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걷다 나도 모르게 다가섰다.
소나무 한 그루가 밑동만 남은 채 희말쑥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윗몸이 잘려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톱밥이 어지러이 날려 있었다.
내 마음이 고약할까?
그냥 참 예쁘다 라는 생각이 먼저다.
입으로 후우 톱밥을 날려 보내니
나이테 선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이렇게 싱싱한데…
썩어서 잘려 나감이 아닌, 분명 잘 쓰일 용도로 잘려나간 듯싶다.
남은 밑동은 스스로 지닌 이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저토록 나란함 속에는, 빈틈없는 균형 속에는
사계절을 맞이하고 보낸 시간이 들어있고
나고 자란 생성과
병들고 죽은 소멸의 기억들도 있을 것이다.
물길을 향한 물굽이도 보인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내 엄지손가락의 지문처럼 둥글게 둥글게 쌓아가고 있었다.
내 육신의 지문은 자꾸만 닳아 가는데
나무는 어찌 저리도
굴곡진 삶을 부끄럼 없이 내 보이고 있을까.
아름다운 굴곡이다.
자랑스러움일 것이다. 당당함일 것이다.
닳아져 제 기능을 못하는 내 삶의 흔적도
저리 당당할 수 있겠다 싶으니 어깨가 으쓱거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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