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 서래봉
드물게 몸의 피로를 실감하는 듯싶다.
어제는 늦잠을 잤는데 코피까지 흘렸다.
연이은 사무일의 복잡함에 많은 집중을 하노라니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토요일인만이라도 쉬어가고픈 마음에
어디 가까운 곳에 다녀오자 한 것이 내장산등반을 결정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없이 다녀온 곳, 내장산이다.
하지만 말이 산이지
개인적인 가정사로, 때론 단풍에 이끌려 다녀오면서
늘 밑에서만 맴돌다 오곤 했다.
기껏해야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정도였다.
하여 가까운 거리이면서
단풍 유혹에 빠질 수 없는 요즈음의 내장산 풍경도 궁금하기도 하여
내장사를 둘러싸고 있는 산을 올라보기로 했다.
집에서 오전 7시 15분에 출발하여 일주문에 8시 45분 도착,
9시부터 내장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장산을 이루고 있는 6개 봉우리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인 신선봉이 해발 763m 이니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우리가 택한 등산코스는
일주문 - 벽련암 - 서래봉 - 불출봉 - 원적암 - 내장사 - 일주문으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로
6개의 봉우리 중 2개의 봉우리만 오르기로 하였다.
하지만 서래봉에 오른 후, 불출봉에 오르기 위해서는 거의 300m를 내려와
다시 올라야 하는 등산로니 아마도 1.000m의 산을 오른 셈이다.
일주문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백(벽)련암으로 향했다
아마도 암자까지 오가는 스님들 때문인지 길은 시멘트로 닦여 있었다.
모두들 봄을 이야기하고, 꽃샘추위라고 봄을 옹호하는 이 맘 때이지만
나무들은 아직 겨울이다.
일찍 변산바람꽃이 피었다는 꽃소식도 있었지만
어찌 내 눈에 보일 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많은 겨우살이들이 나무 꼭대기에서 새집처럼 둥글둥글 살아가고 있었다.
어쩜 더부살이하는 겨우살이들의 빛이 곱기도 할까.
편하게 살아가면서 멋을 부리는 듯싶으니 조금은 얄밉다
새 한마리가 제 집터를 잃었다는 듯 외로이 앉아 있다.
▲ 백련암에서 바라본 서래봉바위의 모습이 마치 농기구인 써레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
울창한 숲의 얽히고설킨 나무 가지들의 세세함과 그들의 몸피를 유심히 살피며 걷노라니 백(벽)련암에 도착했다.
660년 백제 의자왕 20년에 환해선사가 창건하였고
6.25때 소실되어 다시 복원하였다고 한다.
백련암을 에워싸고 있는 서래봉의 돌을 던져 석축을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듯,
대웅전 뒤편의 서래봉의 위용이 참으로 멋지다.
백련암을 둘러보고 서래봉을 향하는 길에서
돌로 하중을 주고 위에는 살짝 염원을 올린 우리 모두의 마음을 나무는 끌어안고 있다.
석란정지는 조선말기 유림들이 명성황후를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고
원수를 갚을 것을 맹세했던 서보단이 있던 곳으로
석란이 많이 자라고 있어 석란정이라 이름 지었다는 설명이다.
지금은 정자나 석란은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으며 커다란 바위에 새긴 비석에는
석란정에서 뜻을 같이 했던 석란계원 36인의 명단이 남아있어 그 숭고한 뜻을 후손에게 전하고 있다
무성한 가지에서 괴기스러움이 서려있다.
왜일까?가지를 다듬어 주지 않은 마음(욕심)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을까?
▲ 살아가며 스스로 깨달은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어느새 서래봉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벽련암에서 서래봉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를 뿐 아니라
곳곳에서 만나는 철제계단의 급경사는 아찔함을 안겨 주었다.
서서히 암벽의 위용을 보여주는 길,
눈앞에서 느닷없이 만나는 바위들의 형상에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물결친다.
얼마만큼의 세월을 견디어 왔을까.
하느님께서는 하늘 아래 높은 곳에 정원을 꾸며 놓고
아담한 나무와 바위들을 소품으로 예쁘게 장식해 놓은 것 같은 서래봉 능선이었다
▲ 철계단과 육중한 바위불출봉을 오르기 위해 아찔한 계단을 따라 한없이 내려가야 했다.
▲ 이제 조금 편안한 길이 능선따라 펼쳐지고 있었다.
▼ 불출봉을 뒤로하고 하산길에서의 풍경
▲ 원적암이 또한 6.25때 소실 된 곳을 복원했다는데 암자다운 느낌이 없다.
▲ 비자나무수령 300 ~ 500년 된 비자나무 30여 그루가 원적암 부근에서 자생하고 있다.
원적암일대의 비자나무와 서래봉 기슭의 굴거리나무는
식물분포상 북방한계에 자라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큰 수종으로,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굴거리나무는 천연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어 있다
5시간 동안의 내장산 등반이었다.
다 내려와 '이제 소원 풀었느냐' 묻는 남편의 말에 웃음으로 답했다.
언제부터인가 자주 내장산을 올라보고 싶다고 말을 해 온 듯싶다.
속으로 만나길 기대했던 바람꽃을 만나지 못했으니
어디선가 지금 활짝 피고 있을 거란 생각에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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