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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숲속에 홀로 앉아

물소리~~^ 2013. 11. 19. 21:33

 

 

 

 

 

 

 

   정상에서 내려와 이제 하산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왔던 길 되돌아가는 여정인 듯, 나와 다르게 방향을 튼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서는 정상을 향해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문득 혼자 가야 할 길이 외로웠을까. 내가 선택한 길에 각별한 소중함이 움튼다. 올라오는 길 내내 힘들어서인지 내려가는 길의 편안함이 더없이 반갑다. 마음이 평화롭다. 언제 어디서든 홀로이지만 그냥 좋았다. 나를 이끌어주는 산길과 굽어보는 하늘이 있고 나와 벗하는 나무, 꽃, 그리고 구름이 있으니 혼자가 빚어낸 여백을 꽉 채우는 시간 길인 것이다.

 

아무래도 높은 산 정상이라면 추울 듯싶어 두꺼운 옷을 입고 왔는데 더웠다. 날씨가 참으로 화창했다.  준비해 온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가을산길을 걷는 이 마음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은 저자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삶의 굴곡에 뜬금없이 찾아오는 만남 속에도 벗이 있다. 나 오늘처럼 가야산의 등산로에서 만난 하늘과 나무와 낙엽과 흰 구름의 만남은 정말로 멋진 벗들과의 만남이다. 스스럼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내 잠시 할 말을 잃으면 벗들은 서로 앞 다투어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 줄 것이다. 나는 가만히 듣기만 하여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내 곁에 머무는 풍경이 유난히 아름답다.

 

햇살은 따뜻했지만 나무들은 어느덧 겨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곱게 물든 나뭇잎들을 모조리 떨어냈다. 짧은 가을을 보내야 하는 나무들이 예쁜 옷을 보여주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지만 세세히 뻗친 가지들은 아낌없이 하늘에 내 보이며 햇살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그 또한 예술의 극치가 아니던가. 어느 화가가 이처럼 아름다움을 그려 낼 수 있을까. 오직 자연만이 할 수 있고, 그릴 수 있는 멋진 자태로 겨울을 지낼 영양분을 비축하고 있겠지. 그래야 새 봄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 있을 테니까.

 

올 해의 단풍은 유난스레 아름다웠다고들 전한다. 꽃을 보기 어려운 계절인 만큼 곱게 물든 나뭇잎들이 꽃을 대신해 주고 있었는데 모두들 떠났다. 한 계절이 내 곁을 떠나감에 서러운 마음대신, 한 때나마 최선을 다해 지녔던 그 고움을 마음에 깊이 간작해 두어야하는 지금의 계절이 아닌지. 괜한 설움이 차오르며 내게 짐 지워진 온갖 시름들이 해맑게 맑아진다.

 

며칠 전, 혼자 외롭게 제 할 일을 헤쳐 나가는 아이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다. 아이는 '내 일 내가 잘 알아서 해 나가니 엄마의 걱정을 접으라' 고 답한다. 지가 내 마음을 알기나 하고 하는 말이었을까. 떠나는 계절을 마음에 묻듯 아이의 날카로움도 마음에 묻어야겠다. 그래야 겨울을 맞이할 수 있고 아이의 희망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 한 잎 두 잎 성글게 달려있는 나무들의 아름다움이 더없이 예쁘게 다가온다. 어쩌면 부모 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지만 여건을 만나지 못한 아이의 모습처럼 애처롭다. 아, 이런 저런 잡다한 내 마음을 산길이 아늑하게 받아주고 있다.

 

이 산의 나무들과 저 우람한 바위들은 얼마만큼의 세월을 껴안고 있을까.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삶들을 꾸준히 지켜오며 아름다움을 지켜내고 있잖은가. 저들의 삶에 비하면 우리 인간들은 한 순간만을 살아 낼 뿐이면서도 변화되는 환경에 얼마만큼 적응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하여 우리 인간은 그들의 여일성에 이름을 부여해 놓고 자신들의 소망을 바위위에 얹고 나뭇가지에 매달기도 하면서 현실화 시키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내 마음 속 이야기들을 나무들은 듣고 있었나 보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단풍든 나뭇잎을 매달고 있는 나무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절로 탄성을 지르며 사진기를 눌러보았지만 햇살이 빈가지 사이로 빗겨들며 먼저 사진기 안으로 들어온다. 땅위에 수북이 내린 낙엽들 곁을 맴돌고 있노라니 햇살은 나보고 쉬어가기를 청한다. 그렇구나! 나무가 내준 둥치에 앉아 숲의 친구들과 놀다가야겠다. 보온병의 물에 커피 한 잔을 타서 낙엽사이에 놓아 주었다. “커피 한 잔 해” 소곤거리며 내 마음을 전하노라니 정말 좋았다. 옛 선인들은 낙엽을 태워 차를 달인다 했거늘, 나 오늘 햇살에 낙엽을 구워 찻잔대신 종이컵을 데워 슬그머니 건네 본다.

 

내가 건네 준 커피 한 잔을 받아든 낙엽과 나무와 햇살은 앞 다투어 내 곁으로 다가온다. 깊은 숲의 향기로움을 담은 커피를 받은 그들은 나에게 자연이 지닌 온갖 선물을 되돌려 주고 있다. 아, 나는 얼마나 부자인가! 이 가을 길이 온통 내 것이니 이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 저들은 아마도 내 이야기도, 내 발자국 소리도 간직하며 수 년 의 세월들을 또 지켜 가겠지. 올 겨울 매서운 바람이 불고, 차디찬 흰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내가 건네 준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위안이 되기를 간절히 담아 띄워 보낸다. 그들을 뒤로하노라니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선물로 받은 산을 닮고 나무를 닮은 마음무늬를 지니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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