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해질녘 노을의 풍경을 그려보라는 숙제를 냈다.
구름, 호수, 각자 그림을 그렸지만
난 그저 구름의 그림만 보았을 뿐 호수를 바라보지 못했다.
사진기 렌즈를 통해 보이는 호수 표면의 모습에 그만 깜짝 놀랐다.
어쩜!!! 그렇구나!
연암 박지원 선생의 말씀이 어슴푸레 생각이 났지만
입속에서 맴돌 뿐 문장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성급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책을 뒤진다.
아니 책이 아니었다.
언젠가 칼럼을 읽고 메모를 해 두었던 잡기장이었다.
색(色)에서 광(光)이 나오고, 광에서 휘(輝)가 나오며, 휘에서 요(燿)가 나오고, 요한 뒤에야 능히 조(照)할 수가 있다. 조(照), 즉 비친다는 것은 광휘가 색 위로 넘쳐나서 눈에 가득한 것이다. 눈이 색을 보는 것은 누구나 다 같지만, 광과 휘와 요에 이르러서는,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알아보기는 해도 살피지는 못하는 사람이 있으며, 살필 줄은 알아도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는 사람이 있다. 눈이 두 개인 것은 누구나 같지만, 마음에 열리고 막힘이 있기 때문이다. 두 눈은 누구나 같지만, 보는 것은 다 다르다. 같은 사물을 보고도 들어가는 깊이는 제각각이다.
겉모습만 보지 말고 모습에 깃든 참을 바라보라는 연암 선생의 글이 섬광처럼 떠오른 순간,
사물의 빛깔을 인식하는 수준을 이처럼 고차원적으로 설파하시다니!!
몇 백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울림을 주는 글,
진정 참다운 글이 아닌지…
구름은 노을을 光으로 바라보고
호수가 받아들인 노을빛은 照이다. 라고 감히 말 할 수 있을까.
흉내 내려 애쓰는 내 모습이 참으로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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