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세수하다가 느닷없이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단어를 어디서 읽었더라?
사무실에 그 책이 있을 거란 믿음에 확신을 가지고 출근했다.
이것저것 하느라 그새 또 깜박 잊고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후딱 떠오르는 생각에 책들을 찾아보았다.
내가 그 단어(구절?)를 읽었을 때 분명 표시를 해 둔 것까지 생각이 난다.
책을 읽다 표시해둔 표시라면 책의 보람줄을 끼워 두었거나
책갈피를 꽂아 두었으리라 생각하고
이 책, 저 책을 차르륵 넘겨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종종 책 사이에 포스트잇이 붙여 있기도 했지만 내가 찾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삐죽 나온 보람줄을 펴 보니,
아 그곳에 있었다. 작년에 구입하여 읽었던 책이다.
‘같은 풍경 속에서도 침묵은 날마다 제각기 다른 결을 보인다’ 라는 구절과 함께
앙상한 나무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짙은 청색의 보람줄이 새삼스럽게 보인다.
보람줄이라는 말은 ‘읽던 곳 표시해둔 책갈피속의 끈’ 이라는 순 우리말이다.
갈피끈, 가름끈, 모두 같은 뜻을 지닌 말이건만 자꾸 잊혀가는 우리말이다.
어디 말 뿐이던가. 요즈음 책을 사면 보람줄은 거의 없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책갈피를 만들어 사용하거나 메모지를 붙여야하고
그도 아니면 그저 책 한 귀퉁이를 접어두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거추장스러움 때문일까. 아니면 불필요한 이유일까.
나는 책 사이에 달려있는 보람줄이 퍽 멋스럽다고 여겨온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작고 하찮은 것 같지만 얼마나 편리함을 안겨주는 것이던가.
책 읽다 졸리면 얼른 그 끈을 잡아 끼워놓고 눈을 감으면 된다.
줄이 없는 책은 책을 엎어두거나 또 다른 무엇을 찾아 끼워야한다.
나는 그리 자상하지 못한 성격인지
장신구처럼 많은 책갈피들이 있지만 매번 잃어버리고 만다.
오늘처럼 찾고 싶은 이야기를 찾을 때면
책갈피(북마크)는 이미 그 책에서 벗어나 다른 책에 끼워질 수밖에 없지만
보람줄은 그 책 그곳에 그대로 있으니 얼마나 착한 모습인가.
결코 화려한 장신구는 아니지만 주인의 마음을 잊지 않고
꼭 끼어있는 모습은 책이 지닌 멋이고 주인을 위한 배려의 마음이다.
내 잊은 기억들을 보듬어 주고 있는
마음의 보람줄 하나 예쁘게 걸어두고 지나는 올 한해가 되고 싶다.
앙상한 나무에 마음을 쏟으며 그들의 침묵이
날마다 새로운 결을 지닌다는 예쁜 말을 간직하고 싶은 것처럼,
그렇게 내 마음들이 지났던 길이, 또는
내 마음을 보냈던 사물들에게 표했던 생각들이
비록 낡았지만 새로움으로 기억되도록 잊지 않는 보람줄,
갈피끈을 매어놓고 마음의 갈피를 잃지 않는 보람된 새해를 다짐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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