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나무
일요일 낮의 뒷산 오름을 참 좋아한다. 어떻게든 그 시간을 만들어 보려고 오전중의 내 일상은 유난히 부산스럽다. 어둑한 새벽녘에 만날 수 없는 모습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기에 좋다. 자랑자랑한 햇살아래 살아있는 모든 사물들의 미세한 움직임을 볼 수 있음이 참 좋다. 특히나 요즈음처럼 가을 끝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뒷산의 모습은 형언 할 수 없는 마음을 안겨 주기도 한다. 잎을 떨어낸 나무들에게서 받는 쓸쓸함도 좋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오솔길을 걷는 푸근함도 좋다.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열매들을 만나는 일이다.
늘 다니는 오솔길, 나는 이제 어느 곳에 어느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는 지를 환히 알고 있다. 오늘 같은 날도 열매 찾기에 걱정이 하나도 없다. 늘 보아온 그 자리에서 열매를 내 보이며 서 있기 때문이다. 그 자리의 그 나무, 그 열매, 똑같은 자세로 서 있지만 그들은 나의 카메라 앞에서는 늘 다른 포즈를 취해주곤 한다.
봄에 꽃을 피우고 여름에 살찌우고 가을에 익힌 열매들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충만함과 함께 그들 하나하나의 개성 있는 모습과 지닌 색감들에 더없는 신비로움을 느낀다. 정말 지금 우리 뒷산의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어냈다. 그리하여 열매들은 더욱 선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하나 숨김없는 적나라한 모습이기에 뿜어내는 선명한 빛이 광휘롭다.
모두들 이렇게 숲 속에서의 생활을 이치에 어긋남 없이 잘 행하고 있는데 몇 해 동안 나의 궁금증을 부추기는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마삭줄이다. 마삭줄 줄기는 참 많이 만나지만 꽃을 보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그 귀함이 우리 뒷산 오롯한 곳에 있다. 몇 년 전, 진한 향기에 이끌려 들어간 곳에 마삭줄이 무리지어 꽃을 피우고 있음을 발견하고 탄성을 지르고 말았던 것이 엊그제 같다.
그런데 마삭줄이 맺은 열매를 여태 만나지 못했다. 꽃을 피우면 열매가 맺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데도 난 그 열매를 만나지 못했고 가을이면 오늘처럼 행여 열매를 맺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기를 반복하곤 한다. 오늘도 그렇게 마삭줄을 찾아 들어선 오솔길이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기에 발자국이 드문 곳이다.
마삭줄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무언가가 길 중간에 놓여 있다. 무어지? 하며 바라보는데 아뿔싸! 누군가가 그곳에 실례를 해 놓았다. 깜짝 놀란 마음에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고 되돌아 나오고 말았다. 에구!! 일 보려면 길 아닌 한쪽으로 가서 볼 일이지 이게 무슨 경우람? 하며 돌아서노라니 기분이 찝찝하다. 급한 생리현상을 어쩌지 못한 그 모습이 그려지며 얼마 전에 겪은 일 하나가 떠오르며 웃음 짓게 한다.
가야산 정상 상왕봉을 내려와 해인사방향으로 하산 길을 따라 걸어올 때의 일이다. 그 시간에 산을 올랐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다른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고 나 혼자 선택한 하산 길은 고요했다. 다만 해인사에서 상왕봉으로 오르는 사람들을 간간히 만나는 코스였다. 한참을 걷는데 뒤에서 바쁜 걸음소리가 들렸다. 남자였다. 천천히 걷고 있던 나였기에 길을 비켜 주려고 한쪽으로 비켰는데 그 사람이 내 옆에서 우뚝 멈추는 것이다. 그러더니 하는 말,
“혹시 사모님 휴지 가지고 계십니까?”
“………??? ”
난 그만 말뜻을 몰라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그 사람 하는 말
“ 산 오르기 전에 일을 보고 와서 걱정을 안했는데 지금 배가 많이 아파서요.” 한다.
표정을 보니 어지간히 급한 모습이다. 얼마나 급하면 생면부지의 나에게 사모님이라 할까.
멋쩍은 마음으로 배낭을 내려 휴지를 꺼내 주었다. 간단히 챙겨왔기에 소량이었다.
그걸 다 전해 주는데 냉큼 받으면서도 “저 다 주시면 어떡해요?” 한다.
나는 순간적으로 “괜찮아요. 저는 배가 아프지 않아요.” 대답하고 돌아서서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나니 그 사람의 모습이 간데없다.
다시 걸으면서 생각하니 내 행동이 우스웠다. 낯선 이에게, 내가 준비한 최소한의 것을 다 내 줄 수 있었던 마음의 근거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사람의 표정이 진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솔직하고 진지한 모습에서 사람 냄새를 물씬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그의 얼굴과 눈빛에는 진실함과 다급함이 서려 있었기에 나는 그 사람의 태깔을 읽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 사람의 나이와 사는 모습을 안다하여 내가 그 사람을 안다고 말 할 수 있음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앎의 요건은 마음을 아는 것이 아닐까. 마음을 안다는 것, 그 사람의 태깔을 읽는 것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만약 그 사람이 미사여구로 자신의 속내를 숨긴 채 말을 걸어왔거나, 나 역시 그 사람의 뜬금없는 행동만을 바라보았다면 그 사람의 요구를 일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사람의 순간적인 진솔함과 필요성을 어필하는 빛깔을 읽었기에 내가 지닌 모두를 다 건네주었던 것 같다.
요즈음의 나무 열매들이 제각각 발하는 빛깔이 유독 예뻐 보이는 것은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진심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우연한 시간 속에서 열매들이 발하는 제각금의 빛깔을 받은 빛난 마음으로, 사람이 지닌 마음 빛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누렸으니 참으로 감사하다. 사람의 마음 빛은 얼굴로 나타나며, 나무의 마음 빛은 열매로 비쳐지고 있다.
마삭줄도 분명 나름 제 모습의 고유한 태깔을 지닌 열매를 맺고 있을 것이다. 내가 편협한 고정관념으로 찾으려 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일요일에는 겉모습이 아닌 특징을 찾으려는 세세한 내 마음 빛을 비추며 소통하는 마음으로 예쁜 꽃이 빚어낸 태깔을 찾아 느껴봐야겠다.
#. 태(態)깔(빛깔) : 모양(태도)과 빛깔
산 초입의 빨간, 노란단풍나무가 대나무의 초록빛에 반항하고 있다.
잎을 모조리 떨어트린 팥배나무
높은 가지에서 떨어진 팥배나무 열매가 국수나무에 걸쳐졌다.
개옻나무
남천
호랑가시나무 열매
연말연시 이웃사랑 실천의 징표로 양복 깃에 다는 사랑의 열매를 만드는 주인공
작살나무
나의 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