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가 게으름을 피우는 새벽길
발맘발맘 걷는 내 숨결이
유난히 커다랗게 들려옴은
부드러운 정적에 포위당한
나의 두려움의 신호였다.
내 옆구리를 지나는 숲에서
갑자기
우지끈! 뚝! 딱!
소리와 함께 온 숲을 흔드는 출렁임이 물결친다.
화들짝 놀란 마음에
우뚝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돌아 뛰어 내려갈 수도 없는
순간의 선택은 그대로 멈춤일 뿐이다.
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병든 몸,
잎 하나조차 피우지 못하는 거대한 몸을 지탱하느라
나무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며칠 동안 내린 굵은 비에
이제 나를 편히 가게 해 달라고 하소연 했을까.
비의 힘을 얻어
힘겹게 버텨온 세월을
이제는 내려놓고 쉬려는 그 순간을 나는 보았다.
그 무거움의 무게가 그리 큰 소리일 줄 자신도 몰랐다는 듯
파르르 떨리는 죽은 가지의 몸짓이 애처롭다.
다시금 찾아든 정적 속으로
순간 멈췄던
풀벌레 제 울음소리로 채운다.
아, 가을이 오는 길이다.
여리고 여린 가을이 찾아오는 길
산허리를 돌아드는 길목에서
거친 나무를 비켜서느라 행여 힘들고 지칠까
묵은 나무가 먼저 길을 내주고 있었다.
처서설거지를 서두르는
숲속 친구들의 이야기에
괜스레 마음을 놀래 켰다.
* 처서설거지 : 처서가 오기 전, 방해되는 물건들을 거두거나 덮음의 뜻으로 차용함.
▲ 느닷없이 우지끈! 뚝! 딱! 넘어지면서 나를 놀라게 한 장본인
뿌리 부분부터 남김없이 불사르며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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