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향기로 전하는 말

물소리~~^ 2014. 11. 13. 22:07

 

 

 

 

향기로 말을 건넨 호박

 

 

 

 

어제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는데

고소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 한다. 아니 냄새가 아닌 향기였다.

꼭 둥굴레 차 끓이는 것처럼 구수한 향기였다.

위나 아래층 어느 집에서 둥굴레 차 끓이나보다고 의심없이 생각했다.

은근한 구수함이 좋아 나도 끓여볼까? 했지만

엊그제 끓여놓은 물이 물병마다 가득 찼기에 그냥

향원익청(香遠益淸)을 음미하며

어디에선가로부터 번지는 은은한 향기를 즐겼다.

 

한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도 향기가 여전했다.

이건 분명 우리 집에서 나는 香이라 ~~

둘레둘레, 이방 저방 기웃거리다가 딱 내 눈에 걸려든 한 가지,

작년 가을에 특이한  꽃처럼 생긴 늙은 호박을 선물로 받아

소품 장식 코너에 올려두었는데, 그 호박의 꼭지 부분이 둥그렇게,

마치 칼로 도려낸 듯싶게 푹 가라앉아 있었다.

 

호박이 그렇게 허물어져 있음이 신기하였다.

혹시? 하고 코를 바짝 대어보니

아, 구수한 향기의 근원은 호박이었던 것이다.

근 일 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썩지 않음이 대견하다며

오가며 바라보곤 했던 호박이었다.

 

궁금함으로 호박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썩은 곳 하나 없이 주홍빛에 가까운 노란 빛의 속내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 고운 빛에서 향기가 나고 있었던 것이다.

둥굴레 차의 구수한 맛을 품어내고 있었다.

 

참 고마웠다.

호박은 제가 지닌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하고

우리 집 코너에 박혀있었지만,

무언가 정서적인 면을 꾸며보고자 했던 내 사치스런 마음을 나무라 하지 않고

호박은 그렇게 제 본질을 잃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귀찮고 싫었다면

지레 진즉에 제 몸을 썩히고 고약한 냄새를 피웠을 것이다.

 

많은 시간 속에 숨죽여 제 몸을 삭혀온 늙은 호박은 향기로 나를 불렀다.

견딜 만큼 견디어 왔노라고

이제 더 이상 견딜힘이 없으니 하늘의 뜻에 제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단다.

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호박은 그렇게 속내 깨끗함으로 말을 했다.

아, 이렇게 어느 곳에서나 자신이 지닌 것을 소중히 여기며

맑고 깨끗하게 지나노라면

향기가 나는 것임을 늙은 호박이 일러준다.

  

후각으로 느끼는 향이 아니어도 지극한 향기는 저절로 배어나오니

말에서도 향이 풍길 것이고, 표정에도 향기가 스며있을 것이다.

살아가며 좋은 곳, 좋은 것만을 찾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신만이 지닌 내면의 향기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 작년 10월, 별스런 모습의 싱싱한 호박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어디에 놓을까를 고심하다 택한 장소....

 

 

▲ 오늘(14. 11.14) 새벽산책을 포기하고 호박 해체작업을 하였다.

품은 색이 하도나 고와 괜히 마음이 시큰해졌다.

한 시간 동안 삼분의 일도 못할 정도로 단단하게 여물음은 물론,

속내에서 훅 끼쳐오는 또 다른 향은 아,

그 옛날 호박을 썰어 말리시던

어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맡았던 그 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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