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태봉에서 바라본 소매물도의 폐교분교
우리는 섬 왼쪽 길, 해안을 따라 걸어 등대섬을 오른 후, 돌아올 적에 섬 가운데를 통과하는 길을 따라 내려오기로 했다. 어차피 열목개가 열리는 시간은 오후 3시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이니 어두워지기 전에 되돌아 내려오는데 시간상 무리가 없을 듯싶어 느긋한 마음으로 이 섬을 음미하며 걷기로 하였다.
오후로 접어드는 햇살아래의 바다는 더욱 푸르다. 푸름을 품은 상큼한 바람이 상쾌하다. 바닷길에 접한 흙길이 더없이 정겨움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내가 좋아하는 흙길을 만났기 때문이리라. 아, 그러고 보니 이 섬에는 자동차가 없다. 배도 차를 실을 수 있는 배가 아니었다. 해안 따라 펼쳐진 바닷바람 가득한 온전한 이 흙길은 얼마나 귀한 길인가. 편함에 길들여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이 흙길은 과연 얼마동안 견뎌 낼 수 있을까. 영영 차 없는 섬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바다에 띄워본다.
우주상으로 볼 때 우리가 사는 지구대륙 전체가 섬이듯, 이 섬도 또한 하나의 대륙이 아니던가. 섬 대륙은 대륙의 역할을 충실히 하듯 흙길 길섶에 해국을 피우기도 하고, 이미 꽃 진 초목들에 열매를 맺히기도 하였으니 저 바다는 성급한 마음으로 이곳에 올라오고 싶어 자꾸만 철썩이며 애 닳아 한다.
여행객들의 흔적일까. 바다를 향한 곳곳에 돌탑들이 서 있다. 넓은 바다에 소망을 건네 보는 간절함은 그 무엇을, 혹은 누구를 위한 마음이었지, 자신을 챙기는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니 그 마음도 바다를 닮았겠다. 그렇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마음들을 만나보고 싶어 나는 섬을 찾아 왔다.
그렇구나, 동백 역시 이 추위에 섬을 찾는 누구들을 위해 꽃을 피웠구나! 어쩜 동백나무들이 이리도 잘 자라고 있을까. 윤기가 번드르르한 잎은 추위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듯 당당하다. 올 겨울 많이 춥다했는데… 거칠 것 없이 몰아오는 바닷바람이 매서울 텐데… 간간히 피어난 저 꽃의 화려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홑겹으로 단아하게 피어난 저 맵시에는 죽어도 이름값을 하겠다는 단호함이 스며있다. 따뜻한 날을 기다리지 않고 피어났으니 추위에 어쩌면 열매를 맺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꽃은 열매보다도 겨울에 핀다는 동백이라는 이름값을 하고 있으니 어찌 어여쁘지 않겠는가. 바다를 바라보며 자란 동백나무들~~ 이 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울 때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 멋진 모습을 저절로 상상케 하는 동백나무들의 싱싱함이 절로 걸음을 자꾸만 멈추게 한다. 이 모습, 저 모습 사진기에 담고 손으로 한번 어루만지고 뒤돌아보며 길을 재촉한다.
해의 기울기에 따라 해안 절벽 한쪽은 어느새 차가운 빛에 젖어든다. 섬의 외로움이 점점 깊어가는 듯, 더욱 애잔해지는 내 마음이다. 해안을 따라 걷는 길 역시 점점 해의 기울기에 그늘이 깊어진다. 문득 나타난 남매바위. 금지된 사랑 이야기 전설을 품은 바위는 섬사람들의 신앙이었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어쩌면 그들은 스스로 전설을 만들어 놓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덕함을 경계하며 살아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해안가 길을 따라 걷는 사람은 남편과 나, 그리고 다른 한 팀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마을을 통과하는 지름길을 통해 등대섬을 찾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이 섬에서 출항하는 4시 20분 배를 타려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빠른 걸음을 아껴서 숙박을 하는 경우이기에 느긋할 뿐이다. 호젓한 산길은 우리에게 무수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남매바위 이야기도 들려주고, 멀리 대매물도가 보이는 자리에서 쉬어가기를 청하기도 하고, 아스라한 등대섬의 병풍바위를 보여주며 우리를 더욱 설레게 하기도 한다. 동백나무들이 터널을 이루며 우리를 환영해 주기도 한다. 훌쩍 올라온 산길은 먼 바다를 보여주는가 싶더니 다 망가진 철문 앞에 우리를 데려다 준다. 무어지? 기웃거리던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학교다’ 하고 외치고 말았다.
폐교분교였다. 참으로 앙증맞은 건물이었다. 비록 낡은 한 채의 건물이었지만 교실의 유리창은 여전히 반짝이며 내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학교 건물이 퇴색해 가는 동안 학교 주위를 둘러싼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는 빈틈없이 잘 자라고 있었다. 아이들의 함성을 잊지 않은 듯 활기차다. 작은 교정을 지키려는 듯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의지하며 자라고 있었다. 아, 왜 이렇게도 다감함이 밀려오는 것일까. 아버님이 그리워지고 지난날의 내 꿈이 스멀거린다. 지금 우리 아이가 걸어야 할 길이 오롯하게 뻗어 있는 것 같다.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애잔함을 끌어안고 작은, 아주 작은 운동장을 걸어 나왔다. 섬을 더 외로운 섬으로 만드는 학교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섬은 늘 외로운가 보다. 우리가 섬을 그리워하듯 학교는 혼자서 속울음을 울며 섬 밖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지냈을 것이다. 학교가 저 아래로 바라보이는 망태봉에 올랐다. 그냥 그렇게 서럽던 마음을 풀어주는 바다 저 멀리 등대섬이 보인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일찍이 내려간 사람들이 점점으로 보이니 내 마음도 덩달아 바빠진다. 저렇게 작아진 몸피라야만 저 등대섬에 오를 수 있나보다. 멋진 풍경 길에 놓인 등대섬 안내 길이 또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이 망태봉 정상에서 바다가 닿은 길까지 내려간 뒤 다시 올라야 한다. 가파르다. 그 가파름은 우리 삶의 여정이 그러함을 그려내고 있었다. 우리의 삶은 온통 오르막과 내리막뿐이잖은가. 멀리서 바라보아도 물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우리가 내려가면 물이 비켜날까?
▲ 해안선 따라 펼쳐진 흙길
▲ 아, 동백!! 섬의 홑동백!!
▲ 기우는 해에 내려진 섬 그림자가 외로워 보인다.
▲ 남매바위 틈에서 자란 천남성
▲ 대매물도가 보인다.
저곳 매물도의 대항, 당금부락에서 매물(메밀)을 많이 재배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매물도 옆의 작은 섬이라하여 이곳을 소매물도라고 부른다 한다.
▲ 아, 멀리 등대섬의 병풍바위가 얼굴을 내밀며 어서오라 한다.
병풍바위 사이로 일자 형태로 뚫린 작은 구멍이 글씽이굴이다.
옛날 중국 진(秦)나라의 시황제의 신하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러 가던 중,
이 곳을 지나다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서불과차(徐市過此, 이곳에 다녀간다)’ 라고 새겨놓았다.
그 후에 "글이 써진 곳, 글쓴데, 글씽대, 글씽이굴" 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서복(徐福)은 서불(徐芾)이라고도 하는데
불(芾)을 시(市)로 혼동하여 서불과차라고 쓰이고 있다한다
막상 등대섬에 올랐지만 이 글씽이굴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절벽을 타고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배를 타고 바다를 향해 나아가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후에 알았고,
다행이 먼 곳에서 찍은 내 사진에 굴이 찍혔음은 행운이었다.
글씽이굴은 파도가 만들어낸 조각품처럼 기묘하면서도 신비로움을 갖춘 해식동굴로
그 사이로 작은 배가 지날 수 있다고 한다.
서복은 이런 깊은 곳에 불로초 하나라도 캐기를 원했겠으나
결국 찾지 못하여 제 나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 잘 자란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 애틋함을 안겨주는 폐교분교
▲ 잘 자란 후박나무가 지키고 있는 섬의 학교답게 校舍가 아담하면서 단촐하다.
▲ 폐교 교문
▲ 하늘과 바다가 이루는 색의 조화~
천하일색의 아름다움에 어쩌지 못하고 풍덩 빠져 보았다.
▲ 망태봉에서 바라본 등대섬, 아직 물길은 하얀 물결에 감춰져 있다.
▲ 공룡바위
▲ 열목개는 점점 가까워지는데 바닷물은 여전히 길을 감추고....
▲ 한숨쉬며 내려온 길을 뒤돌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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