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처서(處暑)설거지

물소리~~^ 2014. 8. 22. 12:15

 

 

 

 

 

 

 

 

고요가 게으름을 피우는 새벽길

발맘발맘 걷는 내 숨결이

유난히 커다랗게 들려옴은

부드러운 정적에 포위당한

나의 두려움의 신호였다.

 

내 옆구리를 지나는 숲에서

갑자기

우지끈! 뚝! 딱!

소리와 함께 온 숲을 흔드는 출렁임이 물결친다.

 

화들짝 놀란 마음에

우뚝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돌아 뛰어 내려갈 수도 없는

순간의 선택은 그대로 멈춤일 뿐이다.

 

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병든 몸,

잎 하나조차 피우지 못하는 거대한 몸을 지탱하느라

나무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며칠 동안 내린 굵은 비에

이제 나를 편히 가게 해 달라고 하소연 했을까.

 

비의 힘을 얻어

힘겹게 버텨온 세월을

이제는 내려놓고 쉬려는 그 순간을 나는 보았다.

그 무거움의 무게가 그리 큰 소리일 줄 자신도 몰랐다는 듯

파르르 떨리는 죽은 가지의 몸짓이 애처롭다.

 

다시금 찾아든 정적 속으로

순간 멈췄던

풀벌레 제 울음소리로 채운다.

아, 가을이 오는 길이다.

 

여리고 여린 가을이 찾아오는 길

산허리를 돌아드는 길목에서

거친 나무를 비켜서느라 행여 힘들고 지칠까

묵은 나무가 먼저 길을 내주고 있었다.

 

처서설거지를 서두르는

숲속 친구들의 이야기에

괜스레 마음을 놀래 켰다.

 

* 처서설거지 : 처서가 오기 전, 방해되는 물건들을 거두거나 덮음의 뜻으로 차용함.

 

 

 

▲ 느닷없이 우지끈! 뚝! 딱! 넘어지면서 나를 놀라게 한 장본인

뿌리 부분부터 남김없이 불사르며 생을 마감했다.

 

 

 

'단상(短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음이 더 어여쁜 호박  (0) 2014.08.28
마음에 꽃무늬를…  (0) 2014.08.25
마음만 닮아가는 일  (0) 2014.08.13
손톱 끝에 매달린 영원한 추억  (0) 2014.08.08
누구나 다 꽃인 것을…  (0) 2014.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