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다. 가을의 마지막 달을 장식이라도 하듯 유난히 예쁜 단풍소식에 괜한 마음이 들썩인다. 여기저기 부르는 손짓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내 모습이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였을까. 아침시간 티브이에서 가을 산의 아름다움을 공중 촬영한 영상으로 보여준다. 오대산이었다. 다녀온 산이긴 하지만 가을이 아닌 늦여름에 다녀왔기에 단풍을 만나지 못했지만 한 번 다녀왔다는 친근함에 설거지를 뒤로하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정말 감탄의 감탄이다 어쩜 저리도 아름답게 물들 수가 있을까. 능선과 산비탈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다. 아담하고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풍경에 그만 절로 마음이 동동거린다. 하지만 설령 내가 지금시절에 다시 오대산을 찾는다 해도 티브이에서 보여주는 저 모습을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늘에서 바라보아야 보이는 풍경이지만 나는 걸어서 눈앞의 풍경만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무릇 무어든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 한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더욱 그러하다고 한다. 전체적인 풍경을 바라보아야 진면목을 알 수 있음을 화면을 통해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지난 토요일에 다녀온 월출산이 떠오른다. 정상으로 오르면서 놓치지 않고 바라본 풍경 중 하나가 저 아래로 드넓게 펼쳐지는 평야의 풍경이었다. 네모반듯한 논들은 옅은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마 수확이 끝난 논일까. 동글동글한 모습으로 나란히 서있는 볏짚덩어리(곤포사일리지)의 하얀색이 점점이 박혀 있으니 참으로 정갈하다. 정말 착한 풍경이다.
저 반듯하고 평평함을 이루기 위해 농부들의 써레질은 얼마나 고되었을까. 높고 낮음이 없이 골고루 펴 주어야 벼가 자랄 때 균일한 물 빠짐과 물가두기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균등하지 않으면 벼가 마르기도하고 썩기도 할 것이다. 농부들의 수고로움으로 이뤄진 풍경을 그저 바라보며 정갈하다고 말하기에는 참으로 염치없다. 농부의 農은 노래曲과 별辰으로 이루어 졌다. 예부터 농부는 새벽 별을 보고 나와, 저녁별을 보고 들어간다고 하였다. 과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지극정성 가꿔온 삶이었기에 저렇게 반듯한 아름다움으로 탄생되었을까! 저 반듯함 속에 용틀임하고 있는 농부들의 열정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었다.
이 좋은 날, 정작 농부들은 가을나들이를 할 수나 있을까. 오히려 수확 철에 접어든 요즈음 눈 코 뜰 새 없이 분주 할 것이다.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풍경의 진면목도 보지 못하고 그저 땅들에 별의 노래를 들려주며 얼마나 어르고 있을까. 스스로 풍경의 한 점이 되어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그들의 노고에 그만 가슴이 찡해 왔다.
나는 농사와 무관하다. 하지만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푸근해지며 아련한 향수에 젖을 수 있음은, 어린 시절 그 풍경들을 벗하며 마음껏 뛰놀았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추수 끝난 논에 세워둔 볏짚은 우리들의 숨바꼭질 장소가 되었다. 볏짚이 지닌 안온함은 입성이 어설펐던 아이들을 따듯하게 품어 주었다. 뉘엿뉘엿 기우는 햇살 아래에서의 메뚜기 잡기는 얼마나 신나는 일이었던가. 초라했지만 풍성하게 남은 아름다운 추억은 나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활력소다. 아름답고 따듯한 시간의 기억들은 나를 언제나 행복하게 한다.
이 가을 날,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산과 들의 풍경은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이 풍경을 놓치고 지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농부들처럼 아직 남은 할 일들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다. 임용준비에 여념이 없는 우리아이도 지금 계절이 보내주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잠시 쉬어가라며 이 여유로움을 전해주고 싶다. 지금 설령 만나지 못하는 풍경일지라도, 훗날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훌훌 털어내며 더 좋음만을 취할 수 있기도 할 것이다. 지금의 힘든 시기는 훗날 자신이 스스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밑 풍경이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고 따듯한 풍경으로 남아 삶이 고단할 때 높이서 바라 볼 수 있는 그런 용틀임의 초석이 되기를 빌어본다.
'내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벌레 먹은 나뭇잎 (0) | 2013.11.12 |
---|---|
장승은 무엇을 품고 있는가? (0) | 2013.11.07 |
가을변주곡 (0) | 2013.10.21 |
풀꽃에 마음을 씻고 (0) | 2013.10.17 |
내 마음을 간벌(間伐)하다 (0) | 2013.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