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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여행 3 (블루모스크, 성소피아 성당)

물소리~~^ 2018. 10. 5. 23:14




피고 지는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거닐었다.




▲ 블루모스크 전경

이 사진은 마지막 날 조금 시간의 여유가 있다며 다시 둘러 본 시간에 찍었다

첫날의 푸른하늘 배경이 아닌게 아쉽지만

첫 날 엄청 바쁘게 따라 다니느라 전체 모습을 찍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아쉬웠는데

마지막 날 흐린 하늘이었지만 기회가 주어져서 참으로 좋았다.



그랜드 바자르를 나와 우리는 그 유명한 블루모스크가 있는 광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은 블루모스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온통 역사의 광장이라 칭 할 만큼의 고대양식의 사원, 건축들이 즐비한 곳이었으니

블루모스크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여자들은 히잡을 둘러야 했고

남녀 모두 신발을 벗어야 했다. 입구에서 파란색 히잡을 무료로 빌려 주었다.

관광일정표를 보고 사원을 방문한다기에 내 나름대로 흰색 옷을 차려 입었었다.

터키인들은 흰색을 순결의 의미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터키의 모든 집들의 커튼은 온통 하얀색이었고 투어 하는 모든 버스들도 하얀 색이었다.


갑자기 히잡을 쓴 내 모습도 어색했지만 여권과 현금이 든 가방을 메고, 카메라를 들고

신발주머니까지 들고 다니려니 무슨 난민수준의 차림 같았다.

하지만 역사를 만난다는 기쁨에 번잡함은 아예 신경 쓰이지 않았다.

블루모스크도 성소피아성당도 수리중이어서 완벽한 내부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그 어마어마한 위용만큼은 감추지 못하고 내 앞에 우뚝 서 있었다.


비잔틴 제국을 점령한 오스만제국의 제 14대 술탄 아흐멧 1세는 1609년에

이슬람의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하여 성 소피아성당을 능가하는 모스크를 지으라고 명령한다.

건축시작 8년 만인 1616년에 완성한 블루모스크는

성 소피아(아야 소피아) 성당 맞은편에서 웅장한 그 위용을 드러냈다.

원 명칭은 술탄아흐멧 자미인데 2만여 개에 달하는 파란색 이즈닉 타일로 장식되어서

블루모스크라는 애칭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고 한다.

우람한 주요 건축자재들은 (이곳에서 나간 후 둘러볼 예정인)

십자군 원정 때에 파괴된 히포드롬 원형 경기장에서 나온 석재와 기둥들을 사용했으며

고개를 젖히고 바라보아야 하는 거대한 중앙 돔을 4개의 반 돔이 에워싸고 있는 형태로,

수 백 개에 달하는 창은 스테인드 그라스로 장식 되어있었다.


블루모스크의 가장 큰 특징은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첨탑이 6개라는 것이란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뾰족한 6개의 첨탑은 보는 나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중앙 둥근 돔 위에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별과 초승달이 세워져 있다는데

마호메트가 계시를 받았을 때 초승달과 샛별이 함께 떠 있었다고 하여 이슬람의 상징이 되었단다.

터키국기에도 빨간 바탕에 별과 초승달이 있지만 이제는 종교의 강제성은 없다고 한다.


첨탑이 6개인 까닭을 우리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술탄은 건축가들에게 첨탑 모두를 금으로 만들라는 지시를 했지만

금 을 나타내는 터키어 '알튼'

숫자 6이라는 '알트' 의 터키 말의 발음이 비슷하여 건축가가 실수로 6개를 만들었는데

후에 술탄으로부터 왜 금으로 만들지 않았느냐는 질책을 받고 탑 끝에만 금을 칠했다는 說과


당시 4개의 첨탑을 가진 사원으로선 뭔가 부족한 술탄은

4개의 첨탑을 전부 금으로 만들 것을 지시하지만 그 당시의 재정으론 역부족,

이에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금 과 숫자 6의 발음이 비슷한데 묘안을 얻어

보통의 탑 6개로 만들기로 약속한다.

나중에 술탄이 건축가들을 불러 첨탑이 금이 아님을 추궁하자

건축가들은 폐하의 명령대로 6개를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단다.

그러나 그 당시에 이슬람 성지인 메카의 성전에서만 6개의 첨탑을 가질 수 있었고,

일반적으로 사원은 2~4개정도, 왕은 4개의 첨탑만을 가질 수 있었는데

이를 고심하던 술탄이 메카에 한 개의 첨탑을 기증하기로 합의를 보았으며

그 이후 메카성전에는 7개의 첨탑이 되었고

블루 모스크는 6개의 첨탑을 가지게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지금까지 6개의 첨탑이 있는 사원은 오직 블루모스크 뿐이라고 한다.



▲ 사원에 들어서니 나무들도 오랜 세월을 지났는지 우람하다.


▲ 발 씻는 곳




▲ 나는 히잡을 쓰고 무엇을 열심히 바라보았을까?


▲ 거대한 중앙 돔은 아무리 해도 앵글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 기도실에 일반 입장객들은 들어갈수 없다

오른쪽 테라스는 대리석으로 만든 밈바르라는 설교단이라고 한다.



▲ 카펫 위의 진한 꽃무늬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줄을 맞추도록 표시한 것이라 한다.



▲ 동쪽 메카방향을 알리는 미흐랍을 향해 기도하는 사람


▲ 중앙돔의 조감도?

중앙 돔을 4개의 반원으로 힘을 분산하고

작은 동그라미는 돔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든 5m의 기둥으로

'코끼리의 다리' 라고 부른다고 한다.


▲ 푸른 이즈닉 타일로 장식된 내부 ▼







엄청 많은 관광객들에 밀려

블루모스크 내부를 돌아보는데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밖으로 나와 외관을 바라보았다

입장한 곳과 다른 출구였으니.... ▼



▲ 블루모스크에서 발을 돌리면 문이 보이고

이 문을 통과하면 블루모스크보다 천 년 앞서 건립한 성소피아 성당에 닿는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천 년을 넘나들 수 있다는 경이로움이!!

▲ 나도 천년의 경계를 넘어 들어서고 있었다.



블루모스크에서 나와 사잇문을 통과하니 바로 앞에 성 소피아 성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1,000년의 세월을 이 쪽문 하나로 건널 수 있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성소피아성당은 이제 박물관의 용도이어서인지 히잡도 안 쓰고 신발도 벗지 않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내부를 관람할 수 있었다.

성소피아성당은 537년에 건립한 비잔틴 제국의 빼 놓을 수 없는 성당이다.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이고, ()은 그리스어로 하기야이고 터키말로는 아야이어서

하기야소피아 성당, 혹은 아야소피아 성당이라고 한다.


1,500년을 버텨온 연륜만큼 낡고 빛바랜 모습이었으나 규모의 당당함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 당시 교회가 하나임을 표현하기 위해 내부에 기둥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은

당시의 건축 기술로 어림없었지만 그럼에도 조건에 맞추어 완성한 건물이라고 하였다.

그에 조금씩 돔의 형태가 변형이 있어 수리를 거듭하며 지켜온 위대함이다.

이처럼 어려운 건물을 완성한 후, 이곳을 방문한 유스티니아누스황제는

완공을 허락해주신 신께 영광을!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13세기, 오스만 제국이 비잔틴을 점령하고서 이 성당은 이슬람사원으로 개조된다.

오스만 제국은 이 아름다운 건물을 파괴하는 대신 각종 벽화를 회칠로 덮어버리고

사원의 특징인 첨탑 등을 추가로 건립하여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최근에 회칠을 벗겨내며 복원하는 과정에서 그 유명한 그림들이 도출되고 있으니

하나의 건물이 두 종교적 의미를 두루 감싸 안으며 버텨온 세월의 무상함에 마음 저릿해 온다.

960년 동안 교회로,

480년 동안은 사원으로 역할을 해 오다가 요즈음 박물관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비잔틴 제국의 성소피아성당을 능가하는 사원으로

오스만 제국에서 블루모스크를 지었다하지만

1,000년 이상 차이의 연륜을 생각하면 어쩌니 어쩌니 해도

성소피아성당의 위대함이 훨씬 더 크다고 나는 생각했다.



▲ 성소피아성당



▲ 1453년 이후 사원으로 사용되면서

이슬람성자들의 이름을 아랍서체로 쓴 커다란 원판들이 걸렸다.




▼ 사원 안에 회벽으로 가려져있던 모자이크는 1931년 미국인 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에 공화국의 아타튀르크대통령의 지시로 복구 사업이 진행되었고

1964년까지 복구왼료된 모자이크를 개방하였다고 한다.

▲ 데이시스 심판의 날 모자이크


▲ 위 벽화를 기준으로 완성해 놓은 모자이크



▲ 아기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를 중심으로 이레네황후와 요한네스2세 콤페누스황제 모자이크


▲ 예수를 중심으로 황후조에와 그녀의 세번째 남편 콘스탄티누스9세 모자이크






▲ 아기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

현존하는 모자이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 마지막 날 다시 찍은 성소피아성당



이렇게 이스탄불에는, 터키에는 역사의 두께가 첩첩이 쌓여 있는 곳이니

이제 또 다른 역사의 현장으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