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박덩굴(까치밥)
오늘이 특별한 날이던가?
아무런 감흥이 없는 내 마음을 질책이라도 하듯
길모퉁이를 따라 걸었다. 걸어야 한다기에…
무심코 발길 향한 언덕길에 맴도는 낙엽들이 정겹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상큼하고
흐린 듯 흐리지 않은 하늘에 괜히 콧마루가 시큰해지는데
길가 큰 나무에서 빨간 열매가 어른거린다.
아! 노박덩굴이다.
지금이야 노박덩굴이라는 이름을 버젓이 불러주지만
내 젊은 시절에는 까치밥이라 불렀던 열매이다.
반가웠다. 늦가을이면 꼭 만나보곤 했었는데…
올 해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까치밥은 부실하게 남은 몸짓으로 나를 자극하고 있다.
내가 까치밥을 유난히 좋아하는 까닭은
빨간 열매를 내 보이기 위해 껍질을 툭툭 터트리는 소리가 좋기 때문이다.
그 소리를 듣기 위해 늦가을이면 한두 가지를 꺾어
집 화병에 꽂아두면 한 밤중 까치밥들은 조심스럽게
자기들끼리 이야기라도 하듯 툭 툭 열매를 터트릴 때
난 숨죽이며 그네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옛 생각의 정겨움에 그들을 담아보려고 폰을 대고 바라보니
엉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조각그림이다.
어쩜 하늘 수가 이리도 많을까
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또 하고 싶은 만큼의 마음을 받아주는 하늘의 개수일까.
마치 까치밥과 하늘이 오늘의 특별함으로 나를 초대하는 것만 같다.
그래, 오늘 우리 식으로 한 번 신나게 지내보자
캐롤 대신 더 정겨운 우리 소리로 특별한 날을 축하해 보자
특별함을 현란하지 않음으로 지켜내는
변치 않는 열매들도 오늘의 초대 손님이다
▲ 참마는 제 몸의 좋은 성분으로 따뜻한 차를 내오고
▲ 계요등은 멋진 샹드리에 등을 밝히고
▲ 댕댕이덩굴은 사물놀이를 준비한 듯 댕댕거리며 흥겹다.
▲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희롱하는 구름도 절로 흥에 겨운 듯 덩실거리니
혼자 꾸면 꿈이지만,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길나서면 만나는 자연이 함께하기에
황당한 이야기도 현실이 될 것이라고 위안 삼아본
크리스마스 이브 저물녘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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