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코엘료의 산문집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다가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났다. 노르딕 워킹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산책을 좋아하고 많이 한다고 하였다. 그 시간에 많은 사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루는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는데 지나는 사람이 스키할 때 사용하는 스틱을 짚으며 열심히 걸어가고 있음에 의아심을 가지고 알아보니 스틱을 사용하며 걸으면 운동효과가 아주 높고 에너지 소모량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작가 본인도 즉시 스틱을 사서 산책 시 함께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정작 스틱에 정신을 쏟느라 소중한 사색을 잃어버리게 되었노라며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시간들이었다고 회고하였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나는 노르딕워킹이 관절에 부담을 줄여준다는 것도 함께 알았다. 산책을 즐겨하는 나로서는 그만 호기심이 생겼다. 평지가 아닌 산을 오르내리면서 하는 나의 산책이기에 혹 관절에 무리가 오지 않을 까 하는 걱정을 가끔 하곤 했는데 스틱을 활용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즉시 스틱을 들고 나섰다. 그 스틱은 큰 산에 다닐 때만 사용하는 금속성 스틱이다. 무언가 새로이 시작을 하게 된다는 것은 늘 기대와 설렘이 함께 한다.
스틱을 가지고 간 첫날 숲에 들어서자마자 난 스틱을 기분 좋게 땅에 찍으며 걸었다. 그러나 웬걸 기대했던 마음은 어느 한 순간 실망으로 번진다. 금속성 스틱이 땅에 닿으면서 내는 소리가 몹시 거슬렸다. 이제 막 솟아 나오려는 새싹들이 움칠움칠 놀라고 있는 것 같아 내 마음이 불안하였다. 이 고요한 숲속의 정적을 이유 없이 흔들어 놓는 이질감 때문에 그 스틱을 짚고 걷는다는 것이 내내 불편하였기에 난 10분도 채 걷지 못하고 그냥 스틱을 거두고 말았다.
부드러운 땅에 닿으면서도 제 소리만을 고집하며 톡 톡 내는 소리는 제 잘난 맛에 모두와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튀는 그런 얄미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단 몇 분 만에 노르딕워킹이라는 환상을 깨고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온 어느 날, 문득 막대기를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과 함께 참 좋겠다는 생각이 한꺼번에 치솟는다. 숲속에서 막대기를 구하기는 그저다. 송전탑 아래 송전탑을 방해하는 나무를 베어 놓은 곳이 있기에 그 중 곧은 막대기를 골라 집으로 가져와서 조금 다듬고 손잡이 부분을 테이프로 감아 평평함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만든 나무 막대기 스틱을 가지고 산을 오르며 첫발과 함께 땅에 짚는 순간 아, 정말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막대기 끝에 닿는 땅의 감촉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소리마저 제 안으로 삼켜버리는 듯싶은 소리는 그대로 숲속의 고요함을 건들지 않았다. 그저 제 몸에서 나는 소리를 안으로 삭히며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숨죽이며 살포시 품어내는 소리는 나에게 무한한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제가 뿌리 내리고 살아왔던 곳에 대한 소중함일까. 나무 스틱은 그렇게 제 소리를 죽이며 숲속의 공간과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이 숲이 인간이라면 고요함을 끌어안고 있는 공기는 숲의 마음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끼리 상대의 마음을 모르면 그이를 제대로 알 수 없듯 어쩌면 금속성 스틱은 이 숲을 몰랐기에 마음도 알 수 없었고 또한 마음을 소통할 줄 모르고 있었기에 제 소리만을 유별나게 고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소리꾼들이 득음(得音)을 위해서는 폭포 앞에서 떨어지는 세찬 물소리를 뚫고 자신이 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싸워야한다고 한다. 득음을 위해 그들은 목에 피가 나도록 연습을 거듭하여 폭포소리는 들리지 않고 제 소리만 들리면서, 자신의 모습은 없어지고 혼이 스며든 소리만 남는 경우라야 득음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요 속에서 제 소리를 죽이기 위해 숨죽이는 고통을 감내한 나무막대기의 경우도 득음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고요 속에 들리는 나무 막대의 작고 깊은 소리는 오히려 더 깊은 고요를 안겨준다.
고요 속 나무막대의 득음은 모든 소리를 한 곳으로 모으는 집중의 힘이었다. 그 힘은 둥그런 달이 다이어트한 몸으로 럭비공이 되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음을 소나무 위에도 걸쳐보고 빈 오리나무 가지위에도 걸쳐보기도 하며 뒤척이는 소리를 모아 나에게 보내주고 있다. 견딜 만큼 견딘 후 이제는 힘을 다 소진한 겨울바람이 눈치껏 제자리를 찾아가는 소리도 잡아 나에게 건네주며 계절의 순환을 거역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고요 속 모든 소리를 한 곳으로 잡아 집중시키는 힘은 얼마만큼의 혼을 다한 노력의 결과일까. 나무 막대기를 스틱삼아 들고 다닌 지 한 달 여. 이것저것 욕심 많게 벌여놓기만 하고 무엇 하나 집중하여 얻을 수 없이 허공으로 흩어지기만 하는 내 마음의 소리가 늘 막대기 매를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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