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마음따라 발길따라

배롱나무, 서원을 물들이다.

물소리~~^ 2017. 8. 21. 08:20

 

 

 

 

   과거를 지닌 채 오늘을 살아가는 옛것을 나는 좋아한다. 좋아한다함은 옛것이 지금까지 남아있기 까지 지나는 세월동안 간직하고 있는,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가슴 가득 안겨오는 그 어느 안도감과, 뿌듯함, 그 달콤함… 그런 느낌들의 정서적인 면에서의 추억이지 결코 물건에 대한 애착은 아니다. 그저 과거라는 시간 속에 끼어든 내 안의 정서들을 꺼내보면서 알게 모르게 쌓인 상처들을 씻어내는 순간의 만남인 것이다.

 

그런 정서를 가득 품은 옛것을 만날 때, 아주 갑작스럽게 만나는 것과 누구의 권유, 혹은 책을 통해서 만나는 경우, 어느 것이 더 감동적일까. 그야 물론 전자의 경우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5년 전 울릉도여행을 계획하고 포항까지 갔지만 그날 파도가 심해 출항한 배가 되돌아오면서 여행을 포기하는 일이 있었다.

 

그날,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다른 곳을 둘러보자는 남편의 제의에 따라 안동으로 향했고 도산서원을 찾았다. 깊은 감명을 받고 선비의 고장 안동에 왔으니 또 다른 서원을 찾아보자며 병산서원을 찾아갔다. 아! 그 날 병산서원과의 첫 만남의 감동은 정말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과거와의 만남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8월 말쯤, 그곳에는 배롱나무가 한창 꽃을 피웠고 고색창연한 건물은 꽃으로 인해 더할 나위없는 화려함과 아늑함을 함께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 감동은 해마다 배롱나무 꽃이 필적에는 향수병처럼 번져오곤 했는데 그 후 몇 년 아픔으로 삶의 부침시간을 보내면서 그리움만 삭이고 있었다.

 

지금 일상생활은 무리 없이 하고 있지만 완치라는 명제에 절대 자유롭지 못한 시간들 속에 머무르고 있으니 혼자서는 어디 멀리 떠나지 못하고 있다. 배롱나무는 자꾸 유혹하는데… 병산서원을 찾아 떠날 구실을 찾아야 했다. 왕복 8시간 운전해야하는 거리는 절대 만만치 않는 방해물이었다. 문득 어느 여행칼럼 글이 생각나 뒤적였다.

 

독일 출생으로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이참은 2009년부터 4년 간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역임한 사람으로, 사장으로 역임하는 동안 우리 땅 방방곡곡을 찾아 다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땅에서 가장 빼어난 여행지를 꼽는데 주저 없이 경북 안동을 첫 번째로 꼽았으며 그 중 병산서원을 첫째로 체화정과 농암종택을 차례로 이어주는 여행지를 선정 한 바 있었다. 물론 귀화한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개인적인 소견이 다분하겠지만 전문적인 견해도 있었을 것이니 나는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였다.

 

그러자 남편은 이참이라는 사람에 대해 줄줄 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맥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듯, 먼저 병산서원 다시 가보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오! 쾌재를 부르며 함께 집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되면 안동의 봉정사에도 다녀오자고 했다. 우리는 언제나 새벽형~~토요일 아침 6시에 출발했다.

 

병산서원을 들어가는 초입 4km 정도는 비포장도로다. 처음 찾아온 그날은 비 내린 후의 비포장도로의 어려움이 많아 왜 이 길을 정비하지 않을까 의아심을 가졌었다. 그러면서 포장을 하지 않으려면 마사토라도 깔아 물 빠짐이 좋은 그런 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다시 그 길을 달려보니 포장은 아니었지만 내 바람대로 길을 정비한 듯 차의 덜컹거림이 덜했다. 그 길 왼쪽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비산비야의 낮은 구릉의 잡풀 속에 사위질빵의 꽃들이 흐벅지다. 참 정겨운 어느 한적한 시골길의 신작로를 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아, 이 길이 비포장도로여야만 하는 까닭을 깨달았다. 이는 병산서원이 오래 보존되는 귀한 이치의 하나였던 것이다.

 

차창을 내리니 매미소리가 달려든다. 매미소리는 이상하게도 여름 한 낮의 고요를 부추기는 것 같다. 낙동강의 물은 비 내린 후의 탁한 물이었지만 우뚝 솟은 병산의 우악스러움을 씻어내는 듯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저 멀리 고요함 속에 정갈한 모습으로 앉은 듯 서있는 병산서원의 화사함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다녀와 사진들을 정리하는데 분명 꽃을 보고 찾아왔는데 서원 안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꽃보다 건물에 온통 눈이 쏠렸던 것이다.

이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움과 자연의 이치를 조합하여 지은 건축이기에 당연한 것!

한 단체객을 안내하는 문화해설사의 자랑스러움이 가득한 낭랑한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 멀리서 바라본 병산서원

옛것의 정겨움이 스르르 밀려오니 저절로 발걸음이 급해진다

 

 

 

▲ 조금 더 가까이에서 바라 봄

 

▲ 더 가까이에서 ~~ 

 

 

▲ 정면에서 바라 봄

 

 

▲ 복례문

예를 갖춘 후 들어오라는 문

 

 

▲ 복례문 앞에 서면 시선이 만대루를 거쳐 입교당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공간의 연속성과 흐름이 자연스러운 건물배치라 하니

정말 무엇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던 우리 선조님들이셨다.

 

 

◑ 만대루 ◐

▲ 자연 그대로의 나무와 돌을 이용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우리 옛 건축기법.

이 만대루의 건축미와 건축법은 공학도들의 가장 좋은 지침서라고 한다.

 

 

▲ 휴식과 강학의 공간으로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 통나무를 그대로 깍아 만든 디딤 계단

 

 

 

 

▲ 건물 전체를 통나무 그대로 사용했으니~~

 

 

 

 

▲  광영지

인공으로 만든 호수로

 ‘땅을 의미하는 네모진 연못 가운데,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둔 ‘천원지방’(天圓地方) 형태의 연못이다.

 

 

 

▲ 병산서원의 핵심건물 입교당

대청(마루)으로된 강학당과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했다.

대청에서 북쪽의 판문을 열면 뒷마당 풍경이 들어와 단순한 대청을 장식해 준다.

 

입교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재(東齋)와 서재(書齋)를 배치했는데

이는 유생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요즈음의 기숙사 역할을 했던 곳이라한다.

 

 

 

▲ 문틀은 액자가 되고 뒷마당의 풍경들은 스스로 화가가 되었다.

그림을 소유하지 않았지만

자연을 끌어와 그림으로 감상하는 법, 차경이다.

 

사시사철 때맞춰 그림을 걸어주는 이 안목~~~

 

 

▲ 입교당 마루에 앉아 바라 본 만대루 ▼

 

 

▼ 내가 명명한 서원 '뒷마당'

배롱나무가 가득이다.

청렴을 상징하는 배롱나무라하여 선비들이 즐겨 심어 바라본 나무란다.

 

 

 

▲ 보후수로 지정된 배롱나무 두 그루

 

 

▲ 입교당 대청 북문에서 바라본 풍경

좌우, 앞 뒤 모두가 한 눈에 바라보이는 배치

 

 

 

 

 

 

 

 

 

 

 

 

 

 

 

 

▲ 어느 곳에서든 병산은 서원을 기웃거리지만

만대루가 산의 억셈을 막아주며 서생들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배롱나무들은 꽃이 핀 제 가지들을 살짝살짝 치켜들고,

혹은 건물들을 감싸 안으며 단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옛것을 새것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굳이 격상 시키지 않아도

그들의 우월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배롱나무들이

오늘만큼은 일등 공신인 듯 예뻐 보인다.

 

 

 

 

 

 

 

 

 

 

 

▲ 존덕사

서애 류성룡 선생의 위패를 모신 존덕사

서원에서 유일하게 단청을 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 존덕사를 지키는 문

서원은 선비정신이 깃드는 곳이기에 검소해야만 했단다. 그래서 건물에 단청을 하지 않았지만 제사를 모시는 전사청만은 단청을 하여 위상을 높였다고 한다. 병산서원 역시 전사청으로 통하는 내삼문에는 태극문양을 넣어 색칠을 해 두었다. 하지만 난 이 사원 전체가 단청을 했다고 지금 믿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배롱나무였다. 왼쪽의 배롱나무는 근 400여 년의 수령의 나무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었다.

 

 

 

 

▲ 양반뒷간

 

복례문을 지나 맨 처음 만난 작은 기와집은 무엇일까?

호기심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본 나는 그만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뒷간이었다. 양반 뒷간이란다. 한 조각의 가리개가 ‘나는 뒷간이요’ 하고 말해주고 있었다. 이 뒷간과 달리 서원 밖 인적 드문 텃밭에는 달팽이 뒷간이 있었다. 머슴뒷간이란다. 맨땅에 짚으로 지어놓고 하늘은 가리지 않았지만. 한번 휘돌려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양반은 하늘을 가렸지만 머슴은 하늘을 가리지 않았다. 어느 쪽이 더 자유로웠을까. 참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맨 처음 만난 건물이었지만 뒷간임을 알았기에 맨 나중에 사진을 올린다. 옛 사람들의 민망하지 않게하기 위한 현재를 살아가는 내 마음이 우습다.

 

 

▲ 달팽이뒷간(머슴뒷간)

 

 

▲ 가운데 배롱나무가 뒷편의 양반뒷간을 가려주고 있다.

 

 

▲ 한 시간 여 동안 서원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만대루를 다시 바라보았다.

 

 

▲ 서원 밖 담장을 장식하는 배롱나무

 

 

▲ 2005년 방문한 미국 부시대통령의 기념 식수

 

 

▲  병산은 말이 없고 낙동강은 숨 죽여 흐르는 참 좋은 곳에

병산서원이 자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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