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도청항
가끔 어디 한 번 다녀오자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산세 좋고 풍경 좋은 사찰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그런 연유로 많은 곳을 다녀오긴 했지만 요즈음의 내 관심은 해남의 미황사였다. 더구나 일전에 두륜산 대흥(둔)사에 다녀오면서 가까이 있는 미황사를 찾지 못했음을 늘 안타까이 여기고 있었다.
지난 토요일 그렇게 미황사를 다녀오자 했는데 남편은 미황사만을 다녀오면 하루 일정이 어정쩡하니 일찍 움직이기 시작하여 청산도를 다녀오면서 미황사에 들려오자는 제의를 했다. 나는 얼른 동의 했다. 섬사랑 남편의 의견과, 산(사)사랑 내 마음이 절충된 계획이었기에 무리 없이 출발했다. 밤잠을 자는 둥 마는 둥하고 새벽 2시 10분에 집을 나섰다. 완도에서 6시 30분에 청산도를 향하는 첫 배를 타기 위해서였다.
완도여객터미널에 도착했지만 이른 시간이어서 썰렁하기만 했다. 하지만 조금 있으니 한 무리의 단체여행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터미널은 북새통을 이루기 시작했다. 참으로 놀라웠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새벽을 마다하고 찾아가도록 이끄는 것인지… 봄 날씨라 하지만 이른 새벽의 한기가 안겨주는 어설픔이 자꾸만 섬에 들어가는 마음을 썰렁케 한다. 아마도 두 번째의 청산도행이기에 호기심은 조금은 줄어든 탓일 것이다. 배를 탔지만 추위로 갑판에 나오지 못하고 선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내가 지금 지나는 바닷길과 오후에 찾아 갈 미황사에 얽힌 이야기를 떠 올려 보았다.
천년 고찰 미황사는 한 때 대웅전을 비롯해 20여 동에 이른 큰 가람이었지만 자꾸만 쇠락해지고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150년 전 쯤 부터라고 하니 그리 먼 세월도 아니다. 그 이유를 스님들조차 알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고 하는데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으니 미황사 창건신화와 맞물리는 참으로 우연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 마을에 살았던 촌로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때 당시 미황사는 큰 불사를 일으키기 위해 미황사 스님들이 농악단(농고)을 차려 해안지방을 돌아다니며 공연 시주를 받았단다.
하루는 공연을 하는 한 스님이 예쁜 여자가 나타나 유혹 하는 꿈을 꾸었다. 꿈이 불길하니 공연을 쉬자고 했으나 주지스님이 “내가 알고 하늘이 알고 있는데 무슨 망설일 필요가 있겠느냐” 며 공연을 강행했다. 그 후, 완도 청산도로 공연을 가던 중 폭풍을 만나 배가 파산되어 스님들이 모두 사망 했다. 그 수가 100여 명에 달하였고 절에는 늙은 스님 몇 분만 남았을 뿐 아니라, 농악단을 꾸리는데 투자한 부채만 산더미 같이 남아 절이 망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청산도 사람들은 바람 불고 비가 오는 날이면 바다에서 농악 소리가 들린다고 한단다.
잠시 웅크린 몸으로 갑판에 나서보니 아침 해가 막 떠오르고 있었다. 장엄했다. 긴긴 세월이 엮어낸 모든 이야기를 삼키며 저 찬란한 햇살을 받아내는 넓고 넓은 바다물결의 육중함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한번쯤 자신을, 지나온 일들을 뒤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묵묵함으로 일러주는 듯싶으니 내 몸은 더욱 움츠러든다. 사람들의 삶이 있어 역사가 이루어지고 그 역사의 뒤안길에서 먼 옛날을 찾아보는 일은 나를 찾아보는 일일 것이다. 풍경을 만나는 일은 나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청산도에 닿은 배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모두들 각자의 방향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임에 섬이 화들짝 놀라겠다. 하지만 이제 섬도 이 어지러움에 길들여졌겠지. 섬 고유의 삶의 형태가 이렇게도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으니 섬은 불평 한 마디 할 수 없지 않을까. 4년 만에 두 번째로 찾아온 곳이지만 여전히 낯설다. 우리는 일단 투어를 하기로 했다. 그러고서 남은 시간에 슬로시티 걷기 구간을 시간에 맞추어 걷기로 했다. 배를 마중 나온 섬 택시 기사의 권유를 받아 승차했다. 여자분이셨다. 그 분은 일단 우리를 환영한다면서 지금 찾아오시기를 참 잘했다 한다. 연유는 조금 있어 유채꽃이 만발하면 발 디딜 틈도 없고, 음식점에서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한다.
정말 풍경은 썰렁했다. 그림으로 말하면 밑그림만 그려져 있었고 아직 색칠을 하지 않은 미완성 그림 같았다. 하지만 풍경을 이루는 것이 어디 자연 뿐 일까. 사람 살아가는 곳에서는 사람이 이루는 풍경이 있어야만 더 정겹고 더 친근함이 있을 것이다. 색으로 덧칠하지 않은 본연 그대로의 섬을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이르니 몸과 마음이 화들짝 깨어난다. 기사분은 천천히 우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도 조근조근, 사진도 열심히 찍어 주신다.
작은 섬이, 서편제라는 영화 하나로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으니 문학은 단순히 글로만 표현되는 것이 절대 아님을 알겠다. 문학과 연계된 작은 인연은 그 지방 사람들의 자부심을 이렇게도 끌어 올려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우리는 청산도의 단순한 자연을 바라보며 힐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숨어있는 문학성으로 인해 더욱 더 많은 힐링을 선사 받고 있음이다.
자연이 있어 문학을 낳고,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움직인 사람의 마음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나누기를 자처하고 있으니 참 좋은 현상이다. 멀고 가까움을 재지 않고, 크고 작은 곳 가리지 않는 여행에서는 선입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마음이어야 한다.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신선함이 있기에 우리는 그 신선함을 찾아 나서는 시간이 여행이기도 할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문학이 싹 틀 수 있는 무한한 요인들이 숨어 있었음을 나는 오늘 무채색의 청산도에서 다시 한 번 느꼈다. 사람 사는 모습들을 깊숙이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유채꽃과 청산도라는 선입견을 벗어나서 있는 그대로의 청산도의 삶을 보았다. 지난했던 삶이 풍경이 된 곳, 어쩌면 우리 근본의 정서를 만날 수 있음에 더욱 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따라 발길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금성 (0) | 2014.04.21 |
---|---|
속초 (0) | 2014.04.21 |
땅 끝에 꽃, 미황사 (0) | 2014.03.17 |
봄에 만난 내장산 (0) | 2014.03.09 |
거문도여행을 회고하며 (0) | 2014.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