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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장승은 무엇을 품고 있는가?

물소리~~^ 2013. 11. 7. 12:28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만 같은 눈망울하며 귀 밑까지 쭉 올라간 입 꼬리와 대문짝만한 형상을 하고 있는 이빨의 모습에서 무시한 공포를 느끼기에 그들을 만나면 난 먼저 눈을 돌리곤 했다. 그들을 만나는 장소도 어쩌면 꼭 호젓한 산길이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에 그 무서움은 더했다. 그러던 것이 요 근래에 장식품으로 많이 등장하면서 그것들에서 느껴지는 질감으로부터 거부감이 덜해지며 가까이 다가가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겨나긴 했지만 그래도 썩 반갑지는 않다.


몇 년 전 무박으로 태백산을 오르기 위해 새벽녘에 산 아래 주차장에 도착한 날이었다. 계획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한 까닭에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부쳤으나 불편한 잠자리였다. 몸을 뒤치다 눈을 뜨니 차창으로 스며드는 은은한 달빛이 감미로운 몸짓으로 나를 비추고 있었다. 살그머니 차 문을 열고나와 별이 총총한 하늘과 검푸른 빛으로 어둠을 싸안고 있는 산 능선을 바라보니 바로 이곳이 선경이 아닐까하는 선한 느낌이 내 마음 밭에 자리하며 주위의 경관을 둘러보고 마음이 일었다.


주차장 한 가운데에 조성해 놓은 조그만 동산 따라 한 바퀴 돌다가 그만 딱 맞닥트린 것이 그 안에 세워진 몇 개의 장승이었다. 순간 움칠했지만 은은한 달빛을 받고 있는 표정에 의외로 편안함이 느껴진다. 웬일일까? 내 마음이 이토록 편안해지는 이유는? 각각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마음 안에 무엇을 품고 있을까? 아마도 나를 지켜 주기 위함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우스꽝스러운 얼굴표정 중 그 어느 것이 나의 표정일까를 잠시 찾아보았지만 못생긴 그 모습은 내가 아닐 거라는 허영심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장승은 원래 사찰의 경계 표시, 혹은 벽사의 의미를 부여하며 마을의 수호신으로 세워 두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제주도의 돌하루방도 장승(석장승) 이라고 하니 지역과 문화의 차이에 따라 약간씩 변화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장승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기대는 민심의 근본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요이상으로 과장된 모습을 무섭게 새겨 놓음으로서 해(害)를 가져오는 귀신들을 물리칠 수 있는 표적으로 삼아 놓고 그것에 의지하는 습성이 어쩌면 우리 민족이 지닌 의식구조에서 빚어진 것이라면 이는 장승이라는 하나의 상징물이 우리 민족의 삶과 정서 속에서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반증해 준다.


장승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처럼 무엇 하나에 의지하며 신성함을 강요했던 민간 신앙은 우리들 마음 안에 여러 형태로 늘 자리하고 있었다고 믿는다. 가장 가까이 바라 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어머니로 부터였다. 나 아주 어렸을 적 아침 일찍 일어나신 어머님이 제일 먼저 하시던 일은 머리를 정갈하게 빗은 다음 또 다시 머리를 수건으로 돌려 감고 부엌으로 나가시는 일이다. 하루의 거의 전부를 보내야 했던 부엌은 아마도 어머니만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던 기억이 난다. 그곳만큼은 우리가 모르는 귀한 것들이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기에 그곳에서 하시는 어머니의 모든 행동은 절대자적인 모습으로 비쳤다.


그 부엌의 일 들 중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기억중 하나는 아버지의 밥그릇을 소중히 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아버지의 밥그릇 위에는 그 어느 것도 올려놓아서는 안 된 것은 물론 씻는 것에서 조차 제일 먼저 씻어 헹구어야하는 특권이 부여되어 있었다. 식구들의 생계를 이끌어 가시는 아버지에 대한 소중함을 밥그릇이라는 상징물로 대신하여 어머니만의 신앙으로 지켜 나가셨을 것이다.


나 또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신앙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우리 작은아이가 입시공부로 힘들어 하던 시절, 난 참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엄마노릇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로 많이 고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딱히 어떻게 해 주겠다는 마음의 작정도 없이 나 또한 바쁜 세월을 보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치를 수능시험일이 발표되었고 난 그 부담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일찍 학교에 가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아이에게 도시락을 챙겨주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내 할 일 다 못하는 것 같은 마음에 고심하였다.


그러던 한 순간, 나는 아이가 수능 시험을 치르는 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뒷산을 오르기로 작정했다. 맑아진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아이의 아침식사를 차려주면 나의 책임감이 어느 정도 벗어나는 행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 정성이 조금은 효과를 보여 아이의 성적이 불쑥 오르며 좋은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의 결심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을 오른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여 나는 작은 탁상달력에 매일 매일 동그라미 표시를 하며 산행을 시작했고 비가 많이 온다든지 몸이 아파 산을 오르지 못한 날들을 헤아려 두고서 일요일이나 아니면 틈나는 대로 한 번씩 더 오르면서 시험 전날까지 365번의 동그라미 표시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나만의 신앙이었다. 아이와 고통을 함께한다는 작정으로 산행이라는 상징물을 부여해 놓고 내 정성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능력 밖의 일을 무언가에 의지하여 해 내면서 나를 합리화 시키고자 한 행위였다. 이제 아이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되돌아 생각해 보건데 지금 현재 그렇게 하라하면 난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그 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꿈만 같은 날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 정해 놓은 결심을 지켜내기 위해 걸어놓은 상징물에 의미를 크게 부여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해 냈다는 성취감에, 또 내 할 일 해 냈다는 당당함을 갖고 자신감을 얻기 위한 신앙심이 아니었나 하고 가끔 생각하곤 한다.


오늘 수능일이다. 수험생보다도 정작 부모들의 간절함을 바라보노라니 마음이 뭉클해진다. 우리민족은 어떤 하나에만 가치를 찾는 단치적인 의식을 지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가치를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습성으로 우리만이 지닌 사고나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우리 문화에 긍지를 갖고 그런 쪽으로 이어 나가는 장승문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살아가면서 마음 안에 장승 하나쯤 세워 두고 나 자신의 당당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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