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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에서 지혜를 배우다

물소리~~^ 2013. 12. 14. 15:59

 

 

 

 

금오도의 돌담

 

 

 

   낯선 새로움을 찾아 바다 건너 도착한 섬에 발을 내딛는 첫 느낌은 어색함이었다. 그 어색함을 와락 빼앗아가며 나를 반겨줌이 있었으니 그것은 내 시야를 꽉 채운 돌담이었다. 마치 성벽처럼 높다랗게 쌓아올린 담이었지만 알 수 없는 정감이 스며오면서 안온함이 스르르 퍼지는 편안함이 느껴짐은 아주 익숙한 친밀감이 주는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 곁을 스치는 조형물 중, 돌담처럼 정겨운 것이 또 있을까. 혹 잘못 들어선 길에서 맞닥트린 돌담길은 잘못이 아니니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은밀한 화해를 청해온다. 섬의 돌담은 그렇게 나를 안아주며 나의 낯섦을 녹여주었다.

 

어느 곳에서나 돌담은 낡은 시간의 창고처럼 지난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돌담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지냈어도 같은 정서를 지니고 살아왔음을 이어주는 우리의 공통적 끈이지 않을까. 제각각의 돌들은 저마다의 개성인 부드러움과 다감한 질감을 잃지 않고 돌담이라는 큰 개체와의 어울림을 빚어내며 이타적(利他的)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를 우리의 정서라 말할 수 있음은 일상 속에서 찾아낸 지혜로 함께하는 생활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간밤의 서리는 길가의 덤불들을 하얗게 칠하고 있었다. 하얀 추위를 피해 돌담 틈 사이에서 쭈볏거리던 빛바랜 시간들이, 살금살금 걸어오는 내 곁으로 안겨온다. 슬금슬금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내 마음이 자꾸만 설렁인다.

 

낮은 돌담이 아닌 성벽처럼 우람하게 쌓아올린 이 섬의 돌담은 아마도 거센 바람에 대비한 돌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섬사람들은 바람과 맞서자고 쌓은 돌담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작은 틈은 메우지 않고 놔두었다. 돌담도 숨 쉴 구멍이 필요함을 알고 길을 내 주었다. 돌담 사이로 숭숭 뚫린 구멍은 어디까지나 바람과 소통하며 함께 하고픈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먼 바다에서부터 달려온 바람은 아마도 높이 쌓은 돌담을 보고 화가 났을 것이다. 감히 나를 막아? 하면서 거칠게 밀어닥친 바람은 의외로 자신이 쑥 빨려 들어가며 허망하게 나동그라졌을 것이다. 돌담은 바람을 막은 것이 아닌, 힘을 가다듬고 천천히 지나가라는 배려의 마음이었다.

 

돌담은 바람에게 사람이 달아주는 제동장치였던 것이다.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제동장치는 나를 뒤돌아보라는 시간의 제스처이다. 돌담과 바람은 부딪히는 순간 서로를 위해 조금만 비볐을 것이다. 사람과 바람이 지닌 공통의 조건 ‘람’ 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들숨과 날숨이 있어야 긴 생명을 유지한다는 평범한 진리의 필요성을 깨달았을 것이다. 긴 세월 동안 무너지지 않고 버텨온 돌담의 지혜를 보았다.

 

섬의 돌담이 구멍이 숭숭 뚫린 높은 담이라면 동네 골목길의 담은 낮은 키의 담이다. 구멍 뚫린 돌담에서 지혜를 만났듯, 키 낮은 동네의 돌담에서는 낮은 담을 넘나드는 인정을 만날 수 있다. 낮은 담은 작지만 소중함을 서로 주고받는 은밀한 장소이기도 했다.

 

담은 무엇을 경계하기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내가 지닌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가지런히 정리하기 위함 일 것이다. 담장 안으로는 아담한 화단이 있고 정갈하게 닦인 장독이 있다. 마루 밑에는 오수를 즐기는 선한 눈매의 강아지가 있다. 저쪽 살짝 구부러진 돌담 한 귀퉁이에서 금방이라도 소꿉친구가 달려 나올 것 같다.

 

낯선 사람들끼리 서로의 공통점이 있음을 알고 나면 쉽게 친해진다. 그 공통점이 돌담으로 이어진 길이라면 더욱 정겹다. 나는 그렇게 해안가 낯선 돌담길을 돌아 걸었다. 동글동글한 돌들이 서로를 껴안고 이루어 낸 돌담 골목길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제각각의 빛으로 잠재워지고 있다. 가만 가만 걷는 내 마음 안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그 감정들이 찾아드니 움칫 떨리는 것을 나는 어쩌지 못하면서도 짐짓 모른 체 에돌아 왔다.

 

그냥 그렇게 돌담에 내 마음 한 자락을 가지런히 끼워 두고 왔다. 언젠가 다시 찾아오면 그 돌담에 끼워 놓은 오늘의 마음을 찾아 볼 것이다. 분명 돌담은 내가 지녔던 그날 한 순간의 순수함을 다시 건넬 줄 것이다 .

 

 

 

 

ㅡ  내가 만난 돌담, 길  ㅡ

 

관매도 돌담

 

 

 

청산도 돌담

 

 

망해사 우물

 

 

 

 

산청 남사마을 예담촌

 

 

소쇄원

 

 

부석사 돌담

 

 

낙양읍성 돌담

 

 

익산 삼부자집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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