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죽을 먹고, 원숭이학교를 나와, 돌아오는 길
모처럼 조수석에서
왠지 모르게 나른한 몸을 기대고 앉아
휙휙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은 낯익은 길인가? 여겨질 즈음
아, 구암리지석묘군 옆을 지나고 있었다.
지난여름 개암사에 혼자 다녀오면서 찾아 왔던 곳이다.
아련함으로 자꾸 눈길이 가는데
지석묘 부근의 잘 정돈된 기와 지붕위의 나무 모습이 정말 멋졌다.
나무는 빈 가지를 이리저리 펼치고 있음에도
산만하지 않은 듬직함으로
차분한 정숙함을 가득 품고 있음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포근해지고 말았다.
지붕의 기울기에 맞춰 제 몸의 높이를 조절하며
스쳐 지나는 바람이 떨쳐준 영양제를 먹으며
굽으면 굽은 대로 순리대로 살아가며
지붕과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 듯싶은 나무, 느티나무는
생명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박완서님은 그의 작품 <나목>에서
‘여인들의 눈앞에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게는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꿋꿋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고 말했다.
나무는 봄을 품고 있었기에 정말
한줄기 생명수를 길어 올리며
저리도 품행 단정한 모습으로 겨울을 나고 있었다.
제 몸이 드리운 그늘아래 모여든 이야기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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