위해
당시의 오스만 제국을 통과하기 위한 약속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하니
한 나라의 영토를 넘보던 빌렐흠은 1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킨 장본인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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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를 지나 곧바로 직사각형의 커다란 광장을 또 하나 만나게 된다.
술탄아흐멧 광장인데
203년 비잔틴제국시대에 건설한 경기장인 히포드럼 광장이라고 불리고 있다.
가이드 말로는 전차경기? 가 있던 자리로 비잔틴 제국시대뿐 아니라
오스만 시대에도 블루모스크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 정치중심지 역할을 했지만
십자군 점령당시 약탈과 방화로 철저히 파괴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하였다.
지금은 데오도시우스의 오벨리스크와
청동 뱀의 기둥, 콘스탄티누스의 오벨리스크만 남아 있었는데
▲ 데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내 귀에 참으로 익숙한 이름이었다.
막상 그 앞에 서서 바라보니 그 웅장함에 놀랍기만 하였다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고, 이 탑 전체를 이집트에서 가져왔다는데
아파트 10층 높이에 이르는 이 거대한 석물을
도대체 어떤 운송수단으로 옮겨 왔을까. 신비하고 신비하다!!
이 탑은 기원 전 15세기 경
이집트의 파라오인 투트모스 3세가 이집트 신전에 세웠던 것으로
데오도시우스 1세가 390년에 이 자리로 옮겨 왔다고 하니
지금 이스탄불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한다.
원래는 30m 의 높이였는데 운반 도중 아랫부분이 깨져 20m의 높이란다.
아래 받침대는 가져온 오벨리스크를 이 자리에 세우면서 만든 것인데
이곳 광장에서 전차경기를 관람하는 황제 가족과 이 탑을 세우는 작업자들을 조각했다고 한다.
▲ 오벨리스크탑에 새겨진 이집트 상형문자와
받침대에 새겨놓은 조각상
▲ 뱀의기둥
두 오벨리스크 사이에 있는 뱀 모양의 청동 기둥
기원 전 5세기 경, 그리스가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며
텔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세운 것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26년에 가져 왔다고 한다.
원래 기둥 꼭대기에는 3개의 뱀 머리와 황금그릇이 있었지만
십자군 점령당시 황금그릇이 사라졌고 뱀 머리는 오스만 제국 당시 사라졌는데
그 중 뱀머리 하나는 1847년 일부가 발견되어 지금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단다.
그나저나 이 땅의 황제들은 왜 남의 나라 신전에 세워진 건축물을 가져오곤 했을까?
전쟁에서 승리한 우월감에 갑질이라도 하면서 강탈한 것일까?
자꾸만 의아심이 생겨나지만 승리한자의 특권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니
그 당시의 이 땅을 지배했던 세력이 얼마만큼 큰 것 이었는지 새삼 놀랍기만 하다.
▲ 콘스탄티누스의 오벨리스크
10세기 경 콘수탄티누스 7세가 세운 기둥
원래 32m 의 높이의 탑에 조각을 새긴 청동 판을 씌운 아름다운 탑이었으나
십자군이 청동 판을 벗겨내면서 옛 모습을 잃었을 뿐 아니라
1894년 지진으로 훼손 된 것을 다시 복구한 것이라 한다
▲ 오벨리스크 탑, 청동기둥, 그리고 탑 뒤로 블루모스크 첨탑과 빌헬름분수가 모두 보인다.
콘스탄티누스의 오벨리스크탑은 청동기둥의 오른편에 있어 사진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처럼 이곳 공원 및 광장에는 수 천 년의 역사를 넘나드는 건축물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이제 우리는 오늘의 마지막 일정으로
히포드럼 광장을 뒤로하고 다음 일정인 톱 카프 궁전을 향해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걷는 일정, 아직 오전 중인데도 발걸음은 어느 새 1만 보를 넘었다.
남편은 조금 지친가 보다.
▲ 기도를 부르는 요란한 소리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 사원
톱카프궁전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사원이다.
걸어가는데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나라의 창?의 첫 소리 같은데? 하는 의아심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에 밀려난다.
각 사원에서 정오 기도하는 시간을 알리는 첨탑들의 마이크에서 나오는 소리다
이 소리는 기도를 부르는 아잔이라고 한다는데 하루에 다섯 번 기도시간에 맞춰
옛날에는 사람들이 첨탑에 올라 목청껏 외쳤다는데 지금은 첨탑에 마이크를 달아 사용하고 있으니
처음 듣는 사람들은 소음이라고 여겨질 정도의 큰 소리였다.
하지만 대부분 관광객이 많은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멈추는 자세 없이 계속 걸어 다닌다.
문득 세 명의 남자들이 계단 한 구석에 멈춰 서 있음을 보았을 뿐~~
▲ 톱카프궁전
톱카프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정치 문화 중심지였다고 한다.
사원이나 궁전 입장 시에는 소지품 모두를 엑스레이 검사를 받고 통과해야 하는데
벗고 챙기는 번잡함에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것 아닌가
우리를 입장 시켜 놓은 가이드는 자유시간 1시간을 주면서 관람하라고 하였다.
▲ 모든 소지품을 엑스레이촬영을 하여야 했다.
이 궁전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이 살던 궁전이라는데 여간 넓은 게 아니었다. 술탄은 이슬람 세계에서 세습 군주제로 통치하는 국가 또는 지역의 군주를 부르는 말이다. 하니 그 위세의 당당함이 오죽 했을까. 그럼에도 전체적인 구조에서 중앙아시아 유목민이었던, 오스만 제국을 건설한 셀주크 투르크족의 전통을 엿 볼 수 있다고 하니 진정 혈통은 숨길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그 궁전 안에는 정원도 아름답고, 보스푸러스해협이 보이는 풍경도 좋았고,
궁전 안의 보물들도 장관이었지만 건물 내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아 외곽만 촬영할 수 있었다.
▲ 제2정원을 들어서는 문
▲ 5,000명이 거주했던 궁전의 식당이라는데 내 기억이 확실치 않음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키고 콘스탄티노블을 점령한 오스만제국의 메흐멧2세가 1453년 이 자리에 궁전을 지었고 1856년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옮기기 전까지 400년 동안 궁전으로 사용한 곳이라고 하였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마지막 날 선택 관광으로 관람을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 궁전 내에서 겨우 한 장 찍었는데 경비원들이 제지를 하지 않으니
여러 사람들이 찍었음.
손을 청결히 하는 장소이면서 물소리로 방음장치를 했던 곳이라고....
▲ 궁전에서 바라보이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보스푸러스대교
남편은 드디어 벤치에 앉아 버린다.
나더러 구경하고 오라는데 이 많은 인파속에서 이산가족이 되어
행여 약속장소를 잃어버리지나 않을지 걱정되는 마음에 나도 불안한 마음이기는 마찬가지였다.
▲ 보스푸러스 해협을 배경으로
궁전이나 사원 등의 바닥은 위 사진처럼 온통 대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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