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쓸쓸함을 안겨주는 늦가을 토요일, 불안한 마음은 그 무엇에도 머물지 못하게 한다. 자꾸 시계에만 눈길이 머무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깜짝 놀란 마음으로 전화를 받으니 1차 시험을 끝낸 아이의 전화다. 아무 내색 없이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전하는데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쿵! 무너지는 마음을 애써 부여잡으며 컴을 여니 그새 시험이 유례없이 어려웠다고 하는 수험생들의 글이 인터넷 한 시험관련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었다. 심히 답답하다.
사무실에 여분으로 준비해둔 바지와 점퍼차림으로 가까운 공원을 찾았다. 분위기 좋은 곳을 옆에 두고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 갈 수 없었는데 오늘은 그곳에라도 가야할 것 같다. 싸한 바람을 맞고 싶어 수원지를 향해 걸었다. 제법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쌀쌀함 때문인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한적함속에서 수원지에 모여 있는 물이 바람 따라 찰랑찰랑 움직이며 작은 소란을 피우고 있다. 물빛에 스며든 소소(蕭蕭)한 가을빛이 여리다.
호수는 제 물위에 떨어지는 낙엽들이 싫었을까. 물결을 일렁이며 낙엽들을 밀어내어 물가에 켜켜이 쌓아 놓았다. 참으로 가지런하다. 문득 그 낙엽 물결을 찰랑이는 물이 만들어 놓은 것인지, 바람이 만들어 놓은 것인지 궁금하다. 바람은 물을 움직여 물결로써 제 모습을 보여주고, 물은 낙엽들을 물가로 떠밀려 보내며 제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에 씻긴 낙엽들이 참 정갈하다. 내게 저런 정갈함이 자리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쪼그리고 앉아 그들을 손가락으로 살그머니 건져 본다.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차가운 물의 느낌에 얼른 내 손을 거두어들이고 말았다. 별로 차갑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나의 무의식에 그들은 정신이 바짝 들도록 시린 싸늘함을 안겨주며 무언가에 무너지려던 내 마음을 꽉 조여 준다. 어떤 상황에도 전혀 준비하지 못한 내 마음에 일격을 가해 주고 있다.
저 나뭇잎들은 나뭇가지에서 떨어지기 시작할 때부터 생의 마지막을 준비 했을까. 하여 물결에 밀려도 상관없이 오히려 제 몸을 깨끗이 하는 순간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물의 차가움에 준비하지 못한 깜짝 놀란 내 마음은 내 몸을 사렸고, 준비한 마음의 낙엽들은 느긋함으로 제 몸을 더욱 정갈하게 하였구나.
아, 나는 아무런 준비하는 마음 없이 생각만 키워온 시간들이었나 보다. 좋음만을 생각했던 마음에 일격을 받았으니 끝나지도 않은 일에 느닷없는 마음으로 서성이고 있다. 그래 아직 기회가 남았는데 무얼 걱정한단 말인가. 지레 상심하는 내 마음을 책망하듯 나뭇잎 하나가 팔~랑 내 앞으로 떨어진다.
고운 빛으로 치장하던 나뭇잎들이 바람의 힘을 빌려 혼신을 다해 나무에서 떨어지고 있다. 나뭇잎들이 곱게 물들어가며 떨어지는 이유는 내년 봄 싹을 틔워야하는 나무에게서 더 이상 영양분을 빼앗지 않기 위함이라한다. 나뭇가지에서 곤두박질하며 떨어지는 나뭇잎들의 고운 빛은 생의 끝이 아닌 시작을 보여주는 숙연함의 빛이 아닐까.
끝남의 순간에도 제 몸을 정갈하게 하고 고운 빛으로 치장하며 끝이 아닌 시작을 알려주는 섭리를 보여주는 나뭇잎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차분함으로 마무리하는 그들을 따라 내 마음 속의 소망도 차분하게 다독이고 싶다. 얼른 돌아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요리를 준비해야겠다. 남은 기회의 응원을 아끼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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