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황사 대웅전(보물 947호)
해남 어디쯤 월송리라는 마을이름이 간간이 눈에 띄면서 왼편으로 기암괴봉이 우뚝한 산세를 지닌 산줄기가 따라 달리고 있다. 아, 달마산이다. 차는 내비의 지시대로 열심히 굽이도는데 달마산 역시 방향 따라 보여주는 모습이 마치 선율 따라 펼쳐지는 춤사위처럼 화려하다. 높거나 울창하지 않으면서도 날카롭게 서 있는 암봉들의 기묘함이 다부져 보인다.
한반도의 척추라 하는 백두대간은 남한의 태백산을 지나 지리산에서 마지막 기운을 모아 무등산과 월출산을 지나 땅 끝의 두륜산과 달마산으로 이어진다. 쭉 뻗어 내려가다 바다를 만나니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우뚝 솟아난 땅 끝의 산이니, 어쩌면 내 뿜지 못한 정기의 덩어리가 뭉쳐 있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달마산에는 일만 분의 부처님이 살고 계신다 했는데 정말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그 말의 진위를 이제는 알 것만 같다. 가까이 보이는 달마산을 이루고 있는 기암괴석의 모습 하나하나가 정말 부처님처럼 엄숙하게 보이니 내 마음에서 절로 일어나는 경건함을 어쩌지 못하겠다. 절에 도착하면 부처님 앞에서 꼭 삼배를 올려야겠다. 그럼 나는 그 한 번으로 삼만 배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일주문
산을 바라보며 곧 만나게 될 미황사를 상상하노라니 어느덧 한적한 외길 시멘트 길에 들어선다. 내비는 목적지 주변이라고 안내를 종료한단다. 하지만 길목에는 여느 절과는 달리 상가 하나 없으니 호젓함에 마음이 안온해진다. 일주문 바로 아래에 주차장이 있어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거니와 현판 없는 일주문은 말없이 서서 우리를 맞고 있으니 조금은 생소하다. 날렵함보다는 우람함으로 든든함을 안겨준다.
미황사 오르는 길
일주문을 들어서니 울창한 동백 숲이 우리를 반긴다. 잎들은 유난한 반짝임으로 제 모습을 돋보이고 있었지만 아직 꽃은 만개하지 못한 듯싶다. 살짝 아쉬운 마음이었으나 어찌 다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채우기를 바랄 것인가. 절에 이르는 계단 길의 구부러짐이 나의 마음을 풀어준다.
미황사(美黃寺)는 신라 경덕왕 8년(749)에 창건된 절로 우리나라의 불교 남방전래를 암시하는 설화를 가지고 있다. 그 시절, 배 한척이 사자포구(지금의 땅끝마을 갈두항)에 닿았는데 배 안에는 金字(금으로 새긴 글자) 화엄경 80책, 법화경 7책, 탱화 등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의조화상이 꿈의 계시대로 배에 실린 것들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처음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마지막으로 누워 일어나지 못한 곳에 미황사를 세웠다고 한다. 美는 소 울음소리가 아름다워 취한 것이며, 黃은 金의 색을 취한 것이라고 한다.
바다를 건너온 배에서 빚어진 설화이기에 우리의 불교가 북방에서 전래된 것이라는 정설에 배치되는 남방 전래설을 증명하는 설화라 여기지만, 바다가 가까운 곳이니 쉽게 배를 타고 건너온 것이 아닐까 여기는 내 마음이다.
단아한 대웅전
미황사는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며 이후 조선 후기에 세 번에 걸쳐 중창불사 했다는 기록을 가진 오래된 절이어서일까. 아직도 곳곳에서 복원 불사가 활발한 듯싶다. 새로 지은 듯 단청을 하지 않은 누각을 지나니 또 올라야 할 계단 끝 하늘로 펼쳐진 달마산의 위용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절 마당에 오르니 아! 고색창연한 대웅전과 대웅전을 푹 안아 감싸고 있는 듯 달마산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말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그 무엇부터 마음에 담아야 할지 괜히 허둥대는 내 모습이다. 경내를 찾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참 이쁜 절이네!” 하는 말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풍수지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나, 그래도 정말 명당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산과 절, 아니 하나의 건물의 어울림이 이토록 절묘할 수 있을까. 완벽한 어울림이 빚어내는 아름다움! 둘러보고 또 바라보아도 정말 아름다웠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의 단청은 바랄대로 바래진 빛이 마치 처음부터 단청을 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배흘림기둥의 속 살결이 그대로 도드라져 보이니 그대로 든든함이다. 이렇게 되도록 장구한 세월 동안 건물을 받쳐주고 있으니 그 얼마나 튼튼함인가. 옆문으로 조심스레 들어가 삼배를 올리노라니 괜히 주눅이 든다. 내 무엇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고, 그냥 이곳에 왔으니 인사드리는 마음이라며 애써 괜한 변명을 드렸다.
주춧돌에 새긴 게와 거북
조심스런 눈길로 바라본 법당 내의 세세한 조각과 건물짜임에 놀라움이 가득하다. 차마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에 눈으로만 바라본 법당내의 단청은 외부와 달리 남아 있었으나 역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법당을 나와 대웅전 주춧돌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익히 회자된 이야기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정말 주춧돌에는 거북이도 게 모양도 새겨져 있었다. 거북이나 게는 모두 바다에서 사는 생물이 아니던가. 혹자는 이 모습에서 불교의 남방전래를 재확인한다고 하였다. 엄숙하고 경건하기 짝이 없는 대웅전의 주춧돌에 이를 새겨 놓은 사람의 조금은 익살스러움도 보인다. 이는 부처님도 웃음으로 용인하신 일이지 않을까.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조금 마음이 진정되었을까. 다시 절 마당으로 나와 다시 바라보니 새로움이 또다시 보인다. 추녀 끝에 달랑 올라선 듯싶은 비위 산이 그러하고 한 쪽 절 지붕위로 우람하게 자란 동백나무들에 가슴이 후련해진다. 어찌 보면 산사들이 지닌 공통적인 아늑함은 물론 단정함과 무엇과도 어울리는 모든 것들에 스르르 마음이 정화되기에 자꾸 찾아오고픈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에 간직한 설화나 역사성은 내 관심을 증폭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조건들 아닌가. 아늑한 대웅전을 뒤 돌아보고 뒤 돌아보며 부도전을 찾아 나섰다.
이 역시 사전지식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부도전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기에 꼭 찾아 보리라 작정 했던 터, 대웅전에서 2km 이상 올라가야 하는 자리, 즉 소가 처음 누웠던 옛 통교사 자리에 있는 부도전 까지는 나 홀로 찾아갔다. 오래 걸어 피곤한 남편은 그곳까지 올라 가는 일에 마음을 접었던 것이다. 홀로 걷는 봄빛 가득품은 오솔길이 참으로 다정스럽다.
다시 이어지는 동백 숲을 따라 걷는 길, 꽃은 드문드문 피었다. 키 큰 나무 위의 꽃을 바라보기 보다는 일찍 피어 일찍 땅에 떨어진 외로운 꽃송이에 더 마음이 기우는 길, 홀로 걷는 고즈넉함이었건만 길은 오솔길이 아닌 차가 다닐 수 있는 시멘트 길이었다. 조금 아쉬움이 있었지만 꼭 필요함이었기에 편리함을 추구하였으리라고 생각하며 걸었다.
미황사 부도전과 달마산
혹시 못 보고 지나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아심을 가질 정도로 한참을 걸어야 했다. 길 가 양지쪽에 자줏빛 광대나물, 연 보라의 봄까치, 하얀 냉이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있었다. 하나씩 있어 쓸쓸함보다는 무리지어 있음에 아름다운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의 잔잔함에 마음이 절로 녹여지며 잠시 조급했던 마음을 녹여본다.
어쩌면 봄꽃들이 무리지어 있어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부도전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었을까. 한 고비를 돌아 멀리보이는 부도전의 단아함에 안심을 하며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미황사의 대웅전을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으로 달마산의 위용이 서려 있었다면, 이곳 부도전은 왼쪽으로 달마산을 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미황사와 부도전, 즉 옛 통교사는 달마산의 그 모든 것을 좌우로 품고 있었다는 결론이 아닌지. 그 창건 설화에 나오는 소의 예견이 참으로 놀라웠다.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부도전의 고요함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부도전을 에워싼 낮은 돌담의 이끼들에 괜한 정감이 일었다. 이곳 부도의 특징은 거북, 게, 새, 두꺼비, 연꽃 등이 새겨져 있어 큰 흥미를 유발시킨다는데 난 차마 부도밭 내부로 들어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냥 바라만 보아야 했다. 혼자여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앞서 만난 봄꽃들이 왜 아름다운가를 미리 알려 주었고 그 눈썰미로 아름다움을 만났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부도밭 아래에도 봄꽃들이 잔잔히 피어 있었다. 그 옆의 절집 한 건물에는 통나무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겨울나기의 준비였을까. 또 한 번 무리지어 있어 더욱 든든함을 확인시켜주는 풍경이었다.
부도전을 뒤로하고 돌아서니 저 아래쯤에 남편이 차를 가지고 올라오고 있었다. 넘 오랜 시간을 혼자하고 있으니 시멘트 길을 따라 살금살금 올라오고 있었다. 한참을 내려가야 하는 일에 조금 서두르는 마음이었는데 안심이 되면서 한편 걱정스런 마음이 앞선다. 편하기 위해 이곳까지 차를 가지고 옴은 잘못한 일이 아닐까? 경건한 곳에 오니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내 오늘 미황사를 찾아 와 이런 조심스런 마음 하나 건짐도 크나큰 은혜가 아닐까. 앞으로 살아가며 조심스런 마음과 행동이 얼마만큼 필요한 것인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겠다.
돌아 내려오는 길 위에 또 한 송이의 붉은 동백꽃을 보았다. 미련 없이 떨어지는 동백꽃의 뒷 모습도 참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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