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뒷산을 끼고 도는 에움길 한 끝
한적한 정거장에 놓인 소박한 의자위에는 고요가 앉아 있는 듯
시내버스도 유난히 뜸을 들이는 곳
하여 누구든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려야하는 외로운 정거장 옆에
자귀나무가 눈부신 분홍 꽃을 피우고 서 있다.
문득 저 의자에 앉아보고 싶다.
버스를 기다리지 않아도 그냥 홀로 앉아 있노라면
자귀나무는 친구가 되어줄까
비 내리는 날 앉아있으면 비를 가려주고
햇살 쨍한 날에는 제 몸으로 그늘을 내려 줄 것이고
무더운 날에는
고운 분홍부채로 분홍바람을 살살 날려주며
오랜 세월 지나오며 보고 들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낼 것 같다.
스스로 옛 이야기들을 담은 책 한 권이 되어
바람에 사르륵사르륵 책장을 넘겨주며
자신의 꽃향기 한 자락을 나누어 줄 것 같으니
그냥 저 의자에 앉아보고 싶다.
설핏 잠이라도 든다면 분홍 꿈을 꿀까
꿈속에서 한동안 팽개쳐 두었던 내 안의 것들을 만날 수 있을까.
동안 아픔을 이유로 놓쳐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쉬운 것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자꾸만 마음이 허전해진다.
자귀나무아래 정거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내 모습이 겹쳐온다.
▼ <참고사진>
▲ 어느 날 초저녁 산책길에 만난 자귀나무
잎이 모두 포개져 있다.
'단상(短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소백련지에서 하소연하다 (0) | 2017.07.30 |
---|---|
오리가족 (0) | 2017.07.28 |
아리아드네의 실 (0) | 2017.06.30 |
실새삼은… (0) | 2017.06.28 |
붓이 되어 삶을 그리다. (0) | 2017.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