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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벌레 먹은 나뭇잎

물소리~~^ 2013. 11. 12. 22:45

 

 

 

 

 

 

 

   숨죽인 고요함속으로 스며들어오는 먼 불빛에 눈이 부시다. 갑자기 사사삭하는 작은 소리에 누군가 올라오나 뒤 돌아보는데 아, 나뭇잎 소리였다. 살짝 이는 바람결에 제 몸을 나부끼며 나를 알은체 하고 있다. 산이 자꾸만 야위어 가고 있다. 나무들은 자꾸만 잎을 벗어 던지니 산자락은 휑하니 비어져만 가고 오솔길은 벗어 던져진 나뭇잎을 이불 삼아 모습을 가린다. 저 아래 삶의 편린들을 가득 안은 불빛들은 가지런히 두 팔 벌린 나무들 사이로 헤집고 들어와 이불 덮인 오솔길을 가만히 들썩이며 엿보려 한다.

 

오솔길 위의 이슬에 젖은 낙엽들은 지그시 누려 밟는 내 발자국아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죽이니 알 수 없는 쓸쓸함이 가득 밀려온다. 자연의 섭리에 맞는 이런 모든 쓸쓸함이 나는 참 좋다. 이 쓸쓸함은 쓸쓸함으로 끝나지 않는 또 다른 풍요로운 계절이 오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믿음이 있기에 이 고즈넉함을 그대로 느끼고 싶은 순한 마음일 것이다.

 

오솔길의 낙엽을 천천히 밟아보며 지나는 내 눈에 가지에 매달려 있는 벌레 먹은 나뭇잎 몇 개가 보인다. 그 나뭇잎이 참 예뻐 보인다. 아직은 약간의 푸름을 안은 통통한 느낌을 주는 나뭇잎이 벌레에 먹혀 구멍이 숭숭 뚫린 모습이 이채롭다. 어쩌면 미처 겨울 준비를 하지 못한 그 어떤 미물의 영양으로 제 몸을 내준 기쁨의 흔적 이어서일까. 어차피 떨어질 나뭇잎이라면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자기 것을 주고자 하는 비움의 마음인가. 생채기 없이 고이 물든 낙엽이 단순한 아름다움이라면, 남에게 자신의 것을 내주고 얻은 흔적을 통해 또 다른 삶에게 희망을 주는 창백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벌레 먹은 나뭇잎을 바라보노라면 난 늘 우리 언니가 떠오른다.

 

나와 3살 터울인 언니는 공부, 그림, 글, 꽃꽂이 뭐 하나 못하는 것이 없는 재주꾼이다. 그런 언니를 조물주도 시샘을 했는지 약한 몸을 주시더니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병으로 1년을 휴학하기에 이르렀다. 병원 치료 후, 학교와 멀리 떨어진 집에서 요양을 하며 보내는 날들이 언니에게는 생지옥이었다.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답답함을 들로 산으로 다니며 자연과 벗하며 마음을 풀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손에는 늘 무언가가 쥐어져 있곤 했다.

 

나무열매, 꽃, 신기한 나뭇가지 등 그런 것을 들고 와서는 방안 곳곳에 걸어 두기도하고 하고 때론 꽃병에 꽂아 두는 일을 즐겨하곤 했는데, 어느 날 어머니는 그런 언니에게 역정을 내셨다고 언니는 내게 말해 주었다. 이유는 언니가 들고 오는 것 들 중, 유난히 벌레 먹은 나뭇잎이 많았다고 야단을 치시면서 모두 없애 버리셨다는 것이다. 몸도 성치 않은 것이 왜 그렇게 성하지 않은 나뭇잎을 주워오느냐는 어머니의 이유였다. 그 말을 하던 언니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오늘 문득 오솔길에서 조우한 벌레 먹은 나뭇잎에서 언니의 마음을 찾아보았다. 성치 않은 나뭇잎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하는 애잔한 마음이 차오른다. 언니의 감성이라면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언니는 자신의 몸 아픔과 같은 아픔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자신을 내 준 흔적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나뭇잎을 보며 많은 재주를 가지는 대신 병마에게 자신을 내주어야 했던 언니의 몸에 비유 했던 것일까?

 

이제 세월이 흘러 그늘대신 밝음으로 바뀐 요즈음의 언니 얼굴에서 야릿한 아름다움을 스치듯 발견하는 날에는 그 또한 내 부러움이 되었다. 재주도 없고 몸 아픔도 없는 나는 오늘 구멍 뚫린 낙엽에서 어떤 서정적인 감을 얻으면서 나 자신을 추켜세우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애써 감추고 있다. 그 솔직한 마음을 낙엽의 뚫린 구멍 사이로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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